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성인소설] 욕망의 상그릴라를 찾아서

2부, 한석규, 낯선 곳에서 캐리어우먼에 빠지다. (1회)

전철현 | 기사입력 2017/08/30 [17:24]

[본격 성인소설] 욕망의 상그릴라를 찾아서

2부, 한석규, 낯선 곳에서 캐리어우먼에 빠지다. (1회)

전철현 | 입력 : 2017/08/30 [17:24]

2부, 한석규, 낯선 곳에서 캐리어우먼에 빠지다. (1회)

 

석규는 오래간만에 영화 <서편제>를 인터넷 다시보기로 관람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렇게 마음 편하게 영화를 본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른다고....

 

이는 석규가 그동안 얼마나 여유 없이 치열하게 살아왔는가 하는 반증이기도 하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영화 한 편 감상할 여유가 없는 삶이었다면 결코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석규는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묘사한 영화가 <서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보기로 고른 영화이기도 한데 <서편제>가 우리나라 판소리와 한(恨)이라는 소재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 묘사했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 <서편제> 속 세 명의 주인공 때문이다.

    

소리꾼 유봉의 양딸인 송화는 소리꾼으로 길러지지지만 눈을 잃는다. 송화의 소리에  북채로 장단을 맞추는 고수 동호는 소리꾼 송화가 헤어지고 나서 우연히 이름 없는 주막에서 송화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에 다시 북채를 잡은 동호가 장님이 된 송화에게 노래를 청할 때, 북장단 소리를 들은 송화는 북채를 잡은 고수의 주인공이 바로 동호임을 알아본다.

 

▲ 영화 서편제 중 송화와 동호의 주막신...북채를 잡은 동호는 송화에게 소리를 청하고, 송화는 아비와 똑같은 북장단 솜씨인 그가 동호임을 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시 헤어짐의 길을 떠난다.    

 

송화는 동호를 눈이 아니라 그들만의 하모니, 즉 북소리를 통해서 동호임을 알고, 서로의 감정과 마음을 판소리로 표현한 것이 이 영화의 백미라고 석규는 생각했다.

    

가수는 자기가 부른 노래를 따라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슬픈 노래를 자주 부르는 가수는 슬픈 운명의 주인공이 된다는 속설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삶의 마무리가 흔한 일상인 요양병원을  근무지로 택한 의사들도 알게 모르게 의사와 환자, 간호사 간에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

    

물론 석규처럼 명예, 돈, 교류 등이 필요한 세성을 등지고 스스로 유배 생활을 자처하거나 진료시간 이외에 따로 자기 시간이나 자기 공부를 한다거나 하는 의료계의 이단아 아웃사이더들 모인 곳이 요양병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요양병원은 일반병원처럼 건강 회복과 완치의 희망보다는 북망산 전 단계 간이 정거장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젊고 활기찬 의료진이 선호하는 병원은 아니다.

 

그래서 고연령 의사들이 많다.  심지어 어떤 요양병원은 의사와 경영진의 알력, 간호사 간의 서열 다툼, 눈에 안 보이는 시기와 질시 등도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석규처럼 좋은 의대를 나와 정상적 수련의 생활을 마친 젊은 의사는 요양병원 간호사들과 병원 여직원들 사이에 '넘사벽'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 석규는 의사로서의 커리어, 다방면에 걸친 심오한 지식 등으로 인해 병원 간호사들이라든가 여직원들 사이에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석규는 '돌싱'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화려한 돌싱’....충분히 그곳 간호사들과 여직원들 사이에서 스캔들 혹은 러브라인이 형성될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석규의 이런 커리어, 즉 '넘사벽'같은 아우라가 간호사나 병원 여직원과의 불장난을 가로막은 측면도 있다. 하지만 본질에서는 최경아와 이혼으로 인한 석규의 심리적 상처, 여자에 대한 트라우마, 즉 '여자에 대한 혐오(misogyny)', 여성 공포증도 간호사들 그리고 병원 여직원들과 일정 부분 거리 두기에 한몫을 했다.

    

이런 석규에게 체코 여행에서 돌아온 후, 미세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 우선 당직인 날과 당직이 아닌 날을 정확히 체크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는 그동안 당직이란 당직은 혼자서 거의 도맡아 하고 매사에 혼자 진지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석규에게  괄목상대한 변화다.

    

예전 같았으면 석규를 좋아하는 간호사가 저녁 사준다고 해도 "당직이라서 못 나간다."고 선을 긋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습관적, 자발적 당직으로 간호사와 섬싱(?)의 기회를 잃어버리면 석규의 입에서  "이런 염병할..." 속된 말로 중년 남성들의 탄식이 터져 나온다.

    

석규뿐 아니라 석규의 병원 역시 작은 변화가 생겼다. 석규의 병원은 전문재활치료가 가능한 요양병원이다. 재활의학과 보드는 주치의 역할 외에 재활치료를 담당하는데, 이것이 요양병원 운영자 입장에서는 수입이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재활의학과 전문의를 따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30대 후반의 잘생긴 젊은 의사가  석규네 병원에 들어왔다. 재활의학과의 경우, 대학병원이나 대형종합병원에 가지 못하면 요양병원에 '페이닥터'로 오는 경우가 많다. 재활의학과는 개업하기엔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젊은 재활의학과 의사의 등장은 석규를 신경쓰이게 했다. 비단 재활의학과 '페이'가 내과의 두 배 이상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항상 어디서든 석규 자신이 중심에 있었으며, 자신의 판단은 항상 옳다고 인정받았었는데 그 친구의 등장으로 그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본질은 그게 아니다. 그가 젊고 잘생긴 남자라는 것, 그게 신경이 쓰였다. 석규도 남자였기 때문이다.

    

젊은 재활의학과 의사의 출현 때문이 아니라 석규는 매일 런닝머쉰을 탄다. 특별히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석규에게 가장 알맞은 운동이 런닝머쉰을 달리는 것이다.

    

중년이 넘어선 석규 나이의 남자들이 건강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석규 나이가 되면 이제 여기저기 닳고 고장 날 시기다.

    

원래의 석규는 걷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특히 요즘 중년남성들 사이에 유행하는 등산은 더욱 싫어했다. 그래서 등산마니아 친구들과 어울려 한 번쯤은 산행을 할 법도 한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친구들과 산행을 한 적이 없다.

    

석규가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활동인 등산을 경원시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예전에 등산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선배 원장을 따라 어쩌다 태백산 산행을 한 경험 때문이었다. 생전 처음 산행을 한 석규는 사실 그날 죽을 맛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올라갔다 내려올 것을 힘들게 왜 올라가?"

    

그랬던 석규가 요즘은 쉬지 않고 매일 주기적으로 런닝머쉰을 탄다. 일단 런닝머쉰이 유산소 운동으로 등산보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체코여행에서 돌아온 뒤 바뀐 심경 때문이기도 하다. 섹스에 필요한 것이 그 무엇보다 체력이며, 지구력이고 더 나아가 하체근력이 단단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주기적 운동으로 체력을 비축하기로...거기다 다른 이유가 생겼다. 24시간 100km 걷기 대회의 완주목표를 세운 것이다.

 

작년에 친구이자 동료인 김내과 원장이 요즘 유행하는 '남자가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중 하나라며 친구들의 열화가 같은 지지를 받고 도전했으나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체코에서 돌아온 석규는 이 대회 참가를 아무도 모르게 신청했다. 병원 간호사들은 물론 김내과 원장도, 당시 응원했던 친구들도 아무도 모른다. 석규는 조용히 혼자 참가, 완주를 결심했다. 그리고 내일 강원도 원주에서 개최되는 이 '100km 걷기대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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