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또르따의 예수이야기 17] 첫째 하와의 불순종과 마리아의 순종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2/25 [10:02]

[발또르따의 예수이야기 17] 첫째 하와의 불순종과 마리아의 순종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2/25 [10:02]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1944. 3. 5.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하느님과 그분의 대리자들인 천사들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한 지배자(overlord)로 만드셨다고 창세기에 쓰여 있지 않느냐? 하느님께서 남자의 동무가 되어 그의 기쁨과 모든 생물에 대한 그의 지배를 함께 하도록 하시기 위해 여자를 만드셨다고 거기에 쓰여 있지 않느냐?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었다는 말이 창세기에 쓰여 있지 않느냐? 왜? ‘그가 지배할 것이다’라는 이 말에는 무슨 뜻이 함축되어 있었느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의미는 무엇이냐? 그 많은 무익한 일들을 탐구하면서, 너희 영혼에게 천상의 진리들(heavenly truths)을 물어 볼 줄은 모르는 너희는 이런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느냐?

 

만일 너희 영혼이 살아 있다면, 너희 영혼이 너희에게 그 답을 말해 줄 것이다. 너희가 은총지위에 있다면 너희 영혼은 수호천사의 손에 있는 꽃과 같은 영혼일 것이며, 너희가 은총지위에 있을 때에는 태양의 키스를 받고 이슬로 싱싱하여지는 영혼, 천상의 빛으로 따뜻하게 하고, 비추고, 물주고, 아름답게 하는 성령의 힘으로 싱싱하게 되는 영혼일 것이다. 만일 너희가 너희 영혼과 대화할 줄 안다면, 너희가 너희 자신을 영이신 하느님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고 너희 영혼을 사랑한다면, 너희 영혼이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진리를 말해 주겠느냐! 만일 너희가 너희 영혼을 죽이기까지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면, 너희는 너희 영혼을 얼마나 큰 친구로 삼을 수 있겠느냐!

 

말을 많이 하고 싶어 하고,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서로 품위를 떨어뜨리는 너희가 훌륭하고 숭고한 친구인 너희 영혼과 더불어 얼마나 많은 천상의 일을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 너희 우정이 비열한 것은 아닐지라도―그런 경우가 가끔 있기는 하다―헛되고 해로우며, 항상 세속적인 말들의 소란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것은 거의 언제나 무익하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고,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며, 우리가 함께 그에게 와서 그의 안에 거처를 마련할 것’이라고. 은총지위에 있는 영혼은 사랑을 소유하고, 사랑을 소유함으로써 하느님을 소유한다. 즉 그는 자기를 보존하시는 아버지, 자기를 다스리시는 아들, 자기를 비추시는 성령을 소유하므로, 지식과 학문과 지혜를 소유하게 된다.

 

그러니 너희 영혼이 너희와 더불어 얼마나 숭고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라. 이 숭고한 대화들이 감옥의 침묵, 수도자들의 독방의 침묵, 은수자들의 침묵, 독실한 병약자들의 침묵을 채웠다. 이 숭고한 대화들이 순교를 기다리는 갇힌 이들과, 진리를 탐구하는 봉쇄 수도원의 수사들, 수녀들과, 하느님을 미리 알기를 갈망하는 은수자들과 병약자들이 인내하게 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십자가를 사랑하게 하는 위로였다.

 

만일 너희가 너희 영혼에게 물어 볼 줄도 알면, 너희 영혼은 ‘그가 지배할 것이다’라는 말의, 피조세계 전체처럼 넓고 정확한 참 뜻을 너희에게 말해 줄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은 사람이 자기의 세 가지 상태를 모두 지배한다는 뜻이다. 하등 상태인 동물적 상태(animal state), 중간 상태인 정신적 상태(moral state), 고등 상태인 영적 상태(spiritual state) 모두를 말이다."

 

이 세 가지 상태 모두가 유일한 목적, 즉 하느님을 소유한다는 목적을 향하게 해야 한다. 너희가 자신의 자아의 모든 힘을 복종시켜 오직 한 가지 목적인 하느님을 소유할 자격을 얻는다는 목적, 다시 말해 철저한 통제를 통해 사람이 하느님을 소유할 자격을 얻는다는 목적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느님께서 피조물들에게 선을 이미 거저 주셨고, 악은 입에는 달지만 그 즙이 핏속에 들어가면 너희를 죽이는 열을 가져다주고 심한 갈증을 일으켜서 그 거짓의 즙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을 느끼게 하는 마약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금하셨다는 것을 너희 영혼이 너희에게 알려 줄 것이다.

 

너희는 이렇게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그러면 왜 하느님이 그것을 그 곳에 놓아 두셨느냐?’ 왜? 그것은 악이 가장 건강한 육체를 공격하는 어떤 병들처럼 저절로 생겨난 힘이기 때문이다.

 

루치페르는 천사였고, 천사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천사였다. 그는 완전한 영이었고, 단지 하느님보다 열등할 뿐이었다. 그의 빛나는 정수 안에서 교만의 기운이 생겼는데, 그는 그것을 흩어 버리지 않고 오히려 품어 농축시켰다(condensed). 이렇게 품는 데에서 악이 생겨났다. 악(Evil)은 사람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천국을 더럽힌 악을 품었던 저주받은 자를 천국 밖으로 쫓아내셨다. 그는 영원히 악을 품는 자로 남았고, 더 이상 천국을 더럽힐 수 없게 되었으므로 땅을 더럽혔다.

 

그 상징적인 나무는 이 진리를 증명한다.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창조의 모든 법칙과 신비를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창조주라는 내 권리를 빼앗지는 마라. 인류가 번식하기 위해서는 내 사랑으로 충분할 것이고, 음란함 없이 오로지 사랑의 충동만으로 인류의 새 아담들을 일으킬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준다. 나는 다만 인간 형성의 그 신비만을 나에게 남겨 둔다.’

 

사탄은 사람에게서 지적 순결성(intellectual virginity)을 빼앗고자 뱀과 같은 혓바닥으로 알랑거리고 하와의 눈과 지체를 어루만져서 그들이 알지 못했던 반사작용과 자극을 일으켰다. 그때는 악의가 아직 그들을 중독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와는 ‘보았다.’ 그녀는 보면서 해 보고 싶어하였다. 그녀의 육체는 자극되었다. 오! 만일 하와가 하느님을 불렀더라면! 만일 하와가 하느님께 달려가서 ‘아버지 저는 병들었습니다. 뱀이 저를 껴안았고, 그래서 저는 흥분했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라면, 아버지께서는 하와를 깨끗하게 하고 그 분의 숨결로 그녀를 치료해 주셨을 것이다. 그 숨결은 하와에게 생명을 불어 넣었던 것처럼 새로운 무죄성(innocence)을 주입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분은 또한 그녀로 하여금 뱀의 독을 잊게 하실 뿐만 아니라, 어떤 병에 걸렸다가 나아서 그 병에 대한 본능적 혐오감을 간직하는 사람들처럼 그녀에게 뱀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게 해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와는 아버지께 가지 않고 뱀에게로 되돌아갔다. 그 감각이 그녀에게는 달콤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 나무의 열매가 맛이 있고, 눈에 아름답게 보이고, 보기에 맵시 있어서 따서 먹었다.’

 

그리고 ‘하와는 알았다(she understood).’ 그 다음엔 악의가 하와의 마음속에 남아 있게 되었고 그녀의 내장을 물어뜯게 되었다. 하와는 짐승들의 습관과 목소리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귀로 들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미친 듯이 갈망하였다.

 

하와는 혼자서 죄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남자동무와 더불어 그것을 완성하였다. 그것이 여자에게 더 중한 선고가 내려진 이유다. 하와 때문에 사람이 하느님께 반역하게 되었고, 음란과 죽음을 알게 되었다. 하와 때문에 사람은 세 통치영역(three reigns)을 지배할 줄 알지 못하게 되었다. 영혼이 하느님께 불복종하는 것을 허락하였으므로 영혼의 영역을, 격정(passion)이 자기를 지배하도록 허락하였으므로 정신의 영역을, 육체를 짐승들과 본능적인 법칙의 수준까지 끌어내렸으므로 육체의 영역을 지배할 줄 모르게 되었다. ‘뱀이 저를 꾀었습니다’ 하고 하와는 말하였고, ‘여자가 과일을 주기에 먹었습니다’ 하고 아담은 말하였다. 그때부터 삼중의 탐욕(triple greed)이 사람의 세 통치영역을 지배해 오고 있다.

 

은총만이 이 무자비한 괴물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은총이 살아 있다면, 더 나아가 철저하게 살아 있다면, 충실한 아들의 착한 의지로 점점 더 살아 있게 된다면, 은총이 괴물의 목을 조르는 데 성공할 것이고 마침내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게 된다. 내적인 폭군들, 즉 육체와 격정들의 폭군들이 없어진다. 외적인 폭군들, 즉 세상과 세상의 권력자들도 두렵지 않게 된다. 박해도,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된다. ‘나는 이런 일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주 예수께서 주신 사명(mission)과 사역(ministry) 즉 하느님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보다 내 목숨을 돌보는 것을 덜 중시합니다(사도  20,  24)’ 하고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것과 같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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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내 기쁨 가운데서 순종하였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려고 나를 부르시는 사명을 깨달았을 때, 나는 기쁨으로 가득 찼었으니 말이다. 내 심장은 마치 오므려져 있던 백합꽃이 활짝 벌어져서 피가 흘러나와서 주님의 씨(the Lord's Seed)를 위한 토양이 되었다.

 

어머니가 된 기쁨.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를 하느님께 바쳤었다.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빛이 내게 세상의 악의 원인을 아주 명백하게 보여 주셨고,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나에게서 사탄의 흔적을 지우기를 원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티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이 특은을 생각하기만 해도 자만이고 교오였을 것이다. 인간에게서 났기 때문에 내가 허물없는 사람(the Faultless One)이 되라고 선택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었다.

 

비천해지기를 원했던 하와, 은총의 피조물에서 하등 피조물의 수준으로 내려가기를 원했던 하와의 타락을 보신 아버지의 고통을 하느님의 성령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셨다. 나는 내 생각과 내 소원과 내 인간관계에서 나를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내 육체를 천사와 같은 순결로 회복시킴으로써 그 고통을 덜어 드리겠다는 소원을 품고 있었다. 오직 하느님을 위하여 내 심장이 뛰고, 오직 하느님을 위하여 내 전존재를 바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나에게 육체의 격정은 없다 해도,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희생은 여전히 있었다. 하와도 비천하게 만드는 것 없이 어머니가 되는 선물을 창조주 아버지로부터 받았었다. 나는 관능의 부담감 없이 달콤하고 순결한 모성(maternity)을 체험하였다. 이러한 부를 포기함으로써 하와는 얼마나 헐벗게 되었느냐! 그 부는 불멸(immortality)보다도 더한 것이다!

내가 과장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내 예수와 그의 어머니인 나는 죽음의 무기력을 경험했다. 나는 기운이 다해서 잠이 든 감미로운 무기력을, 내 예수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의 무서운 무기력을 체험하였다. 우리에게도 죽음은 왔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불결함도 없는 모성은 새로운 하와인 나만 경험했다. 그래서 육체적 고통 없이 어머니가 된 여인의 운명이 얼마나 달콤한 것이었을까 하는 것을  나는세상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결한 모성의 소원이 온전히 하느님의 것인 동정녀에게 실제로 있었다. 모성은 여인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어머니가 된 여자가 얼마나 존경을 받는지를 생각해 보면, 너희는 나 자신을 동정에 봉헌함으로써 내가 바친 희생을 더 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선하신 아버지께서 나를 당신 옥좌에 핀 꽃이 되게 하시려고 내 몸을 꾸몄던 순결성을 빼앗지 않으신 채 당신 여종인 나에게 그러한 은혜를 주셨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어머니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두 배의 기쁨으로 환호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에 평화가 재확립되게 하는 여인이 되는 기쁨.

 

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위하여 이 평화를 갈망했는데, 능하신 분의 가엾은 종인 나를 통하여 이 평화가 세상에 온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어떠한 기쁨인가! ‘사람들아, 이제 너희는 울음을 그쳐라. 너희를 행복하게 할 비밀을 내 안에 간직하고 있다. 그 비밀은 침범되지 않은 내 태 안에 하느님의 아들이 들어 있는 것처럼 내 안에, 내 마음 속에 들어 있고, 그 위에 봉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너희에게 말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것을 너희에게로 가져왔다. 너희가 그분을 보고 그 거룩한 이름을 알게 될 순간이 점점 다가온다’고 말하는 기쁨을!

 

하느님께 기쁨을 드린 기쁨, 행복하게 되신 하느님을 믿는 여인의 기쁨을!

 

아아! 하느님의 마음에서 하와의 불복종과 교만과 불신앙에서 오는 쓰디 쓴 고통을 지워 드렸다는 기쁨을!

 

내 예수는 최초의 부부가 어떤 죄로 더러워졌는지를 설명했다. 나는 죄가 내려온 길을 반대방향으로 올라감으로써 죄를 없애 버렸다.

 

불순종은 타락의 시작이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나무 열매는 먹지 말고, 건드리지도 마라.’  하느님께서 그들이 오로지 천사들보다만 열등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피조물의 왕으로서 그 나무만 빼놓고 모든 것을 만지고 먹을 수 있도록 허락되었던 그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의 금지명령을 무시하였다.

 

그 나무는 당신 자녀들의 복종을 시험하는 방법이었다. 하느님의 계명에 복종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모든 가능한 선(all possible good)이다. 하느님께서는 선만을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불복종은 무엇이냐? 그것은 악이다, 불복종은 사탄이 그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반역적인 정신상태(mental state)를 영혼 안에 넣어 주기 때문이다.

 

하와는 그 나무에 다가갔다. 그 나무를 피하면 자신에게 유익(welfare)이 되고, 다가가면 파멸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와는 특별한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유치한 호기심에 끌렸고, 자기는 강하고 순수하며 모든 것이 자기에게 복종하고 그 무엇도 자기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에덴의 여왕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은 무익한 것이라는 무분별함에 이끌려서 그 나무에 다가갔다. 하와의 어림짐작이 그녀의 파멸의 원인이 된 것이다. 어림짐작은 교만의 누룩이다

 

 하와는 그 나무 옆에서유혹자를 만난다. 하와의 무경험에, 아름다운 처녀로서의 무경험에, 무방비 상태의 무경험에 대고 유혹자는 거짓의 노래를 부른다. ‘너는 악이 여기 있다고 생각하지? 그렇지 않다. 하느님이 너희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너희를 자기의 권력 아래 노예로 붙들어 두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신이 왕과 여왕이라고 믿지? 실상 너희는 동물들보다도 자유롭지도 못하다. 동물들은 진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다. 너희는 그럴 수 없다. 동물은 하느님처럼 창조자들이 되는 은혜를 허락받았다. 야수는 새끼를 낳고, 그 가족이 바라는 만큼 자라는 것을 본다.

 

너희는 그렇지 못해. 너희에게는 이 기쁨이 거절되었다. 너희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너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신들이 되어라. 너희는 둘이 한 몸이 되고 그렇게 해서 셋째 몸과 더 많은 몸들을 만들어내는 기쁨을 모르고 있다. 너희 자식들이 새 가정을 만들고 아버지 어머니가 되기 위해 너희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 너희 후손을 누릴 거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마라. 하느님은 너희에게 가짜 인생을 주었다. 진짜 인생은 인생의 법칙들을 아는 것이다. 그래야 너희가 신들처럼 되어서 하느님에게 ‘우리는 동등하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와가 유혹을 물리칠 의지를 가지지 못하고 그것을 좇아서 사람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알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유혹은 계속되었다. 금지된 나무는 이제 그 가지에 사탄에게서 오는 쓰디 쓴 지식의 열매가 달려 있기 때문에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나무다. 여자(woman)는 암컷(female)이 되어 마귀에게서 오는 지식의 누룩을 가지고 아담을 타락시키려고 간다. 그들의 육체와 영혼은 품격이 떨어지고, 도덕이 타락하여 고통과 죽음을 알게 되었다. 영혼은 은총을 잃었고, 육체는 불멸성을 잃게 되어 죽게 된 것이다. 하와의 상처는 고통을 야기했고, 그 고통은 마지막 부부가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두 죄인(아담과 하와-역주)이 걸은 길을 걸었는데,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나는 순종하였다. 모든 면에서 순종하였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동정녀가 되라고 요구하셨다. 나는 순종하였다. 나를 첫째 여인이 사탄을 알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순결하게 하는 동정을 사랑하게 하신 다음,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아내가 되라고 명령하셨다.

 

나는 순종하여, 하느님께서 첫째 부모를 창조하셨을 때에 하느님께서 의도하셨던 순결의 정도로 결혼생활을 끌어올렸다. 결혼 생활에서 고독해야 하고, 내 거룩한 불임으로 이웃의 멸시를 받게 되었음을 내가 확신하게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 나에게 어머니가 되기를 요구하셨다. 나는 순종하였다. 나는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말을 들으면서 그 말이 하느님에게서 온다고 믿었다. 나에게 평화가 넘쳐흘렀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럴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하느님의 육체를 만들어 드림으로써 하느님과 비슷하게 되었기 때문에 세상이 나를 우러러볼 것이다’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겸손으로 나 자신을 낮추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장미 줄기처럼 솟아났지만 그 장미 줄기에는 이내 날카로운 가시들이 돋아났고, 나는 메의 줄기에 감긴 나뭇가지들처럼 고통으로 조여졌다. 남편의 괴로움에 대한 내 고통은 내 기쁨을 짓눌렀다. 아들의 고통으로 인한 내 고통은 내 기쁨 가운데 있는 가시들이다.

 

하와는 쾌락과 승리와 자유를 원하였다. 나는 고통(sorrow)과 굴욕(humiliation)과 예속(slavery)을 받아들였다. 나는 평화로운 생활과 남편으로부터의 존경과 나 자신의 자유를 단념하였고, 나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겨 두지 않았다. 나는 내 육체로, 내 정신으로, 내 영혼으로 주님의 여종이 되었고, 동정녀로서의 잉태뿐 아니라 내 명예의 보호와 내 남편을 위로하는 것과 내 남편을 결혼의 승화로 이끌기에 적합한 수단에 대해 주님을 의지하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남자와 여자에게 그들이 잃어 버린 존엄성을 회복시켜 줄 수 있었다. 나는 나 자신과 남편과 태중의 아이를 위해 주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내가 죄 있다고 여기는 남편의 고통을 아는 아내의 고통, 아들을 낳아 고통에 넘겨줄 것이라는 것을 보는 어머니의 고통 중에서 나를 도와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하느님께서 어기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우리 세 사람을 위하여 ‘예’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다른 어떤 것도 말씀드리지 않았다. 이 ‘예’라는 대답이 하느님의 명령에 대한 하와의 ‘아니오’를 없애 버렸다.

 

‘예, 내 주여,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제가 알기를 당신이 원하시면 제가 알고, 제가 살기를 당신이 원하시면 제가 살겠습니다. 제가 기뻐하기를 당신이 원하시면 저는 기뻐할 것이고, 제가 고통당하기를 당신이 원하시면 저는 고통을 당하겠습니다.

 

주님, ‘예’, 영원히 ‘예’입니다. 당신의 빛이 저를 어머니로 만드신 순간부터 저를 당신께로 다시 불러 가시는 순간까지 예, 언제나 예입니다. 육체의 모든 좋은 목소리, 제 영혼의 모든 선한 격정이 이 영원한 ‘예’의 무게에 짓눌려 있습니다. 날개가 없어 당신께로 날아가지는 못하지만, 기쁨 가운데에서 당신을 섬기고 고통 가운데에서 당신을 섬기기 위하여 억제하고 굴복한 제 자아 전체를 지배하는 제 영혼은 마치 금강석으로 만든 단 위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 웃고 기뻐하십시오. 죄책(guilt)이 졌습니다. 죄책은 제거되었고 멸망했습니다. 죄책은 제 발뒤꿈치 밑에 있습니다. 죄책은 제 눈물로 씻어졌고, 제 순종으로 부수어졌습니다. 제 태에서 새 나무가 날 것입니다. 그 나무는 모든 악을 자신 안에서 겪었기 때문에 알고, 모든 선을 줄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나무에는 사람들이 올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그 나무가 저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면서 꺾을지라도 저는 기뻐하겠습니다. 마치 나무가 심겨진 땅을 밟고 나무에 올라가듯이 당신 여종도 사람이 구원받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올라가는 데 필요한 발판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야, 우리는 항상 계단들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그것들을 딛고 하느님께로 올라가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짓밟더라도 그들이 십자가에 이르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상관없다. 그것은 선과 악의 지식을 가진 새로운 나무다. 그 나무는 사람이 선택하며 살도록 무엇이 악이고 선인지를 말해 준다. 그리고 그 나무는 사람들이 맛보기를 원했던 악에 중독된 사람들을 고쳐 주는 약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심장이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게 해서 구속된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내 예수의 피가 헛되이 흐르지 않게 해라. 그것이 하느님의 여종들의 운명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거룩한 희생의 제물을 우리 품에 모실 자격을 얻게 되고, 그분의 피와 우리의 눈물로 범벅이 된 십자가 밑에서 우리가 말할 수 있다. ‘아버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저희가 아버지께 드리는 희생제물이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 이 희생제물 에 녹아든 저희를 지켜보시고, 그 희생 제물의 무한한 공로로 당신의 강복을 저희에게 주십시오.’

나는 너를 쓰다듬어 준다. 내 딸아 쉬어라, 주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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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 어머니의 말씀은 가짜 학문에 의해 혼동되고, 뒤죽박죽된 마음들과 생각들 안에서 모든 혼란을 흩어 버려야 할 것이다. 명료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하느님의 일에 관해서도 인간적인 척도로 생각하려고 하고, 하느님조차도 그렇게 생각하신다고 고집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훨씬 더, 아니 무한히 초월하는 방식으로 생각하신다고 믿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인간적인 견해에 따라 생각하지 않고, 영혼에 따라 생각하고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정말 훌륭하고 적절할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에 매달려 있는 곳에 뿌리박지 마라. 그렇게 하는 것은 인간의 영혼이 완전하다고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 또한 교만이다. 완전한 것은 하느님의 생각밖에 없다. 하느님의 생각은 원하시기만 하면,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실 때 세상 사람들로부터 멸시당하는 미천한 사람의 생각과 입술 위에 내려오게 하실 수 있다. 세상 사람의 눈에 하느님의 말씀은 무식하고, 보잘것없고, 꽉 막히고, 유치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영혼의 교만함이 방향을 잡지 못하게 하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사람들 위에 널리 나누어지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사상도 없고, 교양으로 얻은 주의력은 더더욱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과 순결이 가득 차 있으며, 온힘을 기울여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그분을 알 자격을 얻고, 그 후에는 다른 이들에게 그분을 알게 하고, 사랑하게 하며, 하느님을 섬기고자 하는 의지로 인해 위대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아, 살펴보아라. 파티마에서, 루르드에서, 과달루페에서, 까라밧지오에서, 라살레트에서, 참되고 거룩한 발현이 있었던 그 어디에서나 발현을 본 사람들, 즉 보라고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나이와 교양과 사회적 지위로 보아 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들 축에 들어가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다. 이 이름 없는 사람들, 이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에게 은총이 나타나서 그들을 선구자들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세리처럼 몸을 숙이고 말해야 한다. ‘주님, 저는 너무 죄가 많아 당신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 저를 위로해 주시고, 천상의 도움과 인도자의 가르침과 구원의 소망을 주시는 당신의 자비로 인해 찬미 받으십시오.’

 

그리고 ‘천만에! 그것은 선입관이고 이단이다. 그럴 수가 없다!’고 말하지 마라. 어떻게 그럴 수 없다는 것이냐? 재능이 별로 없는 사람이 하느님에 대한 지식에 있어 유식한 자가 되는 것이 말이냐? 왜 그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냐?

 

내가 죽은 사람들을 살리고, 미친 사람들을 낫게 하고, 간질병자들을 고쳐 주고, 벙어리의 입을 열어 주고, 소경들의 눈을 뜨게 하고, 귀머거리들을 듣게 하고, 정신박약자들에게 지성을 주지 않았느냐?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고, 고기들에게 그물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고, 빵이 많아지라고, 물이 포도주로 변하라고, 폭풍우가 잠잠해지라고, 물이 돌을 덮은 땅처럼 단단해지라고 명령하지 않았느냐? 하느님께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냐?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너희 가운데 있기 전에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행동하던 종들을 통하여 기적들을 행하지 않으셨느냐? 아브라함의 사래가 수태하지 못하다가 아기를 가지게 되어 사라가 되고, 그와 계약을 맺기로 되어 있던 이사악을 낳게 되지 않았느냐(창세 17, 15-16)? 나일 강의 물이 모세의 명령으로 피로 변하고, 더러운 동물들이 우글거리게 되지 않았느냐? 모세의 말에 따라서 짐승들이 흑사병으로 죽고, 사람들의 살이 궤양이 되어 떨어지고, 밀이 파괴적인 우박으로 쓰러지고, 갈기갈기 찢기고, 나무의 잎이 메뚜기들에 먹혀 전부 없어졌으며, 빛이 사흘 동안 꺼지고, 맏아들들이 죽어갔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가라고 바다가 갈라지고, 쓴 물이 달게 되고, 메추라기와 만나가 풍족하게 내려오고, 메마른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지 않았느냐?

 

여호수아는 해가 가는 것을 멈추게 하지 않았느냐? 또 어린 다윗이 거인을 쓰러뜨리지 않았느냐? 엘리야가 밀가루와 기름을 많아지게 하고, 사렙타의 과부의 아들을 되살리지 않았느냐? 그가 명령하자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리고, 불이 하늘에서 희생제물 위에 떨어지지 않았느냐?

 

신약은 기적의 꽃들이 핀 작은 숲이 아니냐? 도대체 누가 기적을 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대관절 무엇이 하느님께 불가능하단 말이냐? 누가 하느님과 같단 말이냐?

 

머리를 숙이고 경배하여라. 큰 추수의 때가 와서 사람의 존재를 끝내기 전에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된다. 모든 것, 그리스도 이후의 예언자들과 그리스도 이전의 예언들, 그리고 창세기의 첫마디서부터 시작된 성서의 상징체계가 드러나게 된다.

 

만일 내가 이제까지 풀이되지 않은 어떤 점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면, 이 선물을 받아들여 거기서 단죄를 얻어내지 말고 수확을 얻어내라. 내가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 유다 인들이 한 것처럼 하지 마라. 나의 가르침에 대하여 그들은 마음의 문을 닫았고, 신비와 초자연적인 진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나를 당할 수 없으므로, 그들은 나를 마귀 들리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으로 취급하였다.

 

나는 ‘비유적 나무(metaphorical tree)’라고 말했다. 이제 나는 상징적 나무(symbolical tree)라고 말한다. 아마 너희는 그 말을 더 잘 이해할 것이다. 그 상징은 분명하다. 하느님의 두 자녀의 선과 악에 대한 성향이 그 나무에 대한 그들의 행동에 의해 이해될 것이다. 금을 시험하여 그 품위를 매기는 금세공사의 ‘왕수(王水, aqua regia)처럼 그 나무는 하느님의 명령에 의해 시험 도구가 되어 아담과 하와라는 상징적인 금속의 순도를 재는 척도를 제공하였다.

 

너희가 반대하는 소리가 벌써 나에게 들린다. ‘벌은 너무 지나쳤고, 그들을 단죄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은 너무 유치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 그들의 후손인 너희의 실제 불순종은 첫째 조상보다 중하지 않다. 너희는 나로 인해 구속되었으나 사탄의 독은 항상 재발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마치 핏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어떤 병들처럼 말이다. 최초의 부모는 죄의 치욕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채 은총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사랑과 무죄성을 낳는 은총에 의해 강하고 확고하게 떠받쳐지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사(gift)는 무한하였지만 그 은사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그들의 죄는 훨씬 중대한 것이다.

 

또한 주어져서 먹었다는 열매도 상징적(symbolical)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계명을 거역하라는 사탄의 부추김을 마음에 품기를 원했다는 경험의 열매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금한 것이 아니라 악의 없이 서로 사랑하기를 원했다. 내가 거룩하게 그들을 사랑한 것처럼, 그들은 정욕에 물들지 않은 애정의 거룩함 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했다.

 

은총은 빛이므로, 은총을 가진 사람은 어떤 지식이 선하고 유익한지를 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는 모든 것을 알았다. 지혜가 그녀를 가르쳤기 때문인데, 지혜는 곧 은총이다. 그래서 그녀는 거룩하게 살 줄 알았다.

 

하와 역시 무엇을 알면 좋은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닌데, 선하지 않은 것을 아는 것은 무가치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가지지 않았고, 순종하겠다는 자기의 약속에도 충실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탄을 믿었고, 자신의 약속을 깨뜨렸고, 선하지 않은 것을 후회 없이 사랑했고, 내가 허용한 거룩한 것 대신 부패하고 품위가 떨어지는 것을 사랑했다. 그녀는 더럽혀진 천사가 되어 흙과 쓰레기에서 뒹군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지상 낙원의 꽃들 가운데서 행복하게 뛰어다닐 수 있었을 것이고, 곁에 자손들이 번성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그 잎과 가지들을 진창으로 숙이지 않고 꽃들로 뒤덮인 나무처럼 말이다.

 

내가 복음서에서 언급한 어리석은 아이들처럼 되지 마라. 그들은 다른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들으면서도 귀를 막았고, 관악기를 부는 소리를 듣고도 춤을 추지 않았으며,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웃기를 원했다(마태 11,17, 루카 7, 32). 옹졸한 사람이 되지 말고, 부인하는 사람(denier)이 되지 마라. 악의와 완고함 없이, 모순과 불신앙 없이 빛(the Light)을 받아들여라. 그것에 대해서 나는 충분히 말했다.


너희를 천국에까지 고양시키고, 사탄의 정욕을 물리치게 해 주려고 죽은 아버지의 말씀에게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를 너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말씀이 죽음으로, 하느님의 어린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게 만든 쇠사슬의 첫 번째 고리(첫 부모의 타락)를, 부활을 준비하는 이 사순시기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가 원하였다.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현재 90퍼센트의 사람들이 하와처럼 루치페르의 입김과 말로 중독되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 살지 않고 관능으로 포식하기 위해서 살며, 하늘을 위해 살지 않고 땅의 더러운 것을 위해서 사는, 영혼과 이성의 선물을 받은 피조물이 아니라 영혼도 이성도 없는 개들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 영혼을 죽이고 이성을 왜곡시켰다. 내가 엄중히 말하는데, 야수들이 사랑의 정직성에 있어 너희를 능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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