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설경구는 천상 배우다.

[김양수의 영화 이야기] 살인자에게도 치매는 모든 기억 파괴

김양수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9/25 [11:10]

'살인자의 기억법'...설경구는 천상 배우다.

[김양수의 영화 이야기] 살인자에게도 치매는 모든 기억 파괴

김양수 칼럼니스트 | 입력 : 2017/09/25 [11:10]

[신문고뉴스] 김양수 칼럼니스트 = 아들과 설경구, 김설현 주연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을 보았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에게 일요일 무슨 영화를 볼까 하고 '아메리칸 메이드'와 '킬러의 보디가드'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더니 아들은 나에게 무비챠트를 보여 달라고 하더니만 뜬금없이 '살인자의 기억법'을 골랐다. 확실히 '중2병'은 부모의 예상을 벗어나는 특징이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 이 영화는 한마디로 웰메이드 스릴러 무비이다. 치매를 앓는 전직(?) 연쇄살인마 주인공(설경구)이 우연히 현직(?) 연쇄살인마와 조우한 뒤 사라져 가는 기억과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망상과 환상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인마로부터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탄탄한 대본과 연출, 그리고 배우 설경구의 명연기가 돋보인다.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속, 설경구 연기의 한 장면     © 편집부

 

 

동료 여배우 송윤아와의 결혼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마타도어를 당하고 있는 배우 설경구이지만 나는 그의 연기력을 이른바 천만관객 영화의 단골 배우들 -송강호, 최민식, 황정민 등등-과 견주어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천상 배우다.

    

그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영화배우로 데뷔하는 걸그룹 멤버 설현의 연기는 발연기 수준은 벗어나 최소한 영화의 흐름을 망치지 않는 정도이며, 오히려 긴장이 연속되는 영화에서 돋보이는 외모로 시각적 포인트를 제공하는 기여(?)를 하고 있다.....

 

이 다음부터는 스포일러 내용이 될 수 있으므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주의하시기 바란다.

    

영화를 보고 나온 직후 나는 어디서 본 듯한 영화 포멧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0년 영화 '메멘토'와 비슷한 클론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메멘토를 안 본 분이라면 살인자의 기억법과 같이 감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장자와 나비의 꿈이라는 고사....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가 꿈에서 깨어 생각해보니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모르겠더라는 이야기.......장자가 살던 시절에만 해도 치매 환자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인식과 현실의 괴리를 꿈에서 찾았던 것 같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메멘토 이후 영화 '인셉션'을 통해 사람의 인식과 현실의 괴리를 꿈을 통해 그리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장수를 누리면서 치매가 '복불복 통과의례'가 된 요즈음에는 인식과 현실의 괴리를 피부로 와 닿게 하는 문제는 역시 치매가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2011년 메릴 스트립이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으로 열연한 '철의 여인'이라는 영화 또한 치매 환자가 겪는 인식과 현실의 괴리를 처연하게 표현했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영화 속 설경구의 모습이 바로 치매로 투병 중이신 내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보면 영화의 사건 중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설경구의 환상인지 설왕설래가 오가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논란은 영화를 감상하는데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치매를 앓는 주인공에게는 영화의 모든 사건이 전부 환상일수도, 모두 현실일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나는 영화의 메시지는 다른 곳에 있다고 느꼈다. 치매는 일생의 모든 기억을 파괴한다. 대게 최근의 기억으로부터 시간의 역순으로 기억의 파괴는 진행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는 기억은 아마도 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절실한 하나일 것이다.

    

전직 연쇄살인범 설경구의 치매가 깊어지면서 그에게 남은 의식의 마지막은 딸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래서 그는 딸의 목숨을 노리던 현직 연쇄살인범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였음에도 그 기억마저 믿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의식이 완전히 피폐해지기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어함에도 끝내 자살하지 못하고 의식 없는 빈껍데기로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어느 날 당신에게 기억의 파괴가 시작되며 의식이 서서히 허물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기억을 마지막까지 움켜잡으려 할까. 당신에게 있어 마지막까지 남은 의식의 공간에서 지키고 싶은 하나가 정녕 존재하는가. 영화의 메시지는 어쩌면 이런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당신이 '있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괜찮게 살아온 인생이겠다. '없다', 혹은 '모르겠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남은 삶에서 그런 기억을, 그런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 살아가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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