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춘식 ‘우파혁신’ 장제원 등 징계로 가나?

임두만 | 기사입력 2017/07/21 [13:42]

류석춘식 ‘우파혁신’ 장제원 등 징계로 가나?

임두만 | 입력 : 2017/07/21 [13:42]

[신문고 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확실한 친박인사다. 그의 부친인 류혁인 전 장관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은 인물인데다 그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태극기 집회’를 매번 빠지지 않고 참석한 것을 자랑으로 말할 정도의 확실한 '친박'이라서다.

 

▲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취임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이러한 류 교수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당 혁신의 전권을 쥔 혁신위원장으로 천거했다. 이어 자유한국당은 2017년 7월 그를 혁신위원장에 임명했다. 따라서 류 위원장의 생각대로 당의 혁신안이 현실화된다면 자유한국당은 친박당을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실증을 지금 류 위원장이 예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21일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은  당내 인사혁신 방안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분들의 잘잘못을 따지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서 <연합>은 “류 위원장이 이날 오전 연합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 ‘당의 정치적 해체과정을 점검해서 잘못한 분들에게는 잘못했다고 하는 게 혁신위가 할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설명했다.

    

<연합>에 따르면 류 위원장은 더 나아가 "당이란 가치를 공유하고 서로 격려를 해야 하는데 탄핵 당시 새누리당은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웠다"며 "이런 건 가만히 놔둘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만약 류 위원장의 언급대로라면 탄핵찬성파로 최순실 청문회에서 맹렬하게 활동하다 바른정당 창당까지 참여한 뒤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한 장제원 의원 등은 “가만히 놔 둘 수 없다”는 범주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징계가 확실할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추후 이들의 행보가 관심시다.

    

그러면서도 류 위원장은 또 같은 인터뷰에서 당내 친박세력에 대해 "친박이 정국 변화에서 얼마나 역할을 했느냐.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를 했느냐. 저는 미진했다고 생각해서 반드시 그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친박세력 중에서도 일부 가지치기를 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즉 탄핵 찬성파의 징계와 패키지로 친박 몇 명도 손 볼 수 있음을 내비친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인터뷰는 류 위원장의 ‘우파인식’을 확연히 알 수 있게 한다.

    

그는 "우리나라 우파는 여당일 때나 야당일 때나 늘 좌클릭 방식으로 혁신을 하려 했다"고 ‘혁신=좌클릭’을 정형화 한 뒤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등 신보수주의가 성공한 것은 오히려 더 철저한 우파를 하자며 혁신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 시대를 성공한 보수주의 시대로 본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가 성공한 신보수시대로 평한 대처나 레이건 시대는 마국도 영국도 극단적 양극화를 초래, 결국은 미국의 민주당이나 영국의 노동당 장기집권 시대를 열어주게 된다. 즉  대처와 레이건 이후 영국이나 미국이 극단적 양극화로 민중의 고통이 삼화되었지만 류 위원장은 이를 도와시 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한국당도 바로 그렇게 혁신을 해야 한다"며 "우파의 가치를 재정립한 이후에 외연은 얼마든지 넓힐 수 있다"고 부연한 것은 우리나라 또한 극단적 양극화로 다수 민중이 고통을 받더라도 가진자 위주 보수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비친 셈이다.

    

그리고 이 인터뷰에서 류 위원장은 특히 "우파는 정체성 확립 없이 비도덕적인 일을 저질렀다.“면서 가치의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를 "다시 권력을 잡아야겠다, 다시 국회의원을 해야겠다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가치의 문제가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대처식 신보수주의라면 한국우파의 집권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양극화 해소가 전 국민적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한편 류석춘 위원장의 부친인 고 류혁인 공보부 장관은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정치부장을 역임한 언론인 출신으로, 고 박정희 대통령이 10월유신을 단행하고 ‘1인독재’의 길에 들어선 1973년 대통령 정무수석으로 픽업되어 박정희의 사람이 되었다.

    

이후 그는 박정희가 사망하여 최규하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꼬리를 때고 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 박정희의 사람으로 정무수석직 역임했다. 따라서 그의 정무수석 재임기간은 1973년 12월 8일에서 1979년 12월 18일까지로 무려 6년이었다.

    

그라고 노태우 집권 뒤 다시 포르투갈 대사로 픽업되어 3년 가까이 재임 뒤, 노태우 정권 말엽인 지난 1992년 10월 9일부터 1993년 2월 25일까지 공보처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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