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정(1907~1974)선생은 시문학사에서 일생을 오로지 시 창작에만 믈두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31년 김영랑‧박용철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했던 선생은 일제말 창씨개명을 거부하기 위하여 직장마저 그만두고 잠적할 정도로 저항정신을 표출 했습니다.
박목월(1915~1978)선생은 1939년에 ‘문장’지로 등단 한 후에 1940년대는 절필하면서 일제 말기 소극적인 저항을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8년이라는 나이차이를 두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정권으로 이어지는 근. 현대 역사의 격랑기를 헤쳐 나왔다는 공통점은 같습니다. 또한 두 분 다 정갈한 언어로 힘들고 고단했던 시기 민족의 마음을 달랬다는 점에서 그 족적은 뚜렷합니다.
대구 계성중학교 선생으로 재직했던 박목월 동성로 사택
박목월 선생의 손길의 온기를 더듬었던 것은 지난해 3월 입니다. 대구시청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오래된 가옥인데 옛 계성중학교 사택으로 사용됐다고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가옥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가장 큰 방은 다다미 8조짜리 그 다음으로는 다다미 6조짜리 이었습니다. 다다미 2조가 1평 남짓 된다고 하니 큰방은 4평 정도 입니다.
그리 크지 않은 가옥이었지만 원형 그대로 보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상당한 사료적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가옥에서 박목월 선생이 계성중학교에 부임한 후 이곳에서 1946년부터 1948년 까지 2년여 동안 거주했다고 합니다.
가옥은 지어진 100여년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주요 목재는 백두산 소나무를 사용하여 지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 박목월 선생이 해방공간에서 잠을 이뤘을 다다미 8조짜리 방에 서 있다 보니 7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추억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특히 낡았지만 툇마루 나뭇결에서는 좌우익의 고단한 싸움을 지켜보셨을 선생의 긴장하면서 거칠었을 그 숨결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해방 후 대구 한복판 이었던 이 가옥 주변에서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항의 하면서 봉기했던 1946년 대구 10.1 사건이 두 달여간 처절하게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전주상고 선생 '신석정'의 손길 보존한 전북 부안 '석정 기념관'
신석정 선생의 손길의 온기를 더듬었던 것은 지난 17일 입니다. 전라북도와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이 주최한 '아름다운 새만금과 함께하는 힐링여행'을 주제로 하는 '새만금팸투어'에서 입니다.
여행전문기자 및 블로거 운영자를 대상으로 1박 2일 일정으로 치러진 이번 행사 둘째 날 방문지가 바로 석정문학관 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 바로 옆에는 시인이 살았던 고택 ‘청구원’을 복원해 놓았습니다.
1934년에 지어졌다는 청구원은 초가 3칸의 집입니다. 촛불 슬픈목사 등에 수록된 시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쓰였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곳에서 1952년까지 거주하였던 곳으로 현 건물은 1997년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1931년 10월에는 시문학 제3호에 ‘선물’을 발표 하면서 시문학 후기 동인으로 참가했습니다. 1939년 11월에는 첫 시집 촛불을 인문평론사에서 간행했습니다. 1947년과 1956년 1967년 각각 2,3,4시집을 간행했습니다.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선은1길에 위치한 석정문학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영상세미나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설전시실에는 석정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좌우명과 친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시인의 지인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박한영 이인영 이병기 박목월 정지용 등 교류가 있던 시인 지인들과의 사진 문첩 등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또 이곳에는 대표시집 ‘촛불’ ‘슬픈 목가’는 물론 유고수필집 ‘난초 앞에 어둠이 내리면’ 등의 친필 원고 및 시집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또 시인이 사용하시던 유품인 책, 책꽂이, 책상, 병풍, 시계 등으로 서재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기획전시실에는 현실인식과 참여의식이 반영된 미발표시, 당대 여러 시인들 과의 서한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영상세미나실에는 학창시절의 에피소드 등 시인으로 입문하게 된 계기 등 석정 선생의 일생을 부안의 자연경관과 함께 영상으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이날 방문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시인이 애용했던 담뱃대와 손목시계 그리고 발행일이 1970년 9월 9일로 되어있는 주민등록증 등 개인 물품입니다.
가난 속에서도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라는 좌우명을 마음속에 새기고 그 지조를 잃지 않았던 시인입니다. 아직도 시인의 손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한 이들 물품에서 근현대사의 격랑을 온 몸으로 이겨냈던 그 마음을 읽어 봅니다.
한편 1박2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코로나19로 규모가 대폭 축소된 규모로 진행되면서도 '아름다운 새만금과 함께하는 힐링여행'이라는 취지를 충분히 살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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