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세운 뜻으로 그 하나만 꿰뚫는다"

이만수 전SK감독 | 기사입력 2022/06/16 [13:01]

"처음에 세운 뜻으로 그 하나만 꿰뚫는다"

이만수 전SK감독 | 입력 : 2022/06/16 [13:01]

 

라오스를 시작으로 전개되고 있는 동남아시아 야구 전파의 꿈. 이제 베트남이다. 최근 베트남 야구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야구협회가 설립되고 베트남어 야구교본이 출판되었으며, 박효철 감독이 오랜 미국 지도자 생활의 안락함을 뒤로 하고 야구 불모지 베트남 야구를 이끌기 위해 베트남으로 오는 등 야구 관련 이슈들이 쏟아지고 있다. 

 

베트남 야구가 많은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받는다는 것은 동남아시아 야구 전파를 삶의 마지막 목표로 살아가는 나에게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춤추며 즐거워할 일이다. 하지만 대중들이 바라보는 베트남 야구의 겉과 결과물들은 보이지 않는 베트남 야구. 그 현장 속에서 치열하게 발로 뛰는 사람들의 수고와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낯선 환경, 문화, 사람들과 맞닥뜨리며 헤쳐 나가야 되는 수많은 난관들이 그들을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라오스에서 10년의 시간 동안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을 꽤 많이 해서 어느 정도 단단하게 단련이 되었다는 자신감을 갖고 시작한 베트남 야구. 라오스와 비교해서 월등한 경제력을 가진 베트남이기에 야구전파 또한 순풍에 돛단 듯 탄탄대로를 달려 나갈 줄만 알았다. 야구장에 슬리퍼를 신고 나와 야구를 처음 시작했던 라오스 선수들과 비교해 그리 고가의 야구 장비는 아니지만 구색을 갖추고 야구 유니폼을 챙겨 입고 나와 있는 베트남 선수들을 보며 호사스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모든 것이 쉬울 줄 알았다. 

 

오만했었고 착각이었음을 고백한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 경제발전에 기여를 하고 있으며, 길을 걷다 여기가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한인타운이 하노이 시내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유리한 조건(?)들을 등에 업고 한국야구가 베트남 야구 발전을 견인하며 곧 베트남 야구가 동남아시아 최강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었다. 베트남 축구처럼 라이벌 국가 태국을 이기고 “Cố lên. Bóng chày Việt Nam(힘내, 베트남 야구)”를 외치는 오토바이의 물결을 곧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까지 더해서... 

 

베트남 야구협회 관계자와 베트남 야구 선수들과 함께 하면서 즐거움도 크지만 결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느낀다. 그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큰 기대감과 성급함으로 인해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나란히 걷지 못하게 만들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잠시나마 내 꿈이 산산조각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Never ever give up“  

”Scars into Stars“

(지금의 아픔과 마음의 상처들은 앞으로 다가올 영광의 별이 된다)

내가 힘들 때마다 날 일으켜 세워준 나의 좌우명이자 철학이다. 

 

이제부터 베트남도 라오스처럼 시작하려고 한다. 너무 큰 기대치와 욕심은 베트남 야구 발전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 야구는 경제력과 가장 밀접한 스포츠라는 일반적인 상식에 나조차 현혹되었고 라오스와 베트남은 출발선이 다를 것이라는 자기 위안을 반성하게 된다.

 

10년 전을 회상해 본다. 동남아시아의 최빈국에서 시작된 라오스 야구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라오스 야구를 알리고 수없이 도움을 요청했다. 모든 사람이 내가 생각한대로 선한 후원에 동참해줄 것으로 믿고 있었을 때였다. 

 

이렇게 시작한 기부에 대한 부탁들은 후원이 아닌 외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프로야구를 통해 많은 인기를 받았고 어디든 환대받았던 나는 더 이상 어디에도 없었다. 나를 위한 기부나 후원이 아니었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야구는커녕 한 끼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라오스 선수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들이 우리가 너무나 편하게 누리고 있는 기본생활을 충족하고 야구를 하며 학업을 포기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야구를 통해 꿈을 갖게 하고 삶의 비전을 그려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외면도 쉬이 감당할 수 있었다. 

 

‘앵벌이’를 하기 위해 다닌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밥, 돈, 물건 따위를 거저 달라고 비는 행위나 불량배의 부림을 받고 어린이가 구걸이나 도둑질 따위로 돈벌이를 하는 것 또는 어린이“를 앵벌이라고 한다.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스타로 인정받고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냈던 내가 타인의 거절이나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에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거절과 외면, 그리고 라오스 야구는 이만수의 육체가 아닌 정신을 헐크로 만들었다. 그리고 깨닫게 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 강한 빛으로 인해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나이가 들고 힘들게 야구 전파를 하면서 이제야 뚜렷하게 보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 베트남 야구는 한국과 미국에서 오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얼마 전 베트남 야구 지도자로의 사명감을 가지고 입국한 박효철 감독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 이 힘든 결정을 믿고 따라준 그의 아내에게 라오스의 경험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준다.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간접경험을 통해서라도 중간중간에 일어날 어려움과 장애물을 슬기롭게 극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베트남 입국과 동시에 얘기치 못한 일들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했고 그로 인해 베트남 야구 발전의 부푼 꿈을 포기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앞섰다. 

 

기우(杞憂)다. 나는 그를 믿는다. 미국 생활의 안락함을 벗어 던지고 베트남의 열악함을 선택한 그다. 낯선 땅에서 야구를 시작하며 ‘야구’ 자체의 문제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관계’속에서의 입게 되는 상처라는 것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오해와 모함, 거짓들은 가십거리가 되어 마음을 괴롭힐 때도 있을 것이다. 40도 땡볕의 더위보다, 야구장비가 부족해 애태우는 마음보다, 경기력이 올라가지 않아 국제대회 성적을 걱정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사람으로 인해 받게 되는 마음의 상처임을 이미 많이 경험했기에 걱정이 된다. 하지만 베트남 야구 발전과 전파라는 큰 목표와 본인이 옳고 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신념을 유지한다면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베트남 야구가 발전해나가는 모습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 관심들 속에서 사심을 바라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며, 시기와 질투의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또한 베트남 야구가 발전하고 잘 되고 있다는 반증이기에 기쁠 수는 없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를 그에게 당부하고 싶다. 

 

당당하게 베트남 야구를 위해 초지일관'(初志一貫)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다 보면 반드시 베트남 야구는 동남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주목받게 될 것임을 잊지 않기를 다시 한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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