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대표의 특검 제안은 '패착(敗着)'

[데스크의 窓]정치인도 정당도 '국민정서법'에 순응해야...

임두만 | 기사입력 2017/06/27 [15:16]

박지원 전 대표의 특검 제안은 '패착(敗着)'

[데스크의 窓]정치인도 정당도 '국민정서법'에 순응해야...

임두만 | 입력 : 2017/06/27 [15:16]

[신문고 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가 ‘문준용 특혜취업 의혹 국민의당 녹음파일 조작사건’에 대해 해명 사과하면서 “이 사건과 함께 문준용씨 특혜취업 사건 전반을 수사하는 특검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박 전 대표는 27일 오전 평화방송(CPBC)에 출연해 "우리 당원에 의해 조작됐다고 하면 그것도 잘못이지만, 문준용씨의 모든 취업 비리 의혹 자체가 어떻게 됐는가도 조사해야 하기에 특별검사로 가서 사실을 규명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     ©임두만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제안은, 내가 보기에는 결론부터 말해 패착이다. 정권을 막 잡은 신 권력의 힘과 그 신 권력에 기대하는 국민심리를 도외시한 정치공학이다. 우리 정치사는 대선 후 이 같은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약자의 처절한 패배였다. 따라서 나는 단언컨대 특검도입이라도 국민의당이 처절한 패배를 할 것으로 본다. 아래 그 두 세가지 사례를 적시한다.

    

1. 통일국민당과 정주영 사례

    

현대그룹의 명예회장이던 정주영은 1988년 5공청문회를 통해 정치권에게 압박을 당한 사실을 절절하게 폭로했다. 그러면서도 청문위원들로부터 불법정치자금 제공에 대해 신랄한 비난을 받았다. 이에 1992년 제14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신당창당에 나섰다.

    

1992년 1월 통일국민당은 창당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그해 2월 김동길이 창당을 추진하던 새한당을 흡수하여 정식으로 창당했다. 그리고 창당 두 달 후인 그해 3월 실시된 14대 총선에서 대구 경북 강원 수도권 등 보수 세력이 강한 지역을 기준으로 지역구 24명을 당선시켰다. 또 이 여세로 전국구 7명의 당선자를 내므로써 총 31명의 당선자를 내 당당히 원내 3당으로 자리했다. 이후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갈등으로 민자당을 탈당한 박철언과 김복동, 유수호 등이 입당, 원내 34석으로 세를 불렸다.

    

정주영은 이를 바탕으로 그해 12월 제14대 대선에 출마했다. 그러나 16.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김영삼, 김대중에 이어 3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 외도는 그가 평생을 일궜던 사업으로 국내 1.2위의 재벌순위를 다투던 현대그룹 전반이 흔들려야 하는 고초를 겪은 끝에 결국 포기해야 했으며, 휘하 조직원 중 상당수가 구속되었다. 정주영이 그 같은 고초를 겪은 가장 근본적 이유는 1992년 대선 막판 터진 부산 초원복집 사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14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남긴 1992년 12월 11일 오전 7시,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은 박일용 당시 부산경찰청장, 이규삼 당시 안기부 부산지부장, 정경식 당시 부산지검장 등 부산지역 권력층 핵심들과 조찬을 하며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지면 모두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 등의 대화를 통한 지역감정 부추기기 선거운동을 모의했다.

    

그런데 이들의 모임을 사전 파악한 정주영 측 선거캠프 요원이 초원복집에 도청장치를 설치, 이 모의 내용을 녹취했으며, 녹취본을 모 언론사에 전달, 보도되도록 했다. 행동대원들은 정몽준 당시 통일국민당 정책위원회 의장 밑에 있던 선거운동 조직이었다.

    

녹취본이 보도되자 나라가 시끄러웠다. 녹취록을 입수 폭로한 국민당 정주영 후보 측은 이들을 관권선거의 주범으로 몰아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하는 등 공세를 취했으며, 당시 영호남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호남을 기반으로 김영삼 후보와 대항하고 있던 민주당 김대중 후보 측도 이 문제를 고리로 민자당과 김영삼 후보 측을 거세게 공격했다.

    

이에 김영삼 후보 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 대항했다. 또 허락받지 않은 녹음은 불법, 남의 건물에 몰래 들어가 녹음기를 설치한 것도 불법 등의 논리로, 국민당 조직원들을 현조건조물침입,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으로 고발하는 등 맞고소 작전으로 나왔다.

    

언론은 관권선거의 부도덕성보다 주거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더 부각시켰다. 통일국민당이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김영삼 후보에 대한 영남 지지층이 결집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여세를 몰아 김영삼이 14대 대통령에 쉽게 당선되었다. 이후 검찰은 불법 도청한 정주영 후보 측 사람들은 전부 주거침입 등 죄로 처벌했다. 반면 관권선거를 획책한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김기춘은 물론 당시 참석자들은 오히려 승진하는 등 혜택을 입었다.

    

당사자격인 정주영도 강도 높은 정치보복에 시달려야 했는데,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세무조사를 받고 그룹의 자금줄이 2년간 묶이게 되는데다 선거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가 진행되자 1993년 2월 의원직을 사퇴하고 통일국민당을 탈당했다.

    

탈당 후 국민당은 정 명예회장이 당사까지 회수하므로 갈 곳 없이 떠돌았으며 소속 의원들은 하나둘 민자당에 흡수되었고, 남은 비례대표인 김동길 당시 최고위원을 당 대표로 선출, 이듬 해인 1994년에 박찬종의 신정치개혁당과 합당, 신민당을 창당하므로 해산되었다.

    

2. 신한국당, 한나라당 이회창 사례

    

세풍사건 : 1997년 대선에서 맞붙었던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신한국당 이화창 후보의 건곤일척 승부는 김대중의 승리였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 취임 1년차인 1998년 정치권은 신한국당 대선자금 모금창구가 국세청이었다는 사실로 시끄러웠다. 검찰이 전격적인 수사가 이뤄졌다.

 

이후 이회창 당시 후보의 친동생인 이회성씨, 최측근들이 운영했다는 부국팀 관련자들, 서상목 의원 등과 이석희 당시 국세청 차장 등이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발표된 검찰 수사결과는 엄청났다. 이들이 국세청을 동원하여 받은 불법 정치자금의 규모가 무려 166억 7천만 원이었다.

    

98년 8월31일 전당대회 총재 경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며 당권을 다시 쥐었던 이회창 당시 총재는 절체절명의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특히 국세청을 동원한 정치자금 모금에 그의 동생 회성씨가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되면서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8년 11월 끝내 이 총재는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그럼에도 당시 이 총재는 “여당 총재를 겸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에 대한 수사를 직접 지시하는 것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라며 특별검사제의 도입을 촉구했다. 하지만 특검은 도입되지 않았으며 최종적으로 이 사건 관련자들은 2003년 대법원에서 전원 유죄가 확정되었다.

    

차떼기 사건 :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당선으로 권력을 탈환하지 못한 한나라당은 대선 후 2003년 초 서울지검이 SK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며 압수한 회계장부를 분석하던 중 2002년 대선 무렵 거액의 회사 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파악했다는 내용들이 보도되자 이를 고리로 여권과 검찰을 압박했다. 언론에 거론된 인사가 노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최도술 당시 총무비서관이었기 때문이다.

    

야당의 압박과 언론의 대대적 보도에 노 대통령은 대선자금 전반의 수사를 지시했다. 대검 중수부는 서울지검에서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수사하면서 2003년 10월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출국금지하는 전격적으로 나왔다. SK가 여야 후보 캠프에 거액의 불법 자금을 제공하고 선거 후에는 당선자 측에 ‘축하금’ 명목의 돈까지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수사에 박차를 가한 대검 중수부는 SK를 넘어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다른 대기업으로 확대, 이들 기업에서 불법 자금을 거둬 후보 캠프에 전달한 여야 정치인들을 줄줄이 소환했다.

    

그리고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캠프에서 2.5t 트럭에 담긴 현금 150억 원을 트럭 째 LG그룹으로부터 넘겨받은 사실, 그 외 삼성 340억 원, 현대차 109억 원, SK 100억 원 등 총 823억 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물론 노 대통령 측도 삼성 30억 원, SK에서 10억 원, 한화에서 10억 원 등 총 113억 원의 불법 자금을 받아 쓴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이 사건 대미지는 이회창과 한나라당이 고스란히 입었다.

 

당시 여권은 이상수 안희정 정대철 등 관련 정치인 개개인의 단죄로 끝났으나 한나라당은 서정우 변호사 등 관련자 20여 명의 단죄는 물론 여론의 질타로 당이 해체 수준까지 가는 고초를 겪었다. 결국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사와 연수원 등 당 재산을 모두 팔아 국고에 귀속시키겠다고 발표하고 천막당사를 차렸다. 이어 2004년 총선에서 원내 2당으로 추락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사건은 한나라당의 자승자박이었다. 노무현 측근의 불법자금 수수를 추궁하며 검찰을 압박했는데, 이를 받은 노 대통령이 1/10론을 제기하며 전면적 수사를 지시하므로 대검 중수부가 나섰으며, 결국 한나라당만 자신들의 엄청난 치부가 드러나 세풍, 총풍에 이은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까지 얻은 것이다. 약자의 권력압박으로 맞은 부메랑이었다.

    

그래서다. 27일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는 ‘국민의당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 관련 제보 조작 사건’에 대해 "우리 당원에 의해 조작됐다고 하면 그것도 잘못"이라면서도 "녹취록과 카카오톡 캡쳐가 조작된 것과 본질적인 사안은 다르다"며 특검으로 이 사건과 함께 준용씨와 관련한 특혜 취업의혹을 동시에 규명하자고 역공했는데, 이는 부메랑을 맞을 개연성이 큰 도박이다.

    

그는 "준용씨의 모든 취업 비리 의혹 자체가 어떻게 됐는가도 조사해야 하기에 특검으로 가서 사실을 규명해야 한다"면서 “이 모든 것을 특검에서 수사하면 진실이 밝혀지고 국민들이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며, 거듭 말씀드리지만 거짓말이 더 나쁘다"고 특검을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국민정서는 특검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최순실 특검을 통해 드러난 국정농단 사건으로 그들이 단죄되고 있음에도 가슴 속 깊은 상처를 입은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신 권력이 등극 몇 달 만에 상처를 입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이 국민정서법이다.

 

또 설령 도입이 되어도 신권력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이명박 신권력 당시 BBK특검, 그리고 임기 중 내곡동 사저특검 등의 결과가 권력자에게 면죄부를 준 것 같은 모양새로 끝난 것이 실증이다. 그리고 상처는 국민의당과 그 당을 지지했던 20%가 넘는 국민들이 입을 것이다.

 

이에 지금은 이 국민정서법에 순응, 사과하고 엎드릴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 전 대표의 정치경력 인생경력으로 보면 승리와 패배의 경험 또한 나와는 비교할 수 없도록 월등하지만 지금 맞닥뜨린 이 엄청난 쓰나미에 판단의 착오를 일으켰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입신의 경지인 바둑 9단들이 일으킨다는 판단착오에 의한 패착을 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엎드리시라고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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