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공개서한'에. 독일국방장관 사퇴

독일 국방장관은 왜 사임했을까, 두 번째 이야기

최재천 변호사 | 기사입력 2011/04/02 [05:10]

인터넷 '공개서한'에. 독일국방장관 사퇴

독일 국방장관은 왜 사임했을까, 두 번째 이야기

최재천 변호사 | 입력 : 2011/04/02 [05:10]
지난 주 박사논문 표절 문제로 사임했던 칼 테오도르 주 구텐베르크(39) 독일 전 국방장관 얘기를 했습니다. 글에 썼던 대로 구텐베르크 국방장관은 메르켈 총리의 전폭적인 신임과 국민들의 높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사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한국의 경우와 같이 반대당의 정치인이나 언론의 압력 때문에 물러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그의 논문에 대한 서평을 쓰려다 표절 사실을 알게 된 브레멘대학의 안드레아스 피셔레스카노 교수였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 ‘구텐플라그 위키’(guttenplag wiki)를 통해 그의 논문에 대한 표절 검증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일간 <벨트>가 주관한 인터넷 사임 촉구 서명에는 1일 사임 발표 직전까지 5만1500여명의 학자들이 동참했습니다.

다른 한편 콘스탄츠 대학교 박사과정 학생들은 메르켈 총리가 구텐베르크를 두둔하며 “연구 조수를 뽑은 것이 아니라 국방부 수장으로 뽑은 것”이라는 말에 분노해 2월 24일 메르켈 총리에게 인터넷을 통한 공개서한을 쓰게 됩니다.
 
이들의 편지가 알려지면서 박사과정 학생들을 중심으로 서명활동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결국 63,713명에 이르는 대학의 박사과정 학생, 박사학위소지자들, 그 외 일반 시민들이 서명을 하게 되고 3월 15일 공개서한은 메르켈 총리에게 전달되게 됩니다. 물론 이들의 편지와 서명은 구텐베르크 국방장관의 사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직함의 가치를 강조
 
이 공개서한에서 박사과정 학생들은 메르켈 총리가 국방장관을 비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독일 사회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표절한 사실이 증거로 드러났음에도 그것을 그저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치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것은 “대규모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사기”라고 말합니다.
 
특히 이 문제가 학문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직한 연구조교들과 박사과정 학생들을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그저 논문에 인용문을 다느냐 마느냐 하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연구 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의 문제라고 쓰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죽기 살기로 주석과 인용에 신경을 쓰고 있고, 이러한 규칙을 어기게 되면 결국 학교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표절 문제로 학교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어떤 다른 기회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이들 학생들은 정직함이나 책임감과 같은 가치는 학문공동체 밖에서도 역시 유효하다고 지적합니다.
 
정직하고 혁신적인 학문이야말로 국가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기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직이 더 이상 독일 사회의 이상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면 우리 독일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 공개서한에서 학생들은 공개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국방장관은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직이라는 가치가 학문 영역 뿐 아니라 독일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가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정직하게 논문의 인용과 주석을 달아 온 박사 후보생들의 작은 목소리는 큰 울림이 되어 강고하게 보였던 국방장관의 사임을 불러왔습니다.

인사청문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대통령이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갖는 인사청문회 제도는 의회중심제를 실시하는 독일에는 없는 제도입니다.
 
인사청문회가 없는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들이나 박사과정 학생들이 나서서 철저히 학문적 관점에서 표절 문제를 주도해 온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제16대 국회가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함으로써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사청문회를 통해 표절문제가 철저히 검증되었을까요?
 
지난 2006년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자기 논문 중복 게재와 제자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져 내정 된지 12일 만에 사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교육부총리 후보의 표절 의혹을 제기해 사퇴를 이끌어냈던 이주호 의원은 이후 자신의 교육부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표절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표절 의혹을 받은 인사는 그 외에도 현인택 통일부 장관, 김성이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백희영 여성부 장관,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노무현 행정부 시절 김병준 전 부총리를 제외하고는 표절 의혹에도 불구하고 모두 임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인사청문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사자인 학자들, 박사과정 학생들이 나서서 학문의 근본이 되고 사회의 근간이 되는 정직함과 책임감의 가치를 살려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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