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KBS 황현택 기자의 녹취록
(1) ‘제3의 부표’ 특종보도의 주역 KBS 황현택 기자
천안함의 진실이 온전히 드러나면 KBS 황현택, 최영윤, 이병도 세 기자는 언론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상’을 받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은 기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세 기자는 한주호 준위 사망 직후 백령도에 들어가 ‘의문의 부표’에 관한 취재를 하였으며 그 결과 ‘천안함이 아닌 또 다른 함선이 가라앉아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들의 취재가 없었다면 천안함 침몰 사건의 진실은 더 오랜 세월 미궁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세 기자는 방통위에 제소되어 불려다니며 조사와 진술로 시달려야 했고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KBS는 정부와 국방부의 강력한 압박에 못 이겨 해당 보도를 하루 만에 사이트에서 내리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세 기자는 다시 복귀하고 부분적으로 명예를 회복하였으나 세상은 그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쏟았던 노력보다는 그들이 처벌받았던 사실만을 기억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KBS 황현택 기자에게 1심 법정의 증인으로 나와 진실을 말해주기를 여러 차례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우 곤란해했고 KBS 회사측에서도 허락해주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명박 치하의 KBS는 운신의 폭이 너무나도 좁았으며 최시중이 장악하고 있던 방통위의 위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가하며 막강하게 언론을 장악(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 2012년 초 황현택 기자를 만나 다시 간곡히 요청을 하니 황현택 기자는 고민 끝에 법정진술이 아닌 서면진술로 하면 좋겠다며 그가 취재한 내용을 녹취록과 함께 공증 후 재판부에 제출하는 것에 동의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2012년 2월 21일 관련서류 일체에 대해 ‘법무법인 두레’에서 공증하여 1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2) KBS 취재팀의 백령도 체류 및 취재기간
한주호 준위가 작업 중 사망하자 KBS 백령도 특별취재팀(황현택, 최영윤, 이병도 기자)은 2010년 4월 1일(목) 백령도에 입도하여 4월 10일까지 취재를 합니다.
그리고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에 접근하게 됩니다.
(3) KBS 취재팀과 UDT 대원들과의 긴밀한 관계
황현택 기자는 취재를 위해 UDT 대원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상당한 신뢰관계를 쌓았다고 진술합니다.
(4) UDT 동지 회원들의 활동 내용
황현택 기자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UDT 대원들의 활동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1심 재판 때 법정에 출석한 증인 이헌규 씨는 1차 및 2차 모두 참여하였던 것으로 증언한 바 있습니다.
(5) ‘제3의 부표’ 명칭
‘제3의 부표’라는 명칭은 KBS취재팀이 붙인 이름입니다. 황현택 기자는 기존에 설치된 함수(제1부표), 함미(제2부표)와 구분하기 위하여 ‘제3의 부표’라 칭했다고 합니다.
함수 및 함미는 각각 3.28 오후 8시경(함수, 제1부표 설치) 및 3.28 오후 10:30분경(함미, 제2부표 설치) 발견됩니다.
그러나 UDT 대원들이 한주호 준위가 사망한 지점으로 지목한 제3의 부표는 천안함 함수, 함미가 발견된 다음 날인 3월29일 한주호 준위가 어군탐지기로 발견하여 한 준위가 직접 설치했다는 사실이 예비역 UDT 이헌규 씨의 증언을 통해 밝혀집니다.
(6) ‘제3의 부표’는 누가 언제 설치하였나?
함수와 함미는 사고 이틀 후인 3월 28일 저녁 차례대로 발견되고 제1부표(함수)와 제2부표(함미)가 설치됨으로써 위치는 확고히 정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인 3월 29일 한주호 준위는 또 다른 수색에 나섭니다. 그리고 어탐 (어군탐지기)을 이용하여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물체(대형구조물)를 발견한 뒤 그곳에 한주호 준위가 직접 부표를 설치합니다.
한주호 준위는 또 하나의 부표(제3의 부표)를 제1부표(함수) 및 제2부표(함미)와는 분명히 다른 위치에 설치하였으며 날짜 또한 함수, 함미보다는 하루 뒤인 3/29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찾기 위해 한주호 준위는 어군탐지기를 작동하면서 수색을 하였습니다. 해난구조대가 발견한 함수, 어선이 발견하고 웅진함이 확인한 함미와는 확연히 다른 내용인 것입니다.
(7) UDT 대원들은 왜 ‘제3의 부표’를 함수라 했을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주호 준위가 예비역 UDT대원들에게 그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루 전 3/28일 저녁 함수를 발견했기 때문에 함수가 어딘지 모를 리 없는 한주호 준위가 UDT예비역에게 ‘제3의 부표’위치를 ‘함수’라 말했기 때문입니다.
한 준위가 왜 함수가 아닌 곳을 함수로 말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복수의 UDT 대원들이 모두 제3의 부표 위치를 함수로 인지한 것을 보면 UDT대원들이 잘못 들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한주호 준위가 사실과 다르게 그곳이 함수가 있는 위치라 말했던 것이지요.
황현택 기자가 취재한 녹취록에는 1심 공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이헌규 씨와의 통화내용 외에 정철 UDT 대전지회장과의 대화가 담겨 있는데, 대화의 내용을 보면 정철 지회장 또한 그곳을 ‘함수’로 알고 있었고, 심지어 크레인이 세워진 곳(함수)을 함미로 알고 있을 정도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8)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함수, 함미 그리고 제3의 부표 위치 분석
용트림 전망대에서 대청도 쪽을 바라보면 <함수크레인. 제1부표>가 있으며, 우측 해안 능선을 바라보면 <함미크레인, 제2부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제3부표는 <함수크레인, 제1부표> 보다 훨씬 가깝게 있습니다.
(9) 故 한주호 준위 추모제 - 2010. 4. 3
2010. 3. 29 백령도에 입도한 UDT 예비역 대원들은 3/30 한주호 준위가 사망하는 사고를 당하자 3/31 전원 철수합니다.
그리고 4/2 다시 2차로 백령도에 입도하여 4/3 오전 10시 용트림 전망대에서 故 한주호 준위 추모제를 갖습니다. 용트림 전망대는 백령도 남쪽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위치입니다.
그런데 추모제에서 추모사 낭독을 맡았던 정철 UDT 동지회 대전지회장은 뼈 있는 발언을 합니다.
화면 자막에는 <부표가 있는 곳 앞에서 추도사를 읽겠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동영상을 실제로 돌려보면 정철 지회장은 <부표 설치한 곳을 바라보며 추도사를 낭독하겠습니다>라며 추도사를 읽기 시작합니다.
<부표 설치한 곳>은 <한주호 준위가 부표 설치한 곳>을 의미하며 용트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부표는 <제3의 부표>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용트림 전망대에서 함수의 부표는 거리가 멀어 잘 보이지도 않을 뿐만아니라, 함수 부표는 한주호 준위가 설치하지도 않았습니다.
질문지에서 피고인측 변호인은 황현택 기자에게 혹시라도 용트림전망대에서 함수 크레인에 설치된 부표가 잘 보이는 것은 아닌지 질의를 하였습니다만 황현택 기자는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고 망원렌즈를 통해 가능한 수준”이라는 답변을 하였습니다.
(1) KBS 취재기자들이 ‘제3의 부표’에 의문을 가진 계기는?
KBS 취재팀의 황현택, 최영윤, 이병도 기자가 ‘제3의 부표’에 관한 취재에 돌입하게 된 계기는 ‘크레인’ 때문이었습니다. UDT 동지회 외원들과 백령도에 함께 있을 당시 KBS 취재기자들은 4/3 추모제에 이르기까지 단순 취재에 열중하였으며 일체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10년 4월 5일, <구조>에서 <인양>으로 전환되면서 UDT 대원들이 백령도를 떠났고, 공교롭게도 그날 함수와 함미가 가라앉은 지점에 크레인들이 세워지는데, 그 위치를 보니 그때까지 UDT 대원들이 잠수를 하고, UDT 대원들 스스로 ‘함수’라고 지목한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 함수 크레인이 세워지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KBS 기자들이 합리적인 의심과 함께 본격적인 취재에 돌입하였던 것입니다.
그에 따라 상황을 다시 정리한 KBS 취재기자들은 4월 6일 정철 UDT 대전지회장, 이헌규 전 UDT 대원 그리고 최영순 소령에게 전화를 통해 인터뷰를 하고 인터뷰 내용을 취합하여 4월 7일 보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KBS 보도내용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제소 및 심의과정에서 <박승규 KBS 보도국 사회팀장>과 <황현택 KBS 보도국 기자>가 출석하여 증언함으로써 더욱 소상히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황현택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2) UDT 동지회 회원들의 고충과 딜레마
2010년 4월 7일 KBS 보도가 나간 후 UDT 동지회 회원들이 정부나 국방부로부터 어떠한 곤욕을 치렀을 지는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제3의 부표 아래에는 천안함 함수가 아닌 ‘대형구조물’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한주호 준위는 함수가 아닌 그곳에서 모종의 작업을 수행하던 중 사망하였습니다.
제3의 부표 아래 가라앉은 대형구조물의 실체와 천안함과의 충돌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하여 다음 글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신상철 (前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저작권자 ⓒ 신문고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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