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落雁)미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날던 기러기 땅으로 떨어지고, 봄은 봄 같지 않았더니

이만균 컬쳐인시흥 | 기사입력 2011/03/30 [05:45]

낙안(落雁)미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날던 기러기 땅으로 떨어지고, 봄은 봄 같지 않았더니

이만균 컬쳐인시흥 | 입력 : 2011/03/30 [05:45]
낙안(落雁), 이 말은 미인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왕소군의 미모와 벅차오르는 슬픔을 달래는 비파 소리가 얼마나 절묘했으면 기러기가 잠시 날개짓을 멈추고 떨어졌을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올봄에 널리 회자되는 말이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비운의 절세 미인 왕소군의 처지를 읊은 것으로 그 내력은 이렇다.
 

왕소군은 양가집 출신으로 기품이 뛰어나고 식견이 높았는데 한나라 원제(元帝)때에 궁녀로 들어왔다. 원제는 화공 모윤수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는데 궁녀들은 서로 잘 보이려고 모윤수에게 뇌물을 주었으나 왕소군은 집안이 가난할 뿐 아니라 굳이 뇌물까지 주어가면서 본래의 모습보다 돋보이게 하고싶지 않았다. 앙심을 품은 화공은 그녀의 얼굴을 평범하게 그리고 점까지 하나 찍어 놓았다.
 
어느날 흉노의 통치자 호한야(呼韓耶)가 원제에게 화친을 청하고 한나라의 공주나 후궁에게 결혼하기를 청한다. 그때 뽑혀 나온 궁녀가 왕소군이다. 원제는 가려져 있던 절세 미인을 더디어 발견하였으나 약속한 바라 하는 수없이 이 궁녀를 호한야에게 따라가게 하는데 그때에 원제가 그녀에게 하사한 이름이 소군(昭君)이다.

왕소군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을 밟으며 바라보니 꽃이며 풀포기가 보이지 않는 삭막한 땅이었다.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구나”(胡地無花草 春來不라似春)라는 심정을 달래며 한편 오랑캐땅에서 외롭게 살아갈 생각에 슬픔이 북받쳐 가슴에 품은 비파로 출새곡(出塞曲-변방을 나서는 노래)을 연주하며 마음을 달랬는데 때마침 하늘을 날던 기러기들이 그녀의 슬픈 노래를 듣고 잠시 날개짓을 멈추고 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에 기러기가 떨어진다는 이 낙안(落雁)이란 낱말을 미인을 지칭할 때 쓰게 된 것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핀다”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김훈의 ‘칼의 노래’의 첫구절이다. 아무리 외로운 섬이라도 그곳에도 꽃은 피고 금년처럼 아무리 꽃샘추위가 드셀지라도 도도한 봄의 발길을 막을 수는 없다. 큰섬 제주에서 유채꽃을 피우고 작은섬 오동도에서는 진작 겨울에 터뜨린 동백꽃이 4월까지 절정을 이룰 것이며, 섬진강에서 매화꽃을 터뜨린 꽃소식은 맑은 새오름의 땅 시흥에 와서 개나리와 진달래의 색신(色神)을 일깨우고 건설영춘(近雪迎春), 봄을 부르는 목련이 툭툭 터지면 꽃이 고픈 우리의 심사를 달래 주겠지. 
    
봄기척은 소리로 먼저 온다는데
 
봄은 꽃소식 소리로 먼저 온다는데, 봄 오기를 바라는 마음 다독이며 청진기를 들고 옥구공원 언덕을 오른다. 잎눈만 뾰족뾰족한 체 서있는 나무 둥치에 청진기를 들이댄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분명 봄 오는 소리는 거기에 있고, 소리로 오는 봄맛은 꽃소식 못지않게 묘미가 있다. 청진기의 힘을 빌릴 것도 없이 들을 수 있는 봄 소리가 또 있다. 그게 개여울 소리다.
 
얼음이 풀리면 개을은 속살을 보이고 개울의 경사가 있어 물 흐름이 빨라지는 곳, 자갈을 스치며 흐르는 물은 여기서 소곤소곤 정겨운 소리를 내며 흐른다. 여울의 소리다. 개천의 여울이라고 해서 개여울이라 하는데 참 아름다운 우리 말이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 파릇한 풀포가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소월의 시인데 한때 어느 여가수가 노래로 불러서 더욱 유명해진 개여울의 시다.
   
봄은 오감의 속살을 헤집어 고운 심성을 일구고
 
봄은 소리로 오더니 그뿐이 아니더라. 봄은 봄볕에 이는 바람이 믿음을 무시하듯 살갗을 자극하며 밉지 않은 정도로 소름을 돋게 하더니, 그리고는 수천년 개나리 진달래의 정겨운 색감에다 상큼한 풋냄새 꽃냄새로도 오더니, 더디어 두견새 욱구우 욱구우 그리운 님 부르다가 애절하게 토해버린 피, 방울 방울 꽃잎으로 피어나면 님 그리운 이들 그 꽃잎 따서 정갈하게 다듬어 두견화 꽃술 빚어 사랑의 심사를 입맛에 적시며 달래려 하던 우리 조상들의 정감이 은은하다.
 
하기야 봄이라고 선인들의 정취에만 매료 될 수 있으랴, 킬로그램에 단돈 100원하는 파지를 서로 빼앗기지 않으려 할머니끼리 밀고 당기다가 달리던 차에 다치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가 하면,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 유례없는 재변이 일어나 세계가 그 고통에 함께 하고 있는데... 그렇다.

하지만 면면히 이어온 우리의 고운 정서마저 쓰나미에 범벅이 되어서는 우리의 아름다운 정체성의 색채를 유지하지 못하리라. 그래서 우리 전래의 고운 감성을, 그 맑은 심성을 함께 나눌 일이다. 그래야 국경도 넘고 인종도 이념도 종교도 뛰어넘어서 고통을 나눌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진정성과 정통성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정서가 우리의 참 정통성이다. 우리 본래의 참 모습이다. 봄을 나누자.


이만균 님은 시흥시니어클럽 생태해설사, 시흥의제21 문화분과위원, 시흥효문화연구회 상임이사 등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더불어 '시인'이기도 하십니다. 글은 컬쳐인시흥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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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runo 2011/03/30 [13:50] 수정 | 삭제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괜히 아는체 하며 한 마디 덧붙입니다.
    낙안 왕소군 이야기에서....
    하나,
    흉노의 호한야가 화친을 청하였다 하셨는데
    당시 한나라는 흉노제국의 제후국이었고
    한의 황제는 반드시 공주를 흉노황실에 볼모로 상납하도록
    계약이 되어있었습니다.
    둘,
    말씀하신 시는 당나라의 동방규가
    순전히 중국입장에서 쓴 시라서
    왕소군이 흉노생활을 싫어했을것이라 전제하고
    쓴 시 입니다.
    왕소군은 외로운 궁녀생활보다 흉노의 황비생활이
    훨씬 행복했을 것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중소기업 비서실 근무하다가
    삼성회장 부인이 된 셈인데 이를 불우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셋,
    동방규의 시 첫 구절
    --胡地無花草 는
    오랑캐땅에는 꽃과 풀이 없구나.......
    로 해석하는게 아니라

    으로 해석하는게 전체 흐름상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