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헌 윤봉길의사 순국 87주기 추모식 거행

권병건 기자 | 기사입력 2019/12/18 [10:03]

매헌 윤봉길의사 순국 87주기 추모식 거행

권병건 기자 | 입력 : 2019/12/18 [10:03]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황길수)는 19일 오전11시 용산구 효창공원 윤봉길의사 묘역에서 제87주기 추모식을 거행한다.
 

추모식에는 오진영 국가보훈처 서울지방보훈청장과 김원웅 광복회장,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 윤봉길잠수함부대원, 독립선열단체회원, 유족 등, 400여명이 참석하여 윤봉길의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명복을 빈다.

 

윤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1918년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한 이듬해 3·1만세운동을 목격한 후 일본식교육을 거부하고 보통학교를 자퇴했다. 그 후 오치서숙에 들어가 사서삼경과 신학문을 익히고 야학과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며 민족의식을 일깨우다가 23세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일왕 생일축하식 겸 일본군 상하이 점령 경축식 단상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대장 등 7인을 도륙하여 전 세계에 한국의 독립의지를 알리고 국내외 침체되었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장제스 국민당주석은 중국의 백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한 청년이 해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를 계기로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였다. 윤봉길의사의 의거에 깊은 감명을 받은 장제스는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서 연합국정상들에게 한국의 자유독립을 제의하여 카이로선언문에 한국독립조항이 명시되었다.

 

상하이의거 후 현장에서 피체된 윤의사는 그 해 5월 25일 일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같은 해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 육군공병작업장에서 총살형으로 25세에 순국하였다. 윤의사의 유해는 1946년 일본에서 봉환되어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고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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