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숙' 반독재 투사의 삶...장준하 선생 옆에서 영면에 들다

이명수 기자 | 기사입력 2018/07/04 [20:21]

'김희숙' 반독재 투사의 삶...장준하 선생 옆에서 영면에 들다

이명수 기자 | 입력 : 2018/07/04 [20:21]

 [취재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     편집 추광규 기자]


지난 2일 타계한 민족 지도자 장준하 선생의 부인 故김희숙 여사의 장례식이 4일 가족장으로 거행됐다.

 

이날 김희숙 여사는 남편 장준하 선생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장준하공원 장선생 옆에 합장됐다. 이날 장례식에는 가족과 친지, 지인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3남 2녀들 중 미국거주 막내아들 장호준 목사는 끝내 '장준하 정신'을 지키기 위해 김희숙 여사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장목사가 민족지도자 장선생을 암살한 반민족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의 불의에 저항하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해 법원이 벌금 200만 원을 판결한 것에 대해 죄를 인정해야 입국이 가능한데 '불의에 타협 할수 없다'며 입국을 거부하고 어머니 임종도 보지 못했다.

 

▲  사진 = 인터넷언론인연대

 

 

제주도에서 찻집을 하는 막내딸은 ‘어머니가 섭섭해 하지 않았겠는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머니를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다"며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지독하게 강인하신 분이었다"고 전했다.   

 

고 김희숙 여사는 지난 1926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정주 신안소학교 시절, 교사였던 장준하 선생과 만나 1943년 결혼했다. 이후 장준하 선생이 종합월간지인 ‘사상계’를 발행할 당시 편집과 교정 업무를 봤다.

 

▲ 사진 = 인터넷언론인연대    

 

 

지난 67년 제7대 총선 때는 옥중 출마한 남편을 대신해 유세연설에 나섰다. 장준하 선생은 압도적인 표차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지난 75년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한 후에는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삯바느질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지난 2001년 서울시와 국가보훈처의 배려로 국가유공자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 독립유공자 연금을 받아 생활했다.

 

▲ 사진 = 인터넷언론인연대    

 

 

장준하 선생은 일제에 항거, 광복군에 합류해 장교로 활동했다. 해방 이후 친일반민족자 박정희 독재에 맞서서 민주화 운동을 펼치던 그는 지난 75년 8월 경기 포천시 이동면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사진 = 인터넷언론인연대    

 

 

당시 박정희 정권 권력기관에 의해 장선생이 암살당했다는 것이 정설 이었다. 그러다 지난 2012년 유골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원형 모형의 두개골 함몰골절이 발견되며 시신을 감정한 결과 타살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장준하기념사업회 등 관련 단체들은 장준하 선생 암살 진상규명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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