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유학간 '처녀'...'유치원생 엄마'가 된 사연은!

[사람 사는 세상] 강미영 선생의 캐나다 유학 생생 체험담-2회

김기준 | 기사입력 2010/04/07 [05:25]

캐나다 유학간 '처녀'...'유치원생 엄마'가 된 사연은!

[사람 사는 세상] 강미영 선생의 캐나다 유학 생생 체험담-2회

김기준 | 입력 : 2010/04/07 [05:25]
[편집부 주] 이 땅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없으면 없는 대로 서로 위로하며, 있으면 있는 대로 서로 나누며 살아간다.그런데 있는 사람들만, 1등만 살아가는 듯 보인다. 본보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주제하에 주어진 여건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 사는 세상' 을 기획 취재하고 있다. 그 다섯번째 순서로 강미영 (31세) 씨를 만났다. 
 
 
▲ 캐나다. 로키산맥    © 편집부
 
-유학 도중 엄마노릇을 했다는 말이 있던데?
"밴쿠버에서 몬트리올(대학원이 있는 곳)로 가기 직전 2달 동안 한국에서 유치원 때 가르쳤던 학생들 두 명이 4학년이 되어 우리 집에 단기 연수를 오게 되었습니다.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고 잘 다룰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선생님으로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과 24시간을 데리고 함께 지내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습니다.
 
나 하나만을 믿고 보내준 아이들의 어머님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아이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니던 유학원을 정리하고 온전히 아이들을 위해 두 달을 보내기 위해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학교와 방학 캠프 프로그램, 각종 다양한 주말 활동 등을 계획했고, 두 달간 아이들을 돌보다 너무 지쳐서 아이들에게 소홀해지지 않을까 염려해서 내가 힘들 때 도와줄 수 있는 많은 외국인 및 한국인 친구들도 물색해 두었습니다.
 
늘 나를 위해 바쁘게만 살다가 내 삶이 철저하게 아이들의 생활에 맞추어져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게 쉽지 않았지만 두 아이들이 정말 즐겁고 보람되게 두 달을 보내고 가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매일 세끼의 식사를 준비하고 두번의 간식을 준비하고, 학교를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행여 아플까 신경을 쓰고 또 쓰고... 아이들과의 두달간의 경험에서 나는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의 두 달은 힘든 점도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다른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로키를 캠핑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가졌는데 정말 긴 여정이었지만 (4일동안 내리 3000km를 달렸다) 함께 밥 해먹고, 이 곳 저 곳을 여행하면서 더 없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얼마 전에 내가 잠깐 나가 있는 사이에 내게 감사의 저녁 밥상을 차려주었는데 그 감동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혹여 불에 데일까 싶어 한 번도 스토브 켜는 걸 가르쳐준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아이들이 알고 다섯가지가 넘는 반찬을 준비하고, 과일도 예쁘게 깎아서 디저트까지 준비하는 센스를 보였는지 지금도 참 미스테리입니다. ^^"
 
-유학 도중 보람있었던 일은?
"내 전공의 특성상 (제 2외국어 교육-second language education) 우리 과는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러 왔습니다. 대학원 생활은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생활이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이 쉽게 지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왕 하는 공부 재미나게 하자 싶어서 나는 우리 과의 많은 친구들에게 파티를 제안하고 (간단하게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어 와서 담소를 나누고, 자기 나라의 문화에 대해 얘기하고) 서로 유기적으로 잘 도와서 무사히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가교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습니다."
 
-살면서 눈물흘렸던 때는 언제였나요?
"대학교 3학년때 미국으로 3개월 동안 여름캠프에 참여해서 돈도 벌고, 문화체험도 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미국 비자가 필요하던 시절이라 비자를 받으려고 서류를 다 냈는데 같은 프로그램을 지원한 102명 중에 2명의 비자가 거부되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나였습니다.
 
이유인즉슨 보증인인 아빠가 경제적인 여유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직업의 특성상 (자영업)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서 도대체 보증인이 어느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지 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충분한 잔고와 동산 부동산을 다 증명하면서 석달 다녀올 비자를 달라고 했지만 한 번 거부된 비자는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사에게 눈물어린 장문의 편지를 썼지만 그것 역시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기다리면서 준비해온 미국행이었는데 비자 때문에 모든 게 좌절되자 정말 슬펐고, 한 편으로 아빠가 조금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빠가 서울에 있는 내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살면서 늘 그늘이 되주고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그토록 자식이 가고자 원하는 길에 아빠가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고... 비자를 받기 위해 싸웠던 나의 고통보다 그걸 다 지켜보면서 더 많은 고통을 받았을 아빠를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눈물을 주체할 수 가 없었죠."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였는지 한 가지만 말해 주실래요?
"나는 늘 행복합니다. 그래도 하나를 말해야 한다면~.맥길 대학교에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학비가 여의치 않아 가야할 지 말아야할 지를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캐나다 친구가 나한테 말을 했습니다.
 
"you can get a loan." (대출 받으면 되잖아) 유학생은 신용등급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는데 그런 말을 하니 순간 확 짜증이 나서 친구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러지 못하는 거 알지 않느냐, 장난하느냐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씩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 얘기 아직 다 안 끝났다. 내가 대출을 은행에서 받으라고 했냐"고, 그럼 어디서 받느냐고 내가 물으니까 "내가 빌려주겠다."는 거였습니다.
 
▲ 강미영 씨는 서울 서초동 소재 계성초등학교에서 영어과 주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편집부
내가 안 갚으면 어쩔꺼냐고 하니까 "언젠가는 꼭 갚을 것이다. 너는 꼭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다.그래서 내가 빌려주려고 하는 거니까 정말 학교 가고 싶은면 얘기하라"는 거였습니다.
 
물론 그 친구에게 돈을 빌리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나를 신뢰해주고,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어주는 그 순간은 정말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에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결혼에 관한 질문은 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ㅎㅎ 어쨌든... 언제든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하려고 하지만 이것 역시 노력이 많이 따르는 일인 것 같네요.
 
옛날에는 부모님 때문에 늘 토종 한국 남자를 고집했는데 이제는 누구라도 생각이 잘 맞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면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전형적인 한국 남자보다는 교포가 잘 맞는 것 같고, 외국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이 다 하니까 때에 맞춰서 하는 결혼은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교육계 비리로 대한민국이 온통 소란스럽다. 부정비리를 용납하지 않아야 할 교육현장에서 교육감,교장,장학사들이 연루된 금품수수, 납품비리, 교사채용 비리는 우리를 절망케 한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강미영 씨처럼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자기역할을 소화해 내는 젊은이들이 학교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 꿉니다.
정직하고 분명하면 떳떳하고 당당하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