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장군 정신이 깃든 '해림' 가는 길

'2011 겨울 만주기행'을 다녀와서 (12)

조종안 | 기사입력 2011/02/27 [05:30]

'백야' 장군 정신이 깃든 '해림' 가는 길

'2011 겨울 만주기행'을 다녀와서 (12)

조종안 | 입력 : 2011/02/27 [05:30]
버스가 하얼빈-목단강 고속도로(340km) '상지(尙志)휴게소'에 도착하니까 잿빛 구름 사이로 햇살이 얼굴을 내밀었다. 중국에 도착해서 처음 보는 햇살이어서 반가웠으나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하얀 눈밭에 눈부시도록 반사되면서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중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어떤 먹을거리를 파는지 들어가 보았다. 트럭 기사로 보이는 남자 둘이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과자, 빵 등을 차려놓은 진열대는 60년대 고향동네 점방을 연상시켰다. 마땅히 먹고 싶은 게 없어서 그냥 나왔다.

 
▲ 주차장이 텅 비어있고 오가는 사람도 없어 더욱 춥게 느껴지는 하얼빈-목단강 고속도로 휴게소. ⓒ 조종안    


중국 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는데, 인구 8백만이 넘는 도시 '하얼빈'과 4백만 인구의 목단강(牧丹江)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휴게소는 허술하고 썰렁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사회주의 체제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휴게소처럼 먹을거리 코너가 많아야 북적북적하고 훈기가 돌 터인데 눈밭에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으니까 더욱 춥게 느껴졌다. 주차장이 텅 비어 있고, 오가는 사람까지 없으니까 눈도 심심했다. 설경만 몇 컷 카메라에 담고 버스에 올랐다. 

백야 김좌진 장군 정신이 깃든 해림(海林) 가는 길

 
▲ 휴게소에서 바라본 하얼빈-목단강 고속도로. 우리의 국도처럼 보였습니다. ⓒ 조종안    


오전 11시 30분쯤 '상지휴게소'를 출발했다. 백야(白冶) 김좌진(金左鎭) 장군 정신이 깃든 해림(海林)에서 점심을 먹으려면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버스 운전석 속도계를 살짝 훔쳐보니까 바늘이 7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빙판길이어서 조심스럽겠지만, 너무 느리게 달리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보는 고속도로 주변은 70년대 우리 농촌 풍경과 흡사했다. 하얗게 변한 텃밭, 앙상한 비닐하우스, 두꺼운 눈모자를 쓴 오두막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는 마을 풍경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도 보였다. 날이 추우니까 군불을 지피는 모양이었다.

설원이 한 시간 가까이 펼쳐졌다. 바람이 없으니까 더욱 포근하고 아름다웠다. 눈부시도록 반짝이는 눈밭은 아랫목에 깔아놓은 목화 솜이불을 떠오르게 했다. 조개껍데기 같은 산등성이 위에서 비추는 햇살은 수줍은 새색시처럼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가 숨어버리곤 했다.


▲ 고속도로 주변 마을 풍경. 조선족이 사는 마을인지 한국의 시골 분위기가 풍겼습니다. ⓒ 조종안    

설경 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추위도 달아났다. 잠시 설원을 떠도는 보헤미안이 되어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도 받았다. 허술한 판자 울타리에 둘러싸인 농가의 뜨끈한 건넌방을 빌려 며칠이라도 안식처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박영희 시인이 만주 농가에서는 대부분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기를 줄에 엮어 걸어두었다가 필요하면 줄을 잡아당겨 필요한 만큼 잘라 먹는단다. 현장을 목격하지 못해 궁금했지만, 추운 지방에서나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해림시 부근에 있는 목재소. 어렸을 때 많이 보던 풍경이었습니다. ⓒ 조종안    

▲ 하얼빈-목단강 고속도로 해림 톨게이트. 처음 방문인데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 조종안    


높은 산과 마을이 자주 보였다. 해림이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산에서 베어낸 원목을 가득 실은 트럭도 자주 오갔다. 지붕만 있는 창고와 마당 이곳저곳에 목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제재소도 보였다. '해림, 목단강은 임업이 발달했다'는 소문 그대로였다. 

해림 톨게이트에 도착하니까 오후 1시 50분이 지나고 있었다. 처음 방문인데, 도시 이름에서 깊은 정취가 묻어났다. 인구가 25만쯤 되는 작은 도시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담하고 차분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통행료 요금 판에 찍힌 242元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고속도로 통행료(하얼빈-해림) 같았는데 한국 돈으로 4만 3천 원 정도 되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군산-부산 고속도로 승용차 통행료가 1만 원 남짓인데,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답답했다. 

'백야' 장군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실험소학교' 방문 

예상보다 1시간 정도 늦게 해림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기 전 백야 김좌진 장군(1889-1930)이 설립했다는 '실험소학교'를 둘러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백야 장군이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세운 20여 개 학교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족 학교란다.


▲ 백야 김좌진 장군이 설립했다는 해림 실험소학교. 널뛰기하는 벽 그림만으로 조선족 학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조종안    


 


겨울방학 중이어서 학생들은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본관 건물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고, 눈 쌓인 운동장은 한국의 여느 초등학교와 다를 게 없어 정겹게 느껴졌다. 정문 옆 건물 벽에 귀여운 초립의 아동들이 널뛰는 그림이 그려 있어 정감을 더했다.

교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장에서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걸음을 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여럿이니까 더욱 요란했다. 하얼빈 731부대에서 듣던 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어렸을 때 부르던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 노래가 흥얼거려졌다. 

실험소학교는 해림시 서쪽에 있었다. 1927년 10월 설립했을 때 교명은 '신창 소학교(교원 2명, 학생 60명)', 당시엔 신학문을 가르쳤던 조선족 교육의 요람이었단다. 지금은 운동장에 배수가 안 되어 비가 내리면 다음날 체육을 교실에서 한다고. 책도 부족하다고 했다. 박영희 시인은 책을 몇 권 보내주었는데 운송비가 더 들었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박 시인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 내용도 50년 동안 이북 교과서를 따르다 10여 년 전부터 대부분 한국 쪽으로 넘어왔다고 설명했다. '영이' 생일날 시루떡에 미역국 먹는 내용에서 케이크를 올려놓고 축하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예를 들었다. 

독립선열 후예들이 우리말, 우리글, 우리 문화를 가르치는 실험소학교는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연기 연예부분 경진대회에서 6년 연속 최우수상을 수상했던 경력이 있고, 한국과도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림시 (사)‘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김종하 총경리(總經理)는 국내외 많은 분들의 관심과 후원에도 ‘실험소학교’가 통폐합 위기에 처해있다며 안타까운 현실을 설명했다. 

“이곳 실험소학교 학생 중에는 8년씩이나 부모 얼굴을 못 본 아이도 있습니다. 그 학생 부모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이 한국의 식당, 공사장 등에서 보셨던 조선족, 그분들입니다. 그들의 할아버지·할머니는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들에게 조 한 줌, 쌀 한 줌을 도와주시던 분들이지요.

학생 수가 자꾸 줄어드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4-5년 전만 해도 흑룡강성(헤이룽장 성) 일대에 조선족 학생이 4만 명 정도 되었는데 지금은 1만 명에 불과하답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온 조선족들이 살기 좋은 ‘청도’ 같은 곳으로 이주해가니까 줄어들 수밖에요. 

솔직히 이곳 해림은 시골이어서 매우 춥고 교육환경도 열악한 게 사실입니다. 실험소학교도 곧 ‘조선족 중학교’와 통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곳 관계자들도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학생이 자꾸 줄어들면 분교 되었다가 나중엔 폐교될지 모르니까요. 

김을동 의원을 비롯한 저희는 실험소학교가 전통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기념사업회’ 차원에서 장학금, 문화 활동, 컴퓨터 등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학생 수 줄어들지 않게 하는 게 목적이니까요. 그러한 현실을 알아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김종하 총경리의 하소연 같은 설명은 한·중 수교이후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일어나는 부작용으로만 생각하기에는 짐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무거웠다.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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