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을 포기하게 하는 사회가 곧 '헬조선'

KTX 여승무원 희망 끝은 절망...'컵라면 김군' 희망 끝은 사망

신문고뉴스 | 기사입력 2016/05/31 [09:42]

'자존'을 포기하게 하는 사회가 곧 '헬조선'

KTX 여승무원 희망 끝은 절망...'컵라면 김군' 희망 끝은 사망

신문고뉴스 | 입력 : 2016/05/31 [09:42]

 

 

[신문고 뉴스] 5월 30일 20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엊그제 선거 때 국민을 하늘처럼 모시겠다고 전국에서 떠들더니 그 국민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기들 이익을 위한 힘겨루기에 들어가서 아직 언제 어떻게 원을 구성하겠다는 것인지 그 로드맵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같은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의 주류인 '친박계'가 그 근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19대 국회의 국회의장이 고심 끝에 수정 제안한 국회법 개정안을 대통령이 거부한 사태, 이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이 '잘못한 정치'의 심판을 통해 여당에게 준엄한 책임을 물었음에도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여당 주류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정치권이 이런 가운데 지난 며칠 전 열아홉 꽃다운 청년 한명이 지하철의 고장 난 스크린 도어를 혼자서 수리하다 들어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하고 그 열차에 치어 숨졌습니다. 숨진 청년의 가방에 남은 한봉지의 컵라면, 그 컵라면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지금 서울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는 그 청년을 애도하는 글이 적힌 '포스트잇'들이 줄지어 나붙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질타한 좋은 글이 오늘 익명으로 기고되었습니다. 이에 본보는 그 글을 전재합니다.

 

▲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붙은 토스트잇

 

대법원까지 갔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끝내 패소한 KTX 승무원들은 오늘(31일)까지 코레일에 8,640만원을 토해내야 한다. 1,2심 판결과 임금지급가처분 승소에 따라 소송기간 도중 매달 180만원씩 4년간 받았던 돈이다. 승무원들이 오늘까지 이 금액을 반환하지 못하면 코레일은 반환청구소송을 걸 것이고, 이자율도 5%씩 붙게 된다. 반환청구소송에서 코레일이 승소할 경우 이자율은 2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싸우느라 10여년을 거리와 법정에서 보낸, 그러면서 대부분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생활인으로 살아온 이들이 일시불로 8,640만원을 토해내야 한다면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패소할 경우 언젠가는 반환해야 할 돈'이라는 생각까지 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논리에는 맞을지 몰라도 인정(人情)에는 맞지 않아 보인다. 1,2심 본안승소에 가처분까지 이겼고 많은 사법/노동전문가들이 3심 승소까지 의심치 않았기에 그렇다.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생각하며 버티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매우 희망적인 상황에서 굳이 최악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작년 3월 이들 가운데 어떤 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세살배기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했던 박모씨(당시 35세)는 '아기에게 빚만 남겨줘 미안하다'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남은 이들은 어떻게 할까? '어떻게든' '개인적으로' '꾸역꾸역' 마련해서 낼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실제로 많은 승무원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이혼 등 가정불화의 문제나, 또 그런 일들을 우려하면서 개개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지독한 '수치'는 어찌 다스려야 할까?

    

그렇게 코레일의 '최후통첩' 시한을 코앞에 두고 이들 승무원이 극도의 심란함 속에 맞이했을 지난 주말, 19세 청년 김 아무개 군이 혼자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 사고로 숨졌다. 1997년 5월 29일에 태어난 만 스무살이 되지 않은 그는 열아홉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참변을 당했다.

    

숨진 후 남겨진 그의 가방엔 수리 공구와 함께 뜯지 못한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이 담겨 있었다. 하루 10시간에 가깝게 목숨을 걸고 고된 육체노동을 하던 그가 손에 쥘 수 있었던 돈은 월 144만원. 연봉 1,720만원 수준이었다.

    

대학진학률이 70%를 넘는 사회에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중소 하청기업에 취직하기까지, 어린 김 군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과감히 도전했다. '공고' 출신으로서 분명히 사회의 벽을 느꼈을 테지만 현실을 탓하거나 지레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우리 사회는 그의 죽음을 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 이런데도 '청년들이 편한 일만 하려 그러면서 흙수저 타령이나 하고 노오력하지 않는다'고 핀잔할 것인가? '그것은 그냥 사고일 뿐'이라 할 것인가?

    

김군은 숨지기 닷새 전, 비번임에도 서울 메트로 본사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협력업체 직원 전원을 자회사에 고용 승계해줄 것을 요구하는 집회였다. 그가 좀 더 안정적 고용조건을 희망했음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유족들은 그가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으로 고용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내비쳤다고 말했다.

    

그래서다. '그냥 사고일 뿐'이었다면, 사고를 당하지 않고 운 좋게 살아남은 또 다른 '김 군'들은 이렇게 몇 년 더 일하면 김 군의 희망을 대신 이뤄줄 수 있을까? 진심으로 그러길 바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본인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를 향해 대항했다가 얻은 것 하나 없이 벼랑 끝에 몰린 승무원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자존'을 포기하는 길밖에 없다. 그리고 비루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슬픈 사회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결과가, 비루하게 사는 것이라니. 그래도 '고성장' 시대에는 비루한 삶의 댓가로 최소한의 고용 및 소득 안정이라도 누렸다지만, '저성장' 시대에는 그런 것조차 없다. 그냥 비루한 삶 그 자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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