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인격이 중요하면..'문근영 인격은?'

[뉴욕칼럼] 지만원 판결, 사법부 신뢰 깎아 먹는 판사의 독재

채수경 | 기사입력 2009/11/05 [12:30]

지만원 인격이 중요하면..'문근영 인격은?'

[뉴욕칼럼] 지만원 판결, 사법부 신뢰 깎아 먹는 판사의 독재

채수경 | 입력 : 2009/11/05 [12:30]
시비가 붙었을 때 옳고 그름을 가려 심판하는 것을 재판(裁判)이라고 한다. 마름질 할 재(裁)는 옷 의(衣)와 창 과(戈)와 재주 재(才)가 합쳐진 것으로서, 옷을 만들기 위해 창처럼 날카로운 것으로 마름질하는 것을 말하는 바, 옷을 입는 사람의 치수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제멋대로 옷을 만들어놓고 입으라고 강요하는 게 바로 독재(獨裁)다.

또 판단할 판(判)은 ‘나뉘다’라는 의미도 지닌 여덟 팔(八)과 소 우(牛)가 합쳐진 반 반(半)에 칼 도(刀)가 붙은 것으로서 어떤 것을 칼로 정확하게 반 가름한다는 의미, 시비가 붙은 당사자들의 이런 저런 형편을 감안하여 공정한 결론을 내리는 게 ‘裁判’의 핵심이다. 
 
▲ o.j 심슨 살인사건 재판당시 심슨이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고 있다.     © 편집부
그렇지만, 신처럼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감정에 휩쓸리기 쉬운 인간이 한 치의 치우침도 없이 정확하게 옳고 그름을 가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법부 독립을 민주주의의 시금석으로 삼는 것도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다 아는 상식에 속한다.
 
사법부의 독립만으론 재판의 공정성이 담보되지는 않는다. 판사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 경우 재판정의 ‘獨裁’를 막을 길이 없다.
 
그래서 생겨난 게 배심원 제도(jury system)지만 기실 배심원들도 감정에 휩쓸리기는 마찬가지다.

판사보다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훈련이 덜 된 탓에 공분을 일으키는 흉악범들에게는 유죄평결을 내리는 경향이 짙을 뿐만 아니라 피고가 배심원의 동정심을 유발하여 무죄평결을 받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1995년 o. j. 심슨 살인사건 재판 때도 심슨측 변호인단은 “심슨이 사건을 수사한 백인경찰들로부터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인종갈등 사건으로 몰아간 끝에 12명 중 9명이 흑인이었던 배심원단으로부터 무죄 평결을 이끌어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었다.
 
요즘 한국의 판사들이 욕을 배터지게 얻어먹고 있다. 신영철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촛불시위 참가자 재판 압력 물의, 나영이 사건 형량 시비, 삼성사건 처리, “절차상 위법은 인정되지만 법안 가결은 무효로 볼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관련 결정 등.
 
공정성 시비가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어제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김시철 부장판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세칭 ‘보수논객’ 지만원 비판 글을 올린 30대 남자에게 형법상의 모욕죄를 인정하여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데 대해 네티즌들의 항의가 들끓고 있다.
 
지난 해 11월 지만원이 “문근영은 빨치산 선전용”이라고 주장하여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30대 남자가 ‘지만원, 지는 만원이나 냈나?’라는 글을 올려 “지씨의 언행은 개그의 공식에 맞아 떨어진다.
 
나이 65세의 노인네가 20세의 어린여자에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빈정거린 데 대해 김 부장판사는 “피해자의 이름·나이 등을 가지고 조롱하거나 터무니없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등 인격을 모독하는 경멸적인 감정을 나타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공적인 관심사에 관한 표현의 자유’는 전혀 고려치 않은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지거니와, 65세의 나이에 손녀 같은 아가씨에게 ‘빨치산 선전용’이라고 빈정거린 지만원의 몰상식하고 천박한 태도에 비하면 ‘지는 만원이라도 냈나?’라는 빈정거림은 훨씬 점잖아 보이건만 무조건 원고 편만 든 것 같아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친고죄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내린 것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지만원 인격만 중요하고 문근영 인격과 국민감정은 중요하지 않나? 한국서도 지난 2008년 1월부터 ‘배심원 재판’을 시험적으로 운용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판사들을 못 믿기 때문”, 그걸 당사자인 판사들만 모르는 것 같아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반성해야 한다.
 
사법부 권위와 신뢰는 헌법이 보장해주는 게 아니라 판사들의 공정한 판결로 쌓아진다는 것도 모르는 판사들의 판단보다는 길거리를 막고 부딪치는 사람들의 판단이 더 공정할 거라고 믿는 국민들의 판단이 부끄럽지 아니한가?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원본 기사 보기:뉴민주.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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