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태백산'에서 맛본 '극한의 추위와 그것은!'

멈출 수 없는 산행, 쉬지도 못한다 쉬는 것이 더 큰 고통을 주기에

박종남 컬쳐인시흥 | 기사입력 2011/01/24 [05:31]

눈 덮인 '태백산'에서 맛본 '극한의 추위와 그것은!'

멈출 수 없는 산행, 쉬지도 못한다 쉬는 것이 더 큰 고통을 주기에

박종남 컬쳐인시흥 | 입력 : 2011/01/24 [05:31]
영상으로 보여 지는 겨울산은 눈을 매혹시킨다. 설원이 펼쳐진 산 능선은 고요와 함께 아늑함이 전해지기도 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상고대를 보면 춥다는 생각보다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것은 나의 오만이 가져 온 착각이었다. 영상으로만 그것도 정지된 화면이 주는 정적인 단면을 보고 겨울의 산을 평가했던 것이었다. 2011년 새해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나선 원정 산행이 태백산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극한 추위를 체험한 날이었다.

사전에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다. 이전에 겨울 산행 경험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근래에 대부분을 주변 도보 길을 걷다보니 높은 산을 올라 본지 꽤나 되었다. 

어쩌면 가기 싫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어 괜히 겁부터 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동행하는 지인들에게도 엄포를 놓았다. 신발장에 얌전히 놓여 있던 아이젠은 간만에 자리를 이동하게 되었다. 새벽 출발이 걱정을 보탰다. 게다가 연일 계속되는 추위와 이어지는 한파 특보 예보까지. 핑계는 많아지고 용기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 바람의 강도가 엄청난 능선     © 시흥대백과


어둠을 헤치고 도착한 태백산. 두 번째 산행이었지만 눈 덮인 겨울산행은 처음이었다. 현지 해설사의 간단한 해설을 듣기 위해 추위에 몸을 무방비로 내세워 두게 되니 시작부터 고전이다. 장비를 장착하는 손이 절로 시리다. 바람의 강도는 감히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한다.
 
등지고 서서 완전 무장을 하고나니 누가누구인지 분간이 어렵다. 이 추위에 산행을 위해 태백산을 찾은 등산객들은 너무도 많았다. 관광버스마다에서 내린 인파가 몰리니 입구는 인산인해다. 오전 11시 무렵 산행을 시작했다.

출발부터 손이 시렸다. 장갑 두 개를 껴본다. 도리어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더 시린 느낌이다. 뒤늦게 장착한 아이젠은 무게감이 확확 느껴졌다. 인파 속으로 휩쓸려 오르다보니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차츰 몸이 더워지니 손끝에도 온기가 전달되어 감각이 살아나 살만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 게다가 급경사다. 바람이 불면 고개를 들지도 못한다. 주변 경치 구경을 포기했다. 앞 사람들의 발만 보고 가는 형국이 되었다.  아이젠 무게감에다 급경사를 오르다 보니 다리가 묵직해져 온다.

하지만 쉬지도 못한다. 쉬는 것이 더 큰 고통을 주기에. 춥다는 사실에 엄살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무조건 전진이다. 다리가 저려도 마냥 오른다. 바람이 막으면 얼굴을 돌리고 또 나아간다. 오로지 목적지를 향해 나아 갈 뿐이다.
 
등산로 주변 나무들은 이름표를 달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낯선 이름들이 많았다. 생태 공부를 한 것이 맞나 싶게 생경하다. 넓었던 길이 좁아지면 정체가 심하다. 휴식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은 곧 추위와 맞서는 것이라 잠시의 지체도 괴로움이 되고 만다.
 
느긋함과 여유는 잃어버렸다. 바람을 등지고서야 사물을 보는 것이 가능하니 여유 있게 무엇을 바라본다는 것은 감정의 사치다. 몸을 배려하지 않은 처사다. 무조건 전진만이 추위와의 싸움에서 지치지 않는 전략이다. 


▲ 정상의 천제단     © 시흥대백과

팔부를 넘어 능선자락을 올라서니 주목들이 철쭉들과 함께 나타났다. 뒤로 함백산이 눈에 들어왔지만 역시나 오래 감상하지 못했다. 능선을 타니 바람이 더욱 심하다. 입주변이 얼얼하다. 코가 시리고 안면에 시린 느낌이 팍팍 온다. 게다가 엉덩이까지 차갑다 못해 감각이 사라지고 있다. 천제단을 멀리 바라보고 타는 능선은 바람의 강도가 심해 마치 눈보라가 블리자드를 떠 올리게 한다. 시린 손이지만 얼굴을 절로 감싸게 된다.

카메라를 꺼내어 주변 풍경을 담고 싶은데 바람이 허락하지 않는다. 천제단 안에 몸을 숨겨본다. 주변에 사람들이 워낙에 많았지만 모두들 나만큼은 춥지 않은 건지 용감하게 서있다. 인증 샷을 담고 나오는데 바람이 이 대단한 몸무게를 소유한 나를 움직인다.


▲ 지나 온 길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시간     © 시흥대백과

하산하는 길. 좌우지간 정상을 벗어나니 바람이 잦아 살만하다. 단종비각까지 내려오니 여유가 생겼다. 햇살의 따사로움도 고맙게 느껴진다. 참 간사하다. 살만하니 카메라에 담지 못한 풍경들이 아쉬워진다.
 
내려오는 길은 지치고 배가 고파왔지만 춥지 않아서 살 것 같다. 손은 여전히 시리다. 스틱을 버리고 번갈아 가며 주머니에 손을 넣어 온도를 높여 본다. 당골 매표소가 가까워지니 심리적으로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단군동상도 둘러보고 영정도 보고 눈 조각이 한창 진행 중인 곳을 살펴보는 여유도 생겨났다.


▲ 단군을 모신 곳     © 시흥대백과
▲ 눈 조각이 한창인 공원 입구     © 시흥대백과
함께 출발한 일행 모두가 흩어져 어디에 누가 어떻게 산행을 했는지 몰랐는데 용케도 안전하게 산행을 마무리하고 얼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새해 처음으로 나선 겨울산행. 극한의 추위와 바람의 경험을 하고 왔지만 새해의 각오와 다짐을 새롭게 하기에 충분했다. 돌아와 따듯함을 느끼니 일상이 감사로 다가온다. 의미있는 태백산 겨울산행이었다.


 
이 기사는 <컬쳐인시흥>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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