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 여사장님, 길 잃은 아이들 대모라 불리는건!

[인터뷰] 안성 아이비스 피씨방 대표 임삼성 씨

황윤희 안성신문 | 기사입력 2011/03/11 [05:48]

PC방 여사장님, 길 잃은 아이들 대모라 불리는건!

[인터뷰] 안성 아이비스 피씨방 대표 임삼성 씨

황윤희 안성신문 | 입력 : 2011/03/11 [05:48]
누군가와 소통하고자 할 때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상대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같은 모국어를 써도 사람 개개인이 구사하는 언어는 미묘한 차이를 가져, 상대의 말 속에 담긴 ‘속살’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표면만 읽고, 겉만 이해해서는 피상적인 대화만 나누게 될 뿐이다.

임삼성(53세) 씨는 청소년들과 대화하기 위해, 청소년들의 언어를 배웠다. 욕을 입에 달고 산다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청소년과 대화하기 위해서, 그녀는 평생 안 쓰던 욕을 배운 것이다. 그리하여 욕이 난무하는 세상에 비속어를 더 보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욕 속에 담긴 ‘신호’를 읽었다.
 
청소년들의 비속어에는 오늘의 이 사회에 대한 호소와 저항이 있다. 임삼성 씨는 어른의 편에서 어른의 교과서적인 훈계의 언어로 아이들을 만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편에서 그들의 언어를 먼저 배우는 것으로 청소년들의 마음을 열었다.

▲ 서인동에서 피씨방을 운영하고 있는 임삼성 씨. 그녀는 피씨방에서 수많은 아들을 만들었다.     © 안성신문
그녀는 서인동 아이비스 피씨방의 사장님이다. 피씨방을 오가는 많은 청소년들이 임 사장을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라니……. 천방지축이고 비이성적이고 물불 가리지 않는 무서운 10대들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사정이 뭘까?

처음 피씨방을 열었을 때 임 사장은 며칠 동안 펑펑 울었다고 했다. 드나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말마다 욕을 내뱉고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었다. 그의 모습에 질려 피씨방 못하겠다고 임 사장은 가족들에게 호소했다.
 
그렇게 손을 놓아버렸으면 지금 이곳 10대들의 ‘엄마’도 없었을 것이다. 임 사장은 신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기도했다. 막막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기도에 응답이 온 것일까? 5일이 지나자 그녀의 마음 속에 하나가 떠올랐다.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구나 하는……. 그러자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라 했다. 그래, 마음이 달라지고 가슴이 열리면 세상이 나를 따라 변한다. 

임 사장은 피씨방에서 아이들이 고민을 주고받는 소리를 들었다. 가만히 관찰해보니 아이들은 어른만큼이나 걱정이 많고 불우했다. 시험을 못 보면 집에 가서 혼날 생각, 학교에서 혼날 생각으로 걱정이었다.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 앉았지만 공부에 취미도, 재능도 없는 아이들이 그렇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예전에 강의를 들었던 경험을 떠올렸다. 3시간 강의 듣는 것조차 그렇게 힘들었었는데,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때부터 임 사장은 아이들과 친해지고, 10대들에게 다가가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임 사장이 피씨방을 운영하게 된 데에는 마음 아픈 사연이 있다. 임 사장은 이전 일죽에서 20년 동안 돼지농장을 운영했다. 혼자 150마리의 돼지를 키울 정도로 농장을 키웠지만, 어느 날 임 사장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협심증이었다.
 
두 번의 수술을 거쳤지만 언제 어디서 쓰러져 저세상으로 가버릴지 알 수 없었다. 임 사장은 돼지농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맏아들이 학교를 휴학하고, 군대도 가지 않은 채 1년 동안 그림자처럼 엄마를 따라다니며 보살폈다.
 
아들은 엄마를 혼자 둘 수 없어 했다. 엄마가 죽으면 다른 일이 무슨 소용이냐는 뜻이었다. 임 사장은 그런 아들을 안심시켜야 했고, 물색 끝에 그럼 피씨방을 하겠다고 했단다. 피씨방은 사람들이 항시 함께 있으니 자신이 쓰러지면 응급차라도 불러줄 것 아니겠느냐는 뜻이었다. 아들은 피씨방을 오픈하는 것을 보고 1달 후, 뒤늦게 군대를 갔다. 4개 국어에 능통하고 비행이라고는 모르는 모범생 아들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피씨방에서 임 사장은 결국 수많은 아들들을 만들었다. 피씨방에서 알게 된 많은 아들들이 그녀를 엄마라고 부른다. 군대에 간 아이들은 휴가를 나오면 1순위로 임 사장의 가게를 들린다.
 
그들이 임 사장을 찾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간단하고 명쾌하다. 그녀는 아이들의 편에서 고민을 들어주고 아이들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나고 고민을 나눈 10대들이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그동안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이 군대에 간 한 녀석은 군에서 전화를 걸어와 고민을 털어놓는단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것이다. 임 사장은 일단 녀석을 안심시킨다.
 
“걱정하지 말아라. 제대하면 나와 같이 일하자.” 임 사장의 위로의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그녀는 실제로 많은 아이들의 진로를 잡아주었고, 일자리를 구해주기도 했다. 학교를 그만둔 십여 명의 아이들을 다시 학교를 다니게 설득했고, 그게 아니면 검정고시를 보게 했다.

지금 피씨방 매니저를 하고 있는 20살을 갓 넘긴 청년도 군대 가기 전 1년 동안 천만 원을 모으자고 임 사장과 약속했다. 막막한 청년의 나아갈 바를 임 사장이 지목해준 것이다. 이 청년은 지금 모은 돈으로 중고차 한 대까지 굴리며 경제를 톡톡히 배우고 있다.
 
또 한 명, 건달이었던 청년은 폭력을 행사했다가 엄마, 임 사장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건달도 매너가 있어야 한다. 내 지역 사람을 괴롭히는 건달이 건달이냐?” 하는 것이 그녀의 뜻이었다. 그 학생은 결국 상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 식으로 사고치고 임 사장을 찾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임 사장은 자신의 지갑까지 헐어 아이들의 뒷감당을 해주고 있기도 하다.

어느 한 아이는 학교에서 밀린 학비를 재촉한다며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임 사장은 그 아이에게 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무릎 꿇고 졸업만 시켜달라고 말하라고 시켰다. 그 학생은 ‘엄마’와의 상담 끝에 정말 그렇게 했다.
 
무릎 꿇고 졸업만 시켜달라는 학생의 모습 앞에서 교사는 그 아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너 졸업 책임지마”라고……. 교사와 학생의 소통의 어려움을 임 사장이 중간에서 통역한 것이다. 그녀는 청소년 언어의 통역자다.  

아이비스 피씨방은 전체가 금연실이다. 그녀는 정 담배를 피워야 하는 사람을 위해 흡연공간을 복도 건너편에 작게 마련해두었다. 임 사장의 피씨방은 어두침침하고 오염된 공기 속에 있지 않다. 그녀의 피씨방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며, 길 잃은 어린 양들이 다시 길을 찾는 공간이다.

그 모든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왜 하느냐고 물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해결해주는 일은 요즘 세상에 어울리지 않고, 자기를 헐지 않으면 가능치 않을 것이다. 임 사장이 말했다. “내가 소중한 것처럼, 그 아이도 소중한 하나의 존재이지요. 누군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사람으로서 구해줄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녀의 반문이 냉소가 유행인 이즈음에 큰 울림이 된다.


▲ 그녀가 운영하는 피씨방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고, 길 잃은 10대들이 다시 길을 찾는 공간이다.    © 안성신문

10대의 자녀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부모들에게 좋은 처방을 내려달라 했다. 임 사장은 ‘문자메시지 보내기’를 추천했다.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면 감정적으로 격해질 수 있는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그럴 확률이 적단다.
 
“아이들과 가슴으로 만나고 친구처럼 대화하세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너의 고민을 얘기해줘서 고맙다, 이렇게요. 저는 이곳 아이들과 문자할 때 항상 끝에 하트를 날려요.” 아름다운 처방이었다. 요즘 청소년들이 소통의 방법 중에 대화 다음으로 꼽는 것이 문자메시지 보내는 것이란다. 임 사장의 문자는 아이들의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대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그녀에게 안성의 강력계 형사들도 인사하러 온다. 그럼 젊은 시절 간호장교였던 임 사장은 형사들 앞에서 꿀리는 일도 없이 충고한단다. “진급에만 연연하지 말고, 아이들이 왜 사고치나 파고들어라, 사고치고 찾아갈 수 있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돼라”고…….  

그녀는 엇나가는 청소년들은 다 어른들이 그렇게 만든다고 했다. 자신의 과거를 잊은 부모들이 자기가 만든 틀에 애들을 끼워 맞추려 한다는 것이었다. 테이블 위의 컵을 들고 임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 컵도 이렇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아야 모양이 어떤지, 색이 어떤지, 무늬가 어떤지 눈에 들어오잖아요? 하지만 눈에 바짝 붙여서 보면 컵의 실체를 보지 못해요. 요즘의 부모들이 자식을 대하는 게 꼭 그 짝이에요. 내 자식을 너무 가까이 놓고 보는 거죠.” 

임 사장은 언제 쓰러질지 알 수 없는 극한의 몸을 이끌고도 자기 일에 열심이다. 그녀의 포부는 피씨방에서 끝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임 사장은 자기 힘으로 자신이 만난 오갈 곳 없는 아이들, 미래가 막막한 청년들과 함께 작은 기업을 꾸려가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순수하게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동의하는 일이다. 거리를 두지 않고서는 온전히 사랑하기 힘들다. 임 사장은 자식과 거리를 두라고 말했고, 거리를 두어서 결국 아이들과 가까워졌다. 그녀가 비행 청소년들의 ‘엄마’로 살며 아무 대가도 없는 ‘구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은 임 사장의 심장이 아픈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대의 오늘 심장은 잘 뛰었는가 궁금하다. 평생 22억 번쯤 뛰는 심장은 그냥 뛰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뛰어야 한다. 오늘 내 아이에게, 또 타인의 아이들에게, 혹은 우리 모두의 아이들에게 문자메시지 한 번 보내보자. 기역과 니은으로 엮어진 사랑이 뜨겁게 전해질 것이다. 마지막에 하트 그려 넣는 것을 잊지 말고…….

 
이 기사는 <안성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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