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정운찬' vs '30대 독일국방장관'

정치인 몇명보다 힘 없는 다수의 개인들의 힘이 더 큰 위력

최재천 변호사 | 기사입력 2011/03/23 [06:38]

'신정아-정운찬' vs '30대 독일국방장관'

정치인 몇명보다 힘 없는 다수의 개인들의 힘이 더 큰 위력

최재천 변호사 | 입력 : 2011/03/23 [06:38]
아직 40세도되지 않은 젊고 잘 나가던 독일의 국방장관이 결국 사임했다는 국제 뉴스 보도가 있었습니다. 사임 이유는 몇 년 전 썼던 자신의 박사논문 일부를 표절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칼 테오도르 주 구텐베르크(39) 독일 국방장관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의 표절시비가 제기되던 몇 주 전만 해도 “(바쁜 일정 속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라면서 “항상 싸울 준비가 돼 있다”며 버텼습니다. 하지만 지난 1일 박사 학위 논문 일부를 표절했음을 인정하고 사임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사임 기자회견에서 “내 힘의 한계에 도달했다”며 “내 인생의 가장 고통스런 순간이다”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문제가 된 논문은 구텐베르크가 2006년 고향인 바이에른주의 바이로이트 법과대학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헌법과 헌법조약-미국과 유럽 헌법의 발전단계>입니다. 이 논문은 2007년도 최우수 논문으로 평가 받기도 했습니다. 
 
▲전 독일국방장관, 칼 테오도르 주 구텐베르크

 
사임 반대 여론 70%
 
구텐베르크는 메르켈 내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관이었을 뿐 아니라 미래 총리감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사실 구텐베르크 전 장관의 인기는 사건이 벌어진 후에도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퇴 직전 있었던 한 여론조사에서는 70%에 가까운 국민이 그의 사임을 반대한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역시 “누구나 실수 할 수 있다”며 끝까지 그를 비호하려 했습니다. 들끓는 사임 여론에 대해 메르켈 총리는 “연구 조수를 뽑은 것이 아니라 국방부 수장으로 뽑은 것”이라며 구텐베르크를 두둔했고, 본인도 박사 호칭을 쓰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물론 야당은 그를 연방 하원에 불러 표절 사실을 추궁하며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와 총리의 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임한 이유는 즉각 사퇴할 것을 요구한 야당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총리의 전폭적인 신임과 강한 비호로 사건은 무사히 지나가는 듯 보였습니다. 국민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도 그가 결국 사임을 결정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독일 지식인들 때문이었습니다. 박사학위 이수자들과 대학교수들이 그의 사임을 촉구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독일 지식인들의 사임 압력에 굴복
 
처음 표절 의혹을 제기한 것은 브레멘대학의 안드레아스 피셔레스카노 교수였습니다. 피셔레스카노 교수는 이 논문의 서평을 쓰기 위해 구글 검색을 하는 도중 인용도 없이 그대로 ‘따다 붙인’ 부분들을 숱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지난 달 16일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피셔레스카노 교수의 의견을 바탕으로, 구텐베르크가 논문 서문마저 몇 단락을 통째로 끌어다 썼다는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했습니다.
 
이후 구텐베르크의 이름을 딴 ‘구텐플라그 위키’(guttenplag wiki)가 개설돼 논문 전문에 대한 네티즌들의 철저한 검증이 시작됐습니다. 이 사이트는 지난 1일까지 475쪽 논문 가운데 무려 300쪽에 걸쳐 크고 작은 표절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일간 <벨트>가 주관한 인터넷 사임 촉구 서명에는 1일 사임 발표 직전까지 5만1500여명의 학자들이 동참하게 됩니다. 결국 독일 정계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구텐베르크 국방장관은 독일지식인들과 인터넷의 위력에 굴복해 사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지식인들의 논문 표절에 대한 인식
 
이번 독일 국방장관 사임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점은 차세대 총리감으로 독일의 가장 사랑받는 정치인이 야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끈질긴 사임 촉구가 아니라 학자들의 문제제기로 인해 국방장관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그의 표절을 증명하고 사임을 촉구하는 서명을 가능하게 했던 인터넷의 위력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학자 출신 정치인이나 정치지망생들이 과거에 쓴 논문의 표절 의혹으로 낙마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논문 표절을 문제 삼았던 것은 학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상대당의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지식인들이나 학자들은 이상하게 침묵을 지켰습니다. 학자들이라면 누구나 경중은 있겠지만 논문 표절로부터 크게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그동안 한국의 학계 관행이 표절 문제에 대해 관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누구든 찾아내려고만 한다면 논문 표절에 대한 무수한 사례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인용 없이 남의 글을 표절하는 것이 남의 생각을 훔치는 중대한 범죄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표절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이루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속에서 표절이 심각한 범죄에 해당되며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철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당사자들의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논문 표절과 같은 문제라면 독일의 경우처럼 해당 전문가들과 관련 업계가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들이 나서서 해결하기 전에 해당 업계에서 자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정치가들이 정적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만 합니다. 부동산정책의 잘못으로 전세 값이 폭등해 전세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전세입주민들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군복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엄마들이 제기해야 합니다.
 
물론 국민들의 요구가 정책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고, 그런 목소리들을 집약해서 정책으로 반영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역할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모든 문제까지 정치인들이 나서서 해주기를 기다리기 전에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당사자들이 먼저 문제제기를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신정아씨가 자신의 자전적 수기에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자신에게 행했던 부적절한 처신을 상세하게 묘사한 부분과 관련해서도. 신 씨의 개인적인 문제제기 또는 정 위원장의 개인적인 자질 문제라고 만으로는 보이지를 않습니다. 신 씨의 고백은 최고의 지성인 집단이라는 교수채용 특히 국립 서울대 교수 채용의 흑막을 들춰 낸것은 아닌가 하기 때문입니다.
 
표절 문제의 해당 당사자들이었던 독일 지식인들의 힘이 야당의 사임촉구를 넘어서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힘 있는 정치인 몇 명 보다 힘 없는 다수 개인들의 힘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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