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사드'...확정배치 아닌 '임시배치'

백은종 | 기사입력 2017/09/25 [05:51]

'성주 사드'...확정배치 아닌 '임시배치'

백은종 | 입력 : 2017/09/25 [05:51]

지난 6일, 정부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군 사드(THAAD) 발사대 총 6기 중 배치하지 않고 있던 4기를 배치했다. 이로써 경상북도 성주에 배치된 사드는 레이더와 발사대 6기를 모두 갖춰 1개 포대가 완성된 모습이 되었다.

 

 

▲ 지난 3월 18일, 사드 한국배치 저지 전국행동 등은 경북 성주군에서 '불법 사드 원천무효, 배치강행 중단 3.18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정부는 남은 사드 발사대를 배치하기 위해 8000명 정도의 경찰을 동원하였다. 이로 인해 즉각적인 반발이 나왔고, 사드 배치에 줄곧 반대해왔던 반전·평화 단체를 중심으로 시민사회의 항의 움직임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의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대립하고 있으나, 최근 높아진 찬성론은 최근의 외교·안보 상황으로 인한 일시적 효과의 반영이라고 본다. 배치의 강력한 명분이 되고 있는 북한 미사일에 대한 방어 측면에서 사드는 그 효용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설령 사드가 북한 미사일을 막을 수 있다고 해도 영남권만을 방어할 수 있기에 사드가 그 자체로는 북한 미사일의 해법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가운데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 등의 반발을 일으켜 실질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므로, 궁극적으로는 철거해 마땅하다.

 

사드를 배치한 정부 또한 이러한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를 배치 한다고만 하면서 영구적이고 고정적인 확정배치를 암시하였으나, 문재인 정부는 최초기부터 줄곧 임시배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 실물이 들어온 상황에서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으나, 이런 식의 말장난이 사실은 외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임시배치 용어 사용은 분명 외교적 전략에 따른 행동이다. 이는 우리 정부 당국이 향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해 놓는 중요한 지점이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부가, 당면한 외교·안보 상황과 이에 따른 국내외 여론 등에 밀려 사드 배치를 철회하지 못하고, 사드의 나머지 발사대를 모두 임시배치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원하는대로 이룰 수 있는 민주정부는 없다.

 

비록 일시적인 현상이라 해도, 북한의 핵 위협으로 인해 사드 배치 찬성론 - 추가 배치 요구를 포함한다 - 이 그 어느 때보다 힘을 받고 있으며, 이전에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던 미군 전술핵 배치와 같은 반동적인 논의가 주류 정치권에서 공공연히 오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야 하는 정부는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다. 사드 임시배치 용어 사용은 지금 시기에 정부가 할 수 있는 그나마 나은 선택으로 이해한다. 박근혜 정부가 들여놓은 발사대를 배치하기만 함으로써, 미국의 압박을 받아내며 얻어올 것을 얻어오고, 국내외의 여론에도 대응하는 고육지책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향후 상황 변화에 따라 사드 유지 문제를 협상 카드로 사용하고, 필요할 경우 철거하고 미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임시"라는 용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 반전·평화 단체를 중심으로 사드 철거 요구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시민사회계는 이러한 정부의 고심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각계에서 발표하는 사드 반대 성명이나, 사드 반대 집회 현장에서 나오는 발언 등은 문재인 정부의 사드 임시배치를 단지 배치라고만 하거나, 심지어 추가배치 등의 용어로 강조하며 마치 지금의 사드 배치가 박근혜 정부 시기 영구적이고 고정적인 확정배치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수구·보수 매체들을 중심으로 한 주류 언론들은 문재인 정부의 사드 임시배치에 대해서 배치 완성 등의 용어로 배치가 확정된 듯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전달한다. 그들이 이러한 보도 행태를 보이는 것은 사드 배치에 찬성하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이제 사드 배치가 확정된 것으로 마무리짓고, 미군 전술핵 배치 등 더욱 냉전적이고 대결적인 정책의 당위성을 설파하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이러한 수구·보수 매체들의 전략은, 지금은 사드를 배치하되 향후 철거 가능성을 열어놓으려는 문재인 정부의 계획을 훼방하는 짓이며, 국익에 반하는 태도임에 틀림없다.

 

각종 사실왜곡과 편파보도로 신뢰도가 떨어진 수구·보수 매체들의 이러한 보도 행태는 역겹지만 그 자체로 위험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 사용에 사드 반대 진영까지 동참하며 정부를 양쪽에서 압박하는 모습이 만들어지는 모양은 매우 우려스럽다.

 

사드 찬성 매체들이 사드 배치 확정을 위해 쓰는 용어 전술에, 사드 반대 단체들이 동조하면서 사드 배치는 되돌릴 수 없다는 국민적 인식이 뿌리내리기 때문이다. 사드 반대 단체들이 악의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용어 사용의 결과, 당초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의 사드는 박근혜 정부의 사드와 다르다. 무기 체계로서의 물질적 모습은 똑같으나, 사드 자체가 순수한 무기 체계라기보단 외교적 카드의 하나라는 점에서, 그리고 외교에는 언어의 사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배치와 문재인 정부의 임시배치는 분명히 다르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으로부터의 반대급부 없이,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 실현을 위해 사드를 배치한 반면, 문재인 정부는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사드 임시배치는 "임시"배치이므로 확정배치에 비해 배치 종료를 요구할 명분을 만들기 훨씬 쉽다.

 

북한 김정은의 핵·미사일 실험과 미국 트럼프의 막말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불안한 정세는 언젠가 해소된다. 이에 따라 전쟁도 불사한다는 대북 강경론과, 지금의 강력한 사드 배치 찬성론은 사그러들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이 지금의 사드 배치가 확정된 것으로 승인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면 정부도 나중에 이를 되돌릴 수 없다. 사드가 배치된 지금 상황에서, 사드 철거를 위해 중요한 것은 정부의 친미 정책을 비판하는 것보다 정부에 향후 사드 철거 요구를 위한 명분을 제공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를 확정하지 않았다. 경상북도 성주에 배치된 사드는 영구적이며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은 답답하겠으나, 이는 수구·보수 집단이 장악한 국회의 발목잡기에 따른 부분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적폐 청산을 통해 사회 개혁을 위한 기반을 만들고 있으며, 적어도 아직까지는 촛불 민심이 제시한 길에서 벗어났다는 근거는 없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민중의 요구는 문서와 집회 등으로 계속 표시되어야 하며, 더욱 커져야 한다. 다만 이것이 대정부 강경론에 치우쳐, 사드 배치가 확정된 듯한 느낌을 주는 단정적 언어 사용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언어 사용은 민중이 요구하는 사드 철거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방해하는 수구·보수 매체들의 전략에 도움을 줄 뿐이다. 반전·평화 단체들도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이해하고, 언어의 기술을 통해 사드 철거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할 때이다.

 

 

[서울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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