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친문권력, 오로지 ‘사람’이 먼저였다

김양수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4/21 [01:36]

[토요칼럼] 친문권력, 오로지 ‘사람’이 먼저였다

김양수 칼럼니스트 | 입력 : 2018/04/21 [01:36]

[신문고뉴스] 김양수 칼럼니스트 = 조선시대 선비는 지조와 명예의 아이콘이다. 오백년 조선왕조의 몰락이 너무도 치욕적이라 조선의 지배계급이었던 선비 또한 우리 역사에서 까칠한 대접을 받는 측면이 적지 않지만, 서구의 기사, 일본의 사무라이와 비교하면 조선 선비가 보여준 정신문화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선비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신독(愼獨)’이라는 단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신독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비들은무릇 선비란 혼자 있을 때 더욱더 의관을 정제하고, 더욱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더욱더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한다.’는 말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 이미지 출처 : 유튜브...유튜브에서 캡쳐     ©편집부

 

맞다. 선비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어렴풋하게나마 이상적인 지도자로 염원하는 인물도 조선의 진짜 선비 같은 사람이었다.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그런 사람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청와대의 주인은 어떨까.

 

지지율 70%를 자랑하는 대통령이라면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고 충실할 것이며, 당연히 그에게 온 국민이 소망하는 원칙과 상식의 나라를 세울 역량을 기대해도 좋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소망에 대한 답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은 다름 아닌 대통령 본인의 입에서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금감원장 김기식의 법적, 도덕적 일탈 행위가 국민적 지탄 대상이 되며 그의 퇴진을 강하게 압박하는 여론이 비등하자 이를 향해 김기식의 행위가 위법하거나 도덕성이 평균 이하라면 사임 시키겠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언필칭 촛불의 명령을 받들어 출범했다는 정부의 최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이 평균만 되면 그만이란 그 말이...

 

그렇다면 우리는 왜 박근혜를 탄핵한 걸까. 그런 기준이라면 냉정하게 말해 박근혜는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등이 포함된 대한민국 역대 정권의 도덕성 점수를 평균으로 산출한다면 박근혜의 도덕성 점수는 최소한 평균 이하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현 정권의 지지율은 강보합세를 유지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기식에게 끝까지 보여준 집착의 동력, 도덕성이 평균 이상이면 문제없다는 오만의 극치를 보여준 발언의 동력 모두 지지율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김기식의 거취를 결정할 때 가장 두려워하며 지켜야 했을 가이드라인은 현행법도 아니요, 평균 도덕률도, 정권에 대한 지지율도 아니었다. 무조건 지켜야 했을 가이드라인은 조선 선비가 가장 무서워했던 대상이기도 하다. 다름 아닌 바로 자신, 김기식이 시민운동가 시절, 야당 의원이었던 시절 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추상같은 도덕률 말이다.

 

▲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퇴소감 일부 발췌     © 편집부

 

문재인 정부 도덕성의 파탄은 김기식이 처음은 아니다. 출범 초기부터 각료들에게서 드러난 그들의 민낯은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인사들과 비교하여 오십보백보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진보와 정의를 외치며 촛불의 명령을 받들어 정권을 잡으니까 갑자기 그들은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해진다. 그러면서 이른바 자신들이 규정한 적폐세력에 대해서는 한없이 엄격해지고 편집광적으로 잔인해지기까지 한다.  

 

이런 식이라면 적폐세력과 적폐세력을 척결하는 주체 사이 감별점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모두가 도둑놈이라는 냉소주의가 만연해지려 하는데 난데없는 게임 체인저가 등장한다. 문재인 정부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과 친밀한 교분을 과시했던 그 사람, ‘드루킹말이다.

 

국가기관이 주체가 되어 댓글을 조작하여 여론을 조작한 것은 확실히 나쁜 짓이다. 그렇다면 교활하게 결성된 선거브로커 조직이 여론을 조작한 것은? 그 또한 범죄다. 돈을 받지 않은 자발적 시민운동이라고 포장하고 싶겠지만, 자발적 시민운동의 결실이 오사카 총영사 청와대 행정관 추천권이라면 이들 조직원이 편취한 이득과 이른바 탄핵반대 성조기 행사에 머릿수 채워준 대가로 푼돈을 받은 가난한 노인네들이 편취한 이득 중 누가 더 값나가는 대가를 누렸다고 봐야 할 것인가.

 

원칙과 상식, 정의와 도덕을 외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명박도 자신들이야 말로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정권이라고 뇌까리지 않았던가.

 

문제의 핵심은 목이 터져라 외친다고 해서 그 주체가 정의로운 도덕의 원칙과 상식의 덩어리가 된다는 보장은 절대로 없다는데 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서 실천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이다.

 

그렇다면 담보의 근거는? 다른 거 없다. 조선 선비의 정신. 과연 누가 자신에게 한없이 엄격하고 타인에게 한없이 관대하느냐이다.  지나간 어느 겨울, 광장에서 내가 이해한 촛불의 명령은 신독을 체화(體化)한 누군가가 하늘로 향한 이상과 땅을 딛은 현실 사이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 시스템을 구축하여 우리네 공동체에 만연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개헌도, 남북대화도, 민생도 모두 빨아들인 블랙홀로 등장한 김기식과 드루킹 사태를 보면, 그 사태를 대하는 집권세력의 자세- 자기네 정파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정적에겐 한없이 엄격한-를 지켜보자면 대통령을 탄핵하여 우리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라는 자괴심 밖에 남는 것이 없다.

 

▲ 문재인 대통령이 내건 슬로건     © 편집부 자료 이미지

 

보수와 진보는 이념과 가치의 대립이다. 그 대립 속에서, 상호견제와 타협 속에서 역사는 한걸음씩 발전해 나갈 것이라 우리는 믿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철저히 기만당하고 농락당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보수와 진보 이념의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박근혜 팬덤과 문재인 팬덤만이 보수와 진보를 사칭하며 세상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재단할 뿐이다.

 

사람이 먼저다문재인 진영의 슬로건이다. 그 말은 진실인 것 같다. 친문에게는 사람이 먼저다. 정확하게 말해 자기 정파 사람이 먼저다. 어떤 도덕도, 정의도, 원칙과 상식도 자기네 사람이 다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은 헌신짝과 같이 취급될 뿐이다. 진영논리로 대동단결. 김기식과 김경수 사태는 이 추악한 진실을 너무도 뻔뻔하게 증명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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