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문칼럼] 머리로 사색하고 발로 우뚝 서라

시대에 걸맞는 정치인 선택하여 국민 고통을 같이 할 인사를 골라야

이강문 영남본부장 | 기사입력 2018/01/20 [09:55]

[깡문칼럼] 머리로 사색하고 발로 우뚝 서라

시대에 걸맞는 정치인 선택하여 국민 고통을 같이 할 인사를 골라야

이강문 영남본부장 | 입력 : 2018/01/20 [09:55]
▲양파tv. 양파뉴스 이강문 총괄사장.     ©이강문 영남본부장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는 겸손하고, 강한 자에게는 당당한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자신은 비록 나약하지만 비겁함을 잃지 않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장면은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 그런 사람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 의식이 팽배해져 있기에 더욱 그렇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겸손과 당당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드라마에서 방영한「야인시대」를 보면서 극중에 나오는 김두한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는 낮추지만, 강한 자에게는 비겁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 그립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따뜻하고 멋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간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옛 얘기 중 관아의 백일장에서 할아버지를 매도하는 글을 짓고 장원이 되었던 김병연(김삿갓)은 평생 태양을 보기 두려워 삿갓을 쓰고 전국을 돌아다닌 풍류시인을 우리는 ‘방랑시인 김삿갓’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김삿갓은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찾아가 하룻밤을 신세지기로 청했다. 그러나 주인은 대문 앞에 밥상을 차려주고 어서 먹고 잠자리는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몇 끼를 굶어 허기가 졌던 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게 눈 감추듯 한 사발밥을 먹어 치웠다. 밥을 다 먹고 난 그는 종이와 붓을 빌려 밥값으로 귀나당(貴娜當)이라는 세 글자를 써주었다.


‘귀하고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이었으니 주인은 그것을 고맙게 받았다. 그런데 자리를 털고 일어난 김병연은 빙긋이 웃고 있었다. 그 글자를 거꾸로 읽어보면 ‘당나귀’였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난 김병연은 이번엔 낡은 초가집 앞에 멈춰 섰다. 역시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더니 주인은 그에게 좁은 방의 한 켠을 내주었다. 그리고는 저녁 한 끼 대접하지 못함을 미안해하며 보리죽 한 그릇을 내놓는 것이었다.


이미 저녁을 먹었으니 그것을 거절할 만도 했지만,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주인의 마음 씀씀이에 맛있게 그릇을 비웠다. 잠시 후 숟가락을 놓은 그는 주인에게 이런 시를 읊어 고마움을 표현했다. “네발 소반에 죽 한 그릇/ 하늘빛 구름 그림자 떠도네! 주인이여, 미안해 할 것 없소/ 나는 청산이 물위에 거꾸로 비치는 걸 좋아하니”/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시를 남긴 김병연, 그는 가난한 이가 내놓은 술 한 사발, 죽 한 그릇에는 무한한 감사를 표현했지만 권력자나 인색한 부자들에게는 풍자와 조롱을 서슴지 않았다. 요즘 여야 정치인들이나 돈 푼깨나 있다는 사람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만약 이 시대에 김병연 같은 시인이 살았다면 무엇이라 시를 썼을까. 매우 궁금해진다.


장관 취임이나 국회의원 당선은 가문의 영광이요, 후대 자식들에게 더 없는 자랑이며, 사후에도 00장관, 국회의원 000지묘라고 비석을 세울 텐데, 그렇게 명망 있는 인사들이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우리 국민들이 받는 ‘부정한 축재’ ‘공천헌금으로 거액 수수’를 보면서 무엇을 느낄 것인가.


그런 고위직 관리들이 국민들에게 ‘부정을 하지 마라’ ‘부동산 투기를 하지마라’ ‘정직하게 살아라.’ 할 수 있을까. 대통령과 고위공직자들이 국민과 수준을 맞출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시선만이라도 같은 곳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축재를 못한 우리들도 잘못이 있지만 그럴만한 위치도 그럴만한 권한도 없는 국민들에게 청빈은 아니더라도 이 시대에 걸 맞는 정치인을 선택하여 국민과 고통을 같이 하는 인사를 이번 지방 선거부터 골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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