[본격 성인소설] 욕망의 상그릴라를 찾아서

1부, 한석규, 레테를 찾아 프라하로 떠나다. (1회)

전철현 | 기사입력 2017/08/25 [10:26]

[본격 성인소설] 욕망의 상그릴라를 찾아서

1부, 한석규, 레테를 찾아 프라하로 떠나다. (1회)

전철현 | 입력 : 2017/08/25 [10:26]

1부, 한석규, 레테를 찾아 프라하로 떠나다. (1회)

 

 

작은 도시지만 비교적 규모가 있는 요양병원 의사로 있는 석규는 요즘도 의학 관련 드라마나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다. TV나 영화에서 병원이야기라든가 수술장면, 의사에 관해 묘사하는 장면이 있을 때, 사실 고증 차원에서 석규가 의학적 자문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체코 여행을 앞둔 상태에서 석규는 또 한 외과 의사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았다. 마침 체코가 무대였던 <프라하의 봄>이었다.

 

이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주인공 외과 의사 토마스는 자신을 잘 이해하는 사비나란 애인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여자도 만족하지 못하는 주인공 토마스는 여러 여자를 만나 육체와 영혼을 탐닉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외과 의사 토마스에겐 여자란 자신의 생명을 쏟아내는 따듯하고 습한 살아있는 질그릇이었을 뿐이다.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석규는 육체적 쾌락을 얻기 위한 성적 교감이 남녀 간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주인공 토마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주인공 토마스처럼  남녀관계를 생각한다면 결혼제도는 지금처럼 정착되지 않았을 것이다. 석규는 '서로의 가치를 알아보는 게 바로 인연이고, 사랑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격이 올라간 건지, 석규는 번거롭게 체코 비자 신청할 필요 없이 프라하 행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이번에 체코 여행을 결행하게 된 이유도 번거로운 행정적 절차가 생략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번 체코여행 자체가 관광목적은 아니며 그렇다고 딱히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석규가 굳이 이번 여행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 의미를 찾는다면,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석규가 그동안 믿어온 인간 이성이 전제되지 않는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가? 또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해 주는 '도덕률'이 왜 이성이 전제되지 않는 사랑과 충돌하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또 가능하다면  석규는 과거의 사랑과 추억을 이곳 체코에 묻어두고 싶었다.

    

사실 석규에게 체코여행이 처음은 아니다. 몇 번에 걸쳐 동생 내외와 동유럽 여행을 하면서 와본 적이 있다. 석규는 체코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서 여행하기는 다 괜찮은데 유레일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점을 아쉽게 생각했다. 그래서 석규는 시간이 허락하면 체코 Breclav까지 구간티켓 끊고 국경에 도착한 다음 유레일 기차로 오스트리아로 넘어갈 예정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석규는 간단히 출국 절차를 마친 후, 서둘러 게이트를 지나 비상구 바로 뒤쪽 이코노미석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습관적으로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다가 "아~ 비행기 안이지...실수할 뻔 했네. 습관은 이래서 무서운 법"이란 말을 혼자서 읊조리며 멋쩍게 웃었다.

 

석규는 골초다. 특히 생각이 많아지고 초조하거나 긴장할 때, 특히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담배를 습관적으로 입에 문다. 아내 최경아와 이혼 이후, 석규의 담배 피우는 횟수는 건강에 위협을 줄 정도로 늘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그래도 많이 줄어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석규는 아예 담뱃갑을 백팩 안에 넣었다. 겸연쩍고 민망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좌석 오른쪽 레버를 한껏 제친 석규는 눈을 감은 채 이륙 안내방송이 나오길 기다렸다.

    

일주일 전이다. 석규의 급여통장에는 여지없이 ##은행 자동인출 기록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월급명세서를 받은 석규는 스트레스가  몰려와 습관적으로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었다.

    

"제기랄!! 언제까지 이 따위 월급명세서를 받아야 하나"

 

중얼거리기는 했지만 석규는 언제부터인지 월급명세서를 받는 날에 관심이 없었다. 명세서에 찍힌 숫자들은 지난날 석규가 세상을 모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교만함을 조롱하는 악마의 숫자였다.

    

그렇다. 석규는 제법 규모가 큰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내과 전문의다. 석규가 근무하는 요양병원은 예전처럼 경치 좋고 물 좋은 시골이 아니라 접근성이 좋은 지방 도시에 인접해 있다.

    

석규는 오래 전에 소위 잘나가는 의사였고 가문의 자랑이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일가친척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석규는 오로지 공부 이외에 달리 한 것이 없었다. 공부 이외에 일상적인 것조차 관심가질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 소풍 가방을 챙겨주는 것도 어머니와 여동생의 몫이었다. 석규에겐 당연하였다. 삶의 목적이 공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석규가 화려한 '돌싱'이란 수식어가 무색하게 기약을 알 수 없는 급여 중 70% 강제인출이라는 고문에 시달리는 중년의 남성이 되었다.

    

갑자기 기내가 어수선해졌다. 양손에 여행용 가방을 든 일반 여행객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선반에 여행용 가방을 올리는 소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소리로 부산했다.

    

석규도 백팩을 머리 위 선반에 넣었다. 백팩 안에는 노트북, 속옷 몇 장 그리고 평상시 출장을 가거나 가끔 서울을 올라갈 때 가지고 다니는 약 몇 가지와 담배 두 보루가 전부였다. 석규가 이렇게 단출하게 손수 여행 가방을 꾸린 적은 없었다.

    

석규가 비행기 안에서 자다 깨다 장시간을 보낸 터라 여행의 피로가 몰려왔다. 마침내  석규가 탄 비행기는 프라하 상공에서 선회비행 중이었고, 곧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기내방송에 맞춰  석규는 벨트를 착용한다.

    

사실 미지의 장소에 간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이라는 무지에 대한 공포, 즉 내적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이 즐거운 여행길이든  석규에게 자연스러웠던 학술콘퍼런스를 위한 해외 출장이든 언제나 긴장하게 만든다.

 

사실 여행이란 낯선 곳으로의 두려움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공항을 가든지 모든 공항은 분주하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떠나는 자와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찾아오는 자, 그들이 들고 있는 수화물의 무게만큼 기대를 하고 공항을 오가는 여행객은 오늘도 여전히 분주하다.

    

프라하 루지네 국제공항에 도착한 석규는 인천공항에서 출국 절차를 밟을 때와 마찬가지로 간단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체코는 온대성 기후라 우리나라만큼 사계절 구분이 뚜렷하다. 다만 체코 공기의 질은 우리나라의 경우, 미세먼지 경보를 내릴 만큼 나쁘다.

    

지금이야 미세먼지니 뭐니 하면서 우리나라 공기의 질이 나빠지긴 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공기의 질은 신선하고 상쾌했다. 석규가 해외 출장이나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면 인천공항에서 심호흡하곤 했다.

    

석규가 내린 공항, 체코 프라하의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달랐다. 도시 전체에 널려있는 많은 역사 유적물 그리고 유서 깊은 도시건축물로 도시 전체가 유명 관광명소이다.  단지 공기의 질이 80년대 구로공단이나 영등포마냥 매캐하고 혼탁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만약 여름에 체코 프라하로 여행을 오는 관광객이 있다면,  온도가 높고 탁한 공기로 인해 호흡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고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병이 있다면 자신이 평소 먹는 약이나 여행 중 필요한 약들은 챙겨오는 것이 좋다.

    

석규도 약간의 천식 증세가 있어서 해외여행 시 언제나 '휴대용 네블라이저'를 가방에 넣고 다닌다. 왜냐하면 이곳 체코처럼 공기의 질이 안 좋거나 의료시설이 낙후된 지역을 여행할 때, 천식발작이라도 일어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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