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훈장? 정부는 그의 훈장을 취소해야 마땅하다.

임두만 | 기사입력 2018/06/25 [15:14]

김종필 훈장? 정부는 그의 훈장을 취소해야 마땅하다.

임두만 | 입력 : 2018/06/25 [15:14]

[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정부가 결국 김종필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장례 3일째인 25일 오후 125분 정부를 대표해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아 김 전 총리 영전에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이어 김 장관은 훈장을 추서한 뒤 "반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정부의 의전 절차와 관례에 따라 총리를 지낸 분들에게 무궁화장을 추서를 했던 것이 존중돼야 한다""정부를 책임졌던 국무총리로서의 역할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노고에 감사를 표해 왔다"고 덧붙였다.

 

▲ 김종필 장례3일째. 조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 인터넷언론인연대

 

그러면서도 문재인 정부는 반대가 심하자 대통령이 조문을 하지 않은 것으로 무마하려 한다. 그리고 이 또한 김 장관은 "문 대통령께서 유족들에게 정중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유족들에게 최대한 예우를 갖추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속 보이는 행위이다. 훈장을 추서했으면 훈장에 상당하는 예우를 하던지 김부겸의 말대로 국무총리를 지낸 경력에 대한 예우은 하되 김종필이 역사에 저지른 악행을 용납할 수 없어 조문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당당하게 표현해야지 이 모두를 두루뭉술하게 넘기려는 자세는 당당하지 못하다.

 

따라서 나는 이런 정부의 자세를 비판하면서 김종필에게 훈장을 수여하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김종필의 용납할 수 없는 죄는 사상, 이념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정상적으로 살 수 없도록 혁명공약을 만든 것과 이를 교범으로 박정희 정권과 정보부가 저지른 악행. 이 죄민으로도 김종필은 훈장을 받을 대상이 아니다. 김부겸의 총리로서의 역할에 대한 훈장은 이유가 될 수 없다.

 

5.16 쿠데타의 주범인 박정희와 김종필은 공산당과 좌익 가족이다. 김종필이 중정부장으로 만든 세습 연좌제로 보면 가장 먼저 불이익을 받아야 할 핵심좌파에 좌익 가족...

 

그런데 그들이 권력을 잡았으며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좌파도 아니고 좌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심지어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까지 정상적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 수 없도록 했다.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고’...로 시작하는 혁명공약... 그 전문은 이렇다.

 

1. 반공(反共)을 국시(國是)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2,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3.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한다.

4,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民生苦)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5, 민족적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6,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민주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이 혁명공약은 김종필 당시 예비역 중령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에 숨은 내용은 미국이 쿠데타를 승인하게 하려는 것이다. 즉 쿠데타 핵심인 박정희가 194610월 일어난 대구폭동 핵심 주역인 박상희의 친동생이자 여수주둔 26연대 반란사건 당시 남로당 세포로 체포되어 그 주동자들을 배반하고 사형을 면했던 사람인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희는 김창룡에게 체포되어 사형을 받을 위기였으나 백선엽 정일권 등이 도와서 사형을 면하고 강제전역 후 민간인이 되었다. 이후 군속으로 복무 중 재임관을 한 경력 때문에 미국은 박정희 세력의 쿠데타를 공산당의 남한 적화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김종필은 이런 미국의 뜻을 읽고 박정희 쿠데타 세력이 반공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야 했다. 즉 박정희 쿠데타 세력이 반공세력이며 북한을 막아내기에는 유약한 장면정부보다는 강한 군사정권이 더 필요할 것이란 확신을 미국 측이 갖도록 한 것이다. 그것이 혁명공약 1호로 '반공 국시'를 택한 이유다.

 

때문에 이어지는 2항은 당연하게 들어갈 내용이며, 3.4,5항은 내국인용이다. 3항과 5항은 특히 폭력통치로 국민을 다잡겠다는 선언. 이의 실행이 병역기피자. 좌익, 6.25부역자, 깡패, 부랑아 등 명칭으로 국민들을 무작위 체포, 국토건설단을 만들어 강원도 정선 제주도 등지로 보내 무자비한 인권침해를 했다.

 

4항은 경제개발이란 이름으로 한일협정을 하고 그 보상금과 차관으로 들인 밀가루 시멘트 등을 배급하여 새마을 운동이란 이름으로 환심을 샀다. 하지만 이 또한 뒷전으로 돈을 빼돌인 흔적이 새나라 택시, 사카린 파동, 증권 파동 등의 권력형 비리로 나타났다.

 

당시 초등학생들까지 외우도록 했던 혁명공약 1번 '반공국시' 구호는 자신들의 쿠데타를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수많은 세습 연좌제’를 만들어 낸 악행의 시초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박정희는 공산주의자로 남로당원이었고 북한 김일성 정권에 협조한 세포조직이다. 김종필은 박정희의 형인 박상희의 사위다. 박상희는 1946년10월 좌익들 대구항쟁 당시 2000여명의 군중들 선두에서 경찰서를 공격, 경찰관과 우익인사들을 감금했다.

 

이어 구미면사무소와 선산군청을 타격하여 식량 130여 가마니를 탈취하고, 관청 서류를 전량소각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한 총을 맞고 사살되었다. 이후 이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핵심공산주의자로 처벌을 받았다. 따라서 김종필은 세습 연좌제의 핵심 당사자다.

 

5.16후 북한 김일성은 박상희 친구인 황태성을 밀사로 파견했다. 지금으로 보면 공개되지 않은 남북한 당국의 물밑 대화 시도였다. 남쪽으로 내려 온 황태성은 밀사로서 박정희 김종필 등과 회담을 원했으나 서울 입성 두 달이 조금 지나서 거물간첩으로 체포된 것으로 발표되었고 이후 사형을 당했다.

 

내막은 여러 설이 있으므로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반공을 국시로 내세워 미국의 의심을 털어내야 할 박정희 김종필에게 황태성은 위험한 물건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황태성 사건, 국토건설단 사건, 좌익과 공산당 연계 재조사를 통한 연좌제 적용 소급 등 김종필의 '반공 국시' 작전은 성공했다. 미국은 박정희 쿠데타를 인정했고. 박정희는 군복을 벗은 뒤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 헌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행세할 때 국민들은 아버지가 공산당이거나 할아버지 심지어 장인이나 처남이 공산당과 연계되어 있을 경우 군인 장교도, 경찰도 임관할 수 없었다. 뱃속에 있었거나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아이들도 직계나 방계, 처가의 선대가 공산당과 연계된 것이 보이면 같았다.

 

이것이 새습 연좌제의 악행이다. 반공(反共)을 국시(國是)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 결과물이다. 민족적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 결과물이다. 김종필 훈장? 정부는 김종필에게 훈장을 추서할 거면 김종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수백수천만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훈장보다 그 일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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