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40] 예수의 성인례를 위한 성전에서의 시험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5/20 [06:53]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40] 예수의 성인례를 위한 성전에서의 시험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5/20 [06:53]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1944. 12. 21.

 

명절날의 성전이다. 사람들이 성벽의 여러 문으로 들어와 마당과 안뜰과 회랑들을 지나서, 성전의 건물 집단이 흩어져 있는 각기 다른 높이의 땅에 세워진 이 건물 저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작은 소리로 성시를 읊으면서 예수의 가족 집단도 들어온다. 남자들이 먼저 들어오고, 여자들이 뒤따라 들어온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과 합류하는데, 나자렛에서 온 사람들인지 예루살렘의 친구들인지 나는 모르겠다.

 

지극히 높으신 분을 예배한 다음, 내 생각에는 남자들만이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에서―여자들은 약간 아래에서 멈춰 섰다― 요셉은 아들을 데리고 반대 방향으로 마당들을 다시 건너온다. 그는 어떤 곳에 이르러 방향을 바꾸어 넓은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 방은 회당(synagogue)처럼 생겼다. 성전 안에도 회당들이 있는 건가? 나는 잘 모르겠다. 요셉이 한 레위 인에게 말하자 그 사람은 줄무늬가 있는 휘장 뒤로 사라졌다가 나이 많은 사제들과 함께 돌아온다. 나는 그들이 사제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그들은 율법지식에 있어 선생들이고, 그래서 신자들을 시험할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이다.

 

요셉이 예수를 소개한다. 먼저 두 사람은 별로 높지 않은 나무 의자에 점잖게 자리 잡은 열 명쯤 되는 박사들 앞에서 상체를 깊이 숙여 인사한다.

 

“이 아이는 제 아들입니다. 그는 석 달 열이틀 전에 율법에서 성년이라고 규정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아들이 이스라엘의 계명에 따라 성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아이의 체격으로 보아 그가 유년기를 벗어났고 이미 미성년자가 아님을 보여 준다고 생각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아이의 아비인 제가 여기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판단하기 위해 친절과 정의로 시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 시간을 위해, 그리고 율법의 아들로서의 품위를 가지게 하기 위해 이 아이를 준비시켰습니다. 이 아이는 계명과 전통과 옷 술과 양피지에 적힌 관습과 성서의 문구들을 압니다. 도한 이 아이는 매일의 기도와 축복을 욀 줄 압니다. 이 아이는 율법 자체와 할라쉬야(Halalcia)와 미드라쉬(Midrasc)와 아가다(Agada)라는 율법의 세 가지(branch)도 알고 있어 사람으로서 행동할 줄 압니다. 따라서 저는 이 아이의 행동과 죄로 인한 책임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이 아이가 계명에 복종하고, 계명을 소홀히 하는 데 대해 책임져야 합니다. 부디 이 아이를 시험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소. 얘야, 앞으로 나오너라. 이름이 무엇이냐?”

“나자렛 사람 요셉의 아들 예수입니다.”

 

“나자렛 사람, 그럼 글을 읽을 줄 아느냐?”

“예, 라삐님. 저는 쓰인 말과 그 말 자체로부터 해석된 말을 읽을 줄 압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닫혀 있는 투박한 조개껍질 속에 들어 있어 보이지 않는 진주처럼 외양 속에 감추어져 있는 은유와 상징의 뜻도 이해한다는 말씀입니다.”

 

“총명한 대답이고, 대단히 슬기로운 대답이다. 이런 말은 어른의 입에서도 듣기가 매우 드문 일인데, 어린이에게서 그것도 나자렛의 어린이에게서 듣게 되다니!”

 

열 사람이 주의를 집중한다. 그들의 눈은 당돌하지는 않지만 겁도 내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자신들을 쳐다보는 아름다운 금발 소년을 잠시도 놓치지 않는다.

 

“너는 대단히 박식할 것이 틀림없는 네 선생님을 명예롭게 한다.”

“하느님의 지혜가 그의 의로운 마음에 들어 있었습니다.”

 

“여보시오, 이런 아들을 두었으니 당신은 참으로 행복하오!”


홀 끝 쪽에 있는 요셉이 빙그레 웃으며 절한다.

그들은 예수에게 세 개의 두루마리를 주며 말한다.


“금빛 리본이 달린 두루마리를 읽어라.”

 

예수는 두루마리를 펼쳐서 읽는다. 그것은 십계명이다. 예수가 처음 몇 마디를 읽자 한 시험관이 두루마리를 나꿔채며 말한다.


“계속해서 외어라.”

 

예수는 어찌나 자신 있게 외우는지 마치 책을 읽는 것 같다. 예수는 주님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깊숙이 절한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느냐? 왜 그렇게 하느냐?”

 

“그 이름이 거룩하기 때문에 내적, 외적 존경심을 나타내면서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하들은 왕 앞에서 절합니다. 그 왕은 잠시 동안은 왕이지만 실은 먼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영으로만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여기 계시는 왕 중의 왕, 이스라엘의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는 모든 사람들이 영원히 복종해야 하므로 모든 사람이 그분께 절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매우 지혜롭구나! 여보시오. 우리는 당신 아들을 힐렐이나 가말리엘에게 사사시키도록 권하오. 이 아이는 나자렛 사람이지만 그의 대답을 들으니 새로운 큰 박사가 될 것으로 기대하게 되오.”

 

“제 아들은 성인입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입니다. 저로서는 그의 뜻이 정직하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얘야, 들어라, 너는 말했다. ‘축일들을 거룩하게 지내라. 너만이 아니라, 네 아들과 네 딸, 네 남종과 네 여종, 또한 짐 싣는 짐승에 이르기까지 안식일에는 일하지 마라.’ 대답해라. 만일 안식일에 암탉이 알을 낳거나 양이 새끼를 낳으면 그 달걀이나 어린양을 이용하는 것이 율법에 맞는 것이냐, 아니면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냐?”

 

“많은 라삐들이―가장 마지막 분인 삼마이 선생님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만―안식일에 낳은 달걀은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고 단언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람과 동물이 다르고, 누구든 출산과 같은 자연적 행위를 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과 다릅니다. 만일 제가 말에게 일을 시킨다면 저에게 그 죄의 책임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채찍으로 짐승에게 일을 시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암탉이 난소에서 성숙해진 알을 낳거나 양이 새끼가 나올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어린양을 낳는다면 이 행동은 그 자체로도 죄가 아니고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죄가 아니며, 안식일에 낳은 달걀도, 어린양도 죄로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안식일에 행한 일은 무엇이든 죄가 된다면, 어째서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단 말이냐?”

 

“새끼를 배고 낳는 것은 창조주의 뜻에 따르는 일이고,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에게 주신 법칙에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암탉은 성숙에 필요한 시간이 지나면 알이 완전해지고 낳아질 준비가 된다는 법칙을 따르는 일밖에 하지 않습니다. 양도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이 법칙에 복종하는 일 밖에 하지 않습니다.

 

창조주께서는 1년에 두 번, 들에 꽃이 만발하는 봄과 나뭇잎이 떨어지고 추위가 엄습해 와 사람들이 두꺼운 옷으로 몸을 감쌀 때 양들이 짝짓기 하도록 조절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수확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피곤하게 되는 달이나 서리 때문에 가장 을씨년스러운 달과 그 후의 다른 시기에 영양분이 풍부한 젖과 고기와 치즈를 공급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때가 되어 양이 새끼를 낳으면, 그 어린양은 신성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창조주께 복종한 결과 생긴 열매이기 때문에 제단에 바쳐도 되는 신성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이 아이를 시험하지 않겠소. 그의 지혜는 어른들의 지혜보다 크오. 실로 놀랍소.”

 

“아니오. 이 아이가 상징들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으니, 이 아이의 말을 더 들어봅시다.”

 

“우선 시편 하나와 축복과 기도문을 외라고 합시다.”

 

“계명들도.”

 

“그럽시다. 미드라쉬오를 외워라.”

 

예수는 태연하게 ‘이것을 하지 마라. 저것을 하지 마라’ 하는 것들을 지루하게 줄줄 왼다. 불평하기 좋아하는 우리가 지금도 그 모든 제한을 받아야 한다면, 구원받는 사람은 한 명도 없게 될 것이다.

 

“됐다. 이제는 초록색 리본이 달린 두루마리를 펴라.”


예수는 펴서 읽기 시작한다.

 

“더 앞으로, 좀 더 앞으로 가서.”


예수는 시키는 대로 한다.

 

“됐다. 읽고서 상징이 있다고 생각되거든 설명해 보아라.”

 

“거룩한 말씀에는 상징이 없는 일이 드물지만, 그 상징을 알아내고 그것을 적용할 줄 모르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그럼 읽겠습니다. 열왕기 4권 22장 10절, ‘공보대신 사판은 왕에게 ‘대사제 힐키야가 저에게 책을 한 권 주었습니다’ 하면서 왕의 면전에서 크게 읽었다. 그 율법책의 내용을 듣자 왕은 자기의 옷을 찢었다. 그리고는…’”

 

“이름들은 건너뛰어라.”

 

“‘…명하였다. 이번에 찾아 낸 이 책에 여러 가지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에 대해 나와 온 유다 백성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야훼께 나가 여쭈어 보시오.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하라고 하셨는데, 우리 선조들이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불길 같은 야훼의 진노를 사게 되었소.’”

 

“그만 하면 되었다. 이것은 여러 세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이 역사적 사건에서 너는 어떤 상징을 발견하느냐?”

 

“저는 영원한 것은 시간과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영원하시고, 우리의 영혼도 영원하고, 하느님과 우리 영혼의 관계도 영원합니다. 그 때에 벌을 유발했던 것은 지금 벌을 유발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고, 죄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이스라엘은 이제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빛은 하느님께 구해야 하는 것이지 보잘것없는 인간들에게 청할 것이 아닙니다. 정의와 하느님에 대한 충성 없이는 사람은 빛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를 짓고, 하느님께서는 진노하셔서 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지식이 없다고? 아니, 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그럼 육백열세 가지 계명은?”

 

“우리에게 계명들은 있지만, 그것들은 단지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알지만, 실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징은 이런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항상 주님의 뜻을 알려면 주님께 여쭈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뜻에 따를 수 있게 되어 그분의 진노를 자기에게 불러오지 않게 됩니다.”

 

“이 아이는 완전하오. 교묘한 질문의 덫도 이 아이를 어지럽히지 못하였소. 이 아이를 진짜 회당으로 데려갑시다.”

 

그들은 더 넓고 더 잘 꾸며진 방으로 건너간다. 여기서 처음 하는 일은 예수의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다. 요셉이 곱슬곱슬한 잘린 머리카락을 받는다. 그 다음 그는 그의 빨간 옷에 허리를 여러 바퀴 감는 긴 허리띠를 매 준다. 그는 또한 예수의 이마와 팔과 겉옷에 불꽃처럼 생긴 작은 헝겊을 붙이는데, 장식 핀 같은 것으로 고정시킨다. 그런 다음 그는 성시를 읊는다. 요셉은 주를 찬미하고 아들을 위하여 모든 축복을 청하는 긴 기도를 바친다.

 

예식이 끝났다. 예수는 요셉과 함께 나와 그들이 떠나갔던 곳으로 돌아와 남자 친척들과 합류한다. 그들은 어린양 한 마리를 사서 바치고 나서 목을 딴 희생제물을 가지고 여자들 있는 곳으로 간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입을 맞추는데, 예수를 못 본 지 여러 해 되는 것처럼 한다. 마리아는 어른의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한 예수를 들여다보며 쓰다듬는다.

 

그들이 밖으로 나온다. 환상이 끝난다.

 

원본 글 바로가기

 

 

 

인권 18/05/21 [09:26] 수정 삭제  
  나치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일본군의 학살과 성노예
유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수십년

미국은 팔래스타인 인종차별 학살의 앞잡이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