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에 대한 의견
지난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비급여의 전면적인 급여화를 핵심내용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에 대해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비록 의료정책 전문가는 아니지만 15년 전 직접 개원했다가 10개월 만에 접었던 아픈 기억과 함께 의사면허취득 후 22년의 임상경험과 지식, 그리고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도움이 조금이라도 될까 해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간략히 제시해본다.
1. 급여, 비급여란?
우리나라 보험체계에서는 의료행위를 급여와 비급여로 나누고 있는데 급여란 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에 대해 병의원의 총 진료비의 일부(예: 30%)만 본인이 부담하고(법정 본인부담금), 나머지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공단부담금=보험자부담금)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급여라고 하면 월급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돈이나 물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해 여기에서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해준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감기로 개인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초진 총 진료비는 약 14,860원으로 이중 3000원만 환자가 개인의원에 지불하는데(총 진료비가 15,000원을 넘으면 이중 30%), 이것이 본인부담금이며 개인의원은 한달이 지나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나머지 11,860원을 지급받게 된다.
비급여란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해주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비급여라 하는데, 의료행위에 대해 환자가 100% 지불하는 것을 말한다. 비급여에는 2종류가 있어 국가 즉 심사평가원에서 정한 인정비급여 항목과 병의원에서 자체적으로 책정해 가격까지 매긴 임의비급여 항목이 있다. 비급여에는 업무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발기부전, 포경수술, 미용목적의 성형수술, 건강검진, 상급병실료 차액, 초음파 진료비, 선택진료비, 비용효과가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최신 의료기술이나 아직 승인되지 않은 약제 등이 있다.
2.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란?
전체 의료비(진료비)는 개인의 본인부담금(비급여 본인부담금+법정 본인부담금)과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보험자부담금을 합친 금액이며 건강보험 보장률은 전체 의료비 중 건강보험공단의 보험자부담금의 비율을 말한다.
즉, 건강보험 보장성이란 총 지출해야할 의료비 중 국가가 건강보험을 통해 보장해주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2-63%에서 정체되어 있으며 OECD 국가의 평균 80%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
또한, 국민들이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 즉 가계직접부담 의료비 비율이 36.8%로 OECD 국가의 평균 19.6% 대비 약 2배로 매우 높은데 그 이유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미용,성형 등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의학적 비급여는 신속히 급여화하되, 비용효과성이 떨어지는 경우는 본인부담을 차등 적용하는 ‘예비급여’로 건강보험에 편입 관리를 포함한 보장성 강화대책을 수립해 발표하게 된 것이다.
3. 현행 건강보험제도 문제해결의 출발점, 비정상적으로 낮은 의료수가의 정상화!
이번 대책의 세부추진 방안을 보면 MRI, 초음파의 급여 또는 예비급여, 약 3800여개의 비급여항목을 예비급여로 추진, 고가의 항암제에 대해 차등 본인부담률 적용을 통한 선별급여, 국민부담이 큰 3대 비급여 실질적 해소를 위해 선택지료제 폐지, 상급병실료 건강보험 적용, 간호간병서비스 제공병상 대폭확대, 취약계층 본인부담률 대폭 인하, 소득수준에 비례한 본인부담 상한액 인하, 모든 질환에 대해 재난적 의료비 지원 제도화, 적정수가 보전 등이다.
정리하면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는 것을 포함한 이번 대책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줄어들기 때문에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서 구체적인 계획없이 마지막에 짧게 언급한 의료수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비급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료수가란 의료기관이 시행한 의료행위에 대한 가격으로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비용의 합계를 말하며 의료수가 결정과 인상은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정도, 의료서비스 제공자의 소득, 물가상승률 등 경제지표를 토대로 정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진행한다.
문제는 건강보험수가의 원가보전율 즉, 의료행위에 들어간 원가에 비해 현재의 의료수가가 70%대로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다른 자료에 따르면 90%까지도).
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일산병원의 자료를 근거로 분석한 2016년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의료수가의 원가보전율이 78%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검사료는 153.6%, 영상진단 및 방사선치료료는 141.6%로 원가보존율이 100%를 넘었지만, 진찰료와 입원료는 각각 50.5%, 46.4%에 지나지 않았고, 주사료, 마취료, 처치 및 수술료 등도 70% 내외로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원가의 80%도 못 미치는 현재의 낮은 의료수가에서는 진료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될 수 밖에 없어 필연적으로 비급여를 통해 그 손실을 보전하면서 병의원을 운영할 수 밖에 없다. 원가의 100%라 하더라도 급여 환자만 본다면 병의원은 이득이 없다. 원가의 +α가 되어야 운영이 될 것이다.
현재 비정상적으로 낮은 의료수가와 이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비급여 진료가 늘어난데는 1977년 건강보험제도의 시작에서 기인한다. 그 이전에는 건강보험이 없었기 때문에 환자가 진료비를 모두 부담해야 했다.박정희 정부는 종업원 수 500인 이상의 대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을 의무화하면서 원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가(70% 보다 더 낮은 50%라는 자료도 있다)로 시작했는데 당시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현재와 같은 기조인 3저 원칙, 즉 저부담(보험료)/저급여(보장)/저수가로 운영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대상환자가 5% 정도에 불과해, 의사들도 나머지 95%에 해당하는 비보험(비급여) 환자를 통해 손실을 보충하면 되었기에 별 반발없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1989년에 100%에 달하는 전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하게 되면서 이후로 지금까지 수가가 현실화되지 않자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각종 비급여 진료, 박리다매, 약의 할증(2000년 의약분업 이전에 의료기관에서 주문한 약품주문 지불금액보다 30-50% 얹어주는 일종의 리베이트) 등을 통해 낮은 의료수가의 급여환자 진료로부터 발생하는 손실을 메우게 이익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의료계에서 흔히 비유하는 중국집의 예를 들자면 짜장면 원가가 4000원인데 국가에서 이보다 70% 정도에 불과한 3000원으로 가격을 강제적으로 낮추고, 탕수육 같은 비싼 메뉴는 중국집에서 자체적으로 값을 마음대로 매겨 15,000원 혹은 20,000원을 받아 짜장면 판매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게 한 것고 같다. 자주 먹는 짜장면 가격이 낮아지다 보니 손님은 많아지지만 중국집 주방에서는 더 바쁘게 짜장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는 결과도 초래된다.
우리나라 병의원이 바로 이 상황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감기로 진료를 받으면 성인 초진 총진료비가 14,860원이지만 본인부담금은 3000원에 불과하다. 그러니 아침에 콧물이 나거나 열이 조금만 나도 병원 문턱이 낮으니 바로 개인의원을 방문한다. 병원 문턱이 낮으니 환자가 많아 30분 이상 대기해야 하고, 감기라 진료시간도 3분 이상 걸릴 이유가 없다.
만약 감기에 대한 총 진료비가 30,000원이고 본인부담금이 10,000이라면 지금처럼 환자들이 바로 방문하기 보다는 며칠 있다 내원할 것이다. 낮은 의료수가는 물가상승률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서, 실제 필자가 15년 전인 2002년에 개인의원을 할 당시 감기로 초진 진료비가 12,000원 내외였고, 본인부담금은 현재와 같은 3,000원이었다.
이런 마당에 대학병원에서 희귀질환이나 중한 질환을 중심으로 트레이닝을 받은 내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전공의들이 전문의를 취득하면 바로 개원을 해 대학병원에서 ‘흔히’ 보기 힘든 감기 등 1차 질환을 대상으로 서로 경쟁하게 되는데 급여 환자만을 봐서는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경영이 힘드니 결국 비급여 진료를 늘리게 되고 심지어 그 효능이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다양한 비급여 진료를 창출하게 된다. 결국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싼 의료수가 덕분에 보험급여 진료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지만 비용부담이 큰 비급여 진료비용이 높아져 결국 개인이 부담하는 진료비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통해 비급여가 급여로 전환이 되면 필연적으로 현행 비급여 진료비보다는 낮은 가격으로 의료수가가 결정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병의원 입장에서는 환자수가 증가할지라도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며, 전체적으로 보면 수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 도산 및 폐업의 위험성도 높아질 수 있다.
이번 보장성 강화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2016년 기준 20조원의 건강보험 누적적립금과 지난 10년간의 통상적인 수준인 3% 내외의 보험료 인상을 통해 현행 60% 초반의 건강보험 보장율을 5년 후인 2022년까지 70% 달성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올 3월 기획재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2018년에 적자로 전환되고 2023년 적립금이 모두 소진된다고 하니 보다 높은 수준의 보험료율 인상이 전제되지 않으면 건보재정 부실화가 초래돼 보장성 강화대책을 안정으로 지속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한 제반의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으로 대형병원의 쏠림현상은 더욱 커져 의료전달체계의 붕괴의 위험성도 제기된다.
결론적으로 비급여의 급여화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낮은 보험료, 낮은 보장율, 낮은 수가의 3저 패러다임에 기인한 낮은 의료의 질, 근거가 부족한 비급여 진료의 발생과 비급여 진료비 상승, 높은 가계직접 부담 의료비 비율, 보건의료 인력의 과노동 유발로 인한 잠재적인 국민건강의 위협을 해결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비정상적으로 낮은 의료수가의 정상화다. 의료수가를 적정수준으로 인상한다면, 예를 들어 초기 감기와 같은 경우 병의원에 방문하지 않고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지 않은 일반의약품을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구입해 대증치료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진료가 꼭 필요한 환자의 입장에서는 병의원에서 대기시간이 줄고 충분한 시간동안 양질의 진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의사의 입장에서는 예전보다는 적은 수의 환자를 보면서 수입을 보전할 수 있어 효능과 안전성, 비용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비급여 진료에 굳이 눈을 돌릴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적정의료수가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명승권(교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