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은 문자 그대로 '반만년의 역사'를 공유하는 같은 민족이다. 국조 단군이 세운 고조선을 이어 부여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까지 함께 겪은 한 형제이다. 그렇기에 비록 분단이 되어있더라도 국사책 내용은 같아야 한다. 최소한 한국전쟁 이전까지의 역사는 똑같아야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을까?
먼저 남한 학자들은 고조선을 어떻게 보는지 알아보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출신으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고조선’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현재 교원대학교 송 모 교수다. 그가 낸 책의 제목이 <단군, 만들어진 신화>이다.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단군을 실존 인물이 아닌 신화로 보고 있다. 단군이 신화라면 단군조선이라는 나라의 실체도 덩달아 희미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그는 이 책에서 단군조선을 실재역사로 보지 않는다. 또한 그가 말하는 고조선은 단군조선이 아니라 중국 사료에 나오는 소위 ‘위만조선’이다.
현행 국사교과서는 어느 출판사를 막론하고 단군을 언급하고 단군이 서기전 2333년에 조선을 개국한 것으로 쓰고 있기는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오류가 있는데 청동기 시대를 언급하면서 “청동기시대에 들어와서야 국가가 성립하며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서기전 15세기쯤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어떤 오류가 있는가? 단군조선이 세워진 시기는 서기전 24세기라고 하면서 실재 국가는 청동시시대인 서기전 15세기에 선다고 하고 있다. 대략 10세기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다. 약 1000년간의 시기가 없어져버린 앞뒤가 안 맞는 서술체계다. 왜 이렇게 기형적인 기술을 하는 것일까? 이유인즉슨 청동기시대에 와서야 국가성립이 가능하다는 한국주류사학계의 이상한 논리를 거스르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주류사학계의 이런 비학문적인 견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문제는 우리민족이 치욕을 겪었던 대일항쟁기와 연관이 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이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 찬란한 우리의 민족사를 말살·왜곡하였다.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두고 친절하게도(?) 우리 조선민족의 역사를 새로 써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조선사>이다. 그런데 일제가 만들어준 <조선사> 37권에는 단군조선이 없다. 당연히 단군도 없다.
그렇다면 북한 학계는 단군조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먼저 북한 학계는 단군조선을 역사로 인정하고 있다. 그것도 개국 시기를 서기전 30세기 초로 잡고 있다. 단군조선을 전(前)조선과 후(後)조선 으로 나누는데 전조선의 존속시기를 약 1500년으로 본다. 그러면서 우리 역사에서 첫 고대국가이며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고대국가라고 못 박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규원사화>를 인용하며 전(前)조선시기의 47대 단군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규원사화>는 근세조선 숙종 때 북애자라는 분이 쓴 책으로 1972년에 국립중앙도서관이 진본임을 판명한 사료이다. 그 책에는 단군 47분의 이름과 치세시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1대 왕검~47대 고열가). 현재 남한에도 진본이 보관되어있지만 주류강단사학계에서는 규원사화를 위서(僞書)로 분류한다.
이어 단군조선을 실증하는 문헌사료로 <삼국유사> 고조선 편을 인용한다. 일제 조선총독부는이 삼국유사의 고조선 편을 ‘단군전설’, 또는 ‘단군신화’라고 깎아내렸다. 이것을 현재 남한 주류 사학계가 이어받아 ‘단군신화’라고 퍼뜨려 왔다. <삼국유사> ‘고조선’에는 단군을 언급하고 있는데 저자인 일연은 자신의 주장을 쓰고 있지 않다.
모두 별도의 사료를 인용하여 그것을 그대로 적시하고 있다. 그만큼 객관성이 있고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다. 먼저 일연이 인용한 사료는 <위서>라는 책이다. 여기에는 “2000년 전에(삼국사기가 쓰일 시점으로 부터)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개국했다. 개국 시기는 중국 요임금이 일어난 때와 같다.”고 기록되어있다. 서기전 2333년 단군기원의 근거다. 그런데 일제는 이 <위서>기록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손영종 교수는 <위서>의 기록을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밝혀낸다. 그러면서 <삼국유사> 저자인 일연이 첫 장부터 없는 사실을 인용했을 리가 없다고 덧붙인다. 또 <삼국유사>외에 <제왕운기>, <동국사략>, <수산집> 등 단군 관련 우리민족이 남긴 문헌을 모두 동원해서 단군조선의 존재와 존속 시기를 밝히고 있다. 또 북한에서 발굴된 고인돌 등 고고유물과 유적으로 실제 한 역사임을 강조한다.
북한학계에서 제시하는 자료를 보면, 남한 주류 학계가 단군조선 부정 근거로 제시하는 자료보다 풍부하고 사실성이 강하다. 그것은 취하는 사료의 폭이 넓다는 의미일 것이다.
해방 73년이 되어 가고 있으나 남한은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주류 역사학계는 8.15 해방 후 지금까지 일본이 써준 역사책을 집어 던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역사 식민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4월 현재 남과 북에는 평화와 교류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 조만간 북측 역사계의 사료들도 다시 보게 되리라 기대해본다. 십 수 년 간 더 정치하고 치밀하게 축척되었을 북측의 역사관련 연구물들이 남한 국민들에게 소개된다면 우리 눈을 멀게 하고 있는 식민사학도 보다 쉽게 청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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