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성을 쌓는 정치, 길을 내는 미래

심춘보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6/08/07 [12:00]

[논설위원 칼럼] 성을 쌓는 정치, 길을 내는 미래

심춘보 논설위원 | 입력 : 2026/08/07 [12:00]

▲ 심춘보 논설위원     

[신문고뉴스] 심춘보 논설위원 =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과거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은 안과 밖을 가르고,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길을 내기보다 성을 쌓는 데 익숙합니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오래전의 인연과 선택을 오늘의 잣대로 끌어와 사람을 구분합니다.

 

《관중》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입고 먹는 것이 넉넉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

 

2천 년도 훨씬 전의 사람들도 정치의 근본이 결국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에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AI 시대라고 정치의 본령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민이 어떻게 더 잘 먹고, 더 안정적으로 살며,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할 것인지, 정치가 답해야 할 가장 절박한 질문은 언제나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나는 때때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식상할 지경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노사모가 그렇게까지 중요합니까? 집권 여당의 당 대표를 뽑는데 노사모가 등장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노사모가 우리 정치사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탄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고, 한국 정치의 참여 문화를 바꾸는 데도 일정한 족적을 남긴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의미는 역사적 의미대로 평가하면 됩니다.

 

오늘 우리가 풀어야 할 청년의 일자리, 자영업자의 한숨, 주거 문제, 저출생과 고령화, 양극화와 지역 소멸 앞에서 누가 20여 년 전 노사모였는지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노사모였는지 아니었는지가 오늘 대한민국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나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이제 그 질문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것이 니편 내편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순간, 역사는 교훈이 아니라 족쇄가 됩니다. ‘당신은 그때 누구 편이었느냐?’를 묻기 시작하면 정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갑니다.

 

과거의 인연으로 오늘의 충성심을 재단하고, 오래전의 선택으로 지금의 사람을 평가한다면 그것은 계승이 아니라 진영의 성을 쌓는 일입니다. 노무현이 던진 미래의 가치는 실종되고, 자신의 이름이 죽어서까지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자신의 지지 여부가 정치인의 정통성을 판별하는 증명서처럼 사용되는 것을 원할까요?

 

노무현을 진정으로 기억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호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가치 가운데 오늘에도 필요한 것을 미래의 언어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과 매몰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역사는 매몰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존재합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지만 과거에 집을 짓고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과거의 인물과 사건을 오늘의 정치적 신분증으로 삼기 시작하는 순간 미래가 매몰됩니다. 정치가 천착해야 할 것은 지나간 시대의 편 가르기가 아니라 미래의 문제입니다.

 

이제 그만 성을 쌓았으면 합니다.

 

누가 노사모였고, 누가 아니었는지, 그때 누구의 편에 섰는지를 따지는 정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질문들은 차고 넘칩니다. 성을 쌓으면 내 편은 지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길을 내야 모두가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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