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고향은 절하는 곳입니다"

'만인의 물결 군산운동본부 발대식' 행사장을 가보니!

조종안 | 기사입력 2011/07/04 [05:50]

고은 시인 "고향은 절하는 곳입니다"

'만인의 물결 군산운동본부 발대식' 행사장을 가보니!

조종안 | 입력 : 2011/07/04 [05:50]
시인 고은(본명: 고은태, 1933년~)의 고향은 전북 군산, 그는 군산이 어머니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군산에 오면 '어머니 진지 드세요.' 같은 원초적인 대화를 하고 싶단다. 학문적인 언어보다 소주 잘 마셨느냐는 인사가 더 듣고 싶다며 시대가 허락했다면 고향에서 살았을 거라고 말한다. 

70년대. 당시 정권은 전국을 떠돌며 통일운동과 민족문학에 몰두하던 고은을 빨갱이로 만들었다. 고향에 내려와 아이에게 "예쁘다!"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간첩이라고 신고하는 바람에 14시간 동안 심문을 받고 풀려났던 것. 세 번째 감옥생활을 하던 80년대 초에는 아버지 제삿날을 기억하고 고향의 아버지 무덤 쪽을 향해 빈 절을 올렸다고. 

이제는 태어나서 18년 동안 살던 용둔리도, 은파도, 째보선창도, 월명산도 시간 속에만 머물러 있을 고은. 그를 제대로 알리고 문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고향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섰다. 지난 1일 닻을 올린 '만인의 물결 군산운동본부 발대식'이 그것.

만인의 물결 행사장 스케치


▲ 만인의 물결 군산운동본부 발대식에 참석한 고은 시인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 조종안


고은의 대표작 '만인보' 정신을 계승하고 널리 홍보하기 위한 '만인의 물결 군산운동본부 발대식'이 '만인보문화재단 준비위원회'(위원장 조시민) 주최로 1일(금) 오후 5시30분 용둔리가 내려다보이는 군산시 나운동 궁전예식장 4층 대연회장에서 열렸다. 

조시민 위원장은 "20세기 한국문학의 위대한 봉우리 고은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소중한 문화 자산으로 계승하여, 창의와 나눔의 정신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지역과 세계가 소통하는 범인류적 문화운동을 전개해 나가겠다며"며 '만인보문화재단'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만인보 문화재단 준비위 산하 '만인의 물결운동 군산본부'(본부장 황현택)가 주관한 이날 발대식에는 고은 시인을 비롯해서 문동신 군산시장, 강봉균 의원(민주당) 및 전국 각지에서 군산을 찾아온 문화 예술계 인사들과 시민 5백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다. 

황현택 본부장은 "군산이 낳은 위대한 작가 고은 선생님께서 획득한 대 문호의 금메달을 영원히 우리의 자랑으로 만들 때가 바로 오늘이라 생각한다."면서 "만인의 운동 물결이 전국은 물론 오대양 육대주로 확산해 나가기 바란다."며 고은 문학이 세계 정상에 오르는 2011년이 되기를 기원했다.

 
▲ 축사 하는 문동신 군산시장.     © 조종안


문동신 군산시장은 축사에서 "세계가 감동한 대서사시 '만인보'를 25년간에 걸쳐 완성한 고은 시인의 문학 정신과 열정적인 예술혼에 경의를 표하며 자긍심을 갖게 된다."며 "물결운동은 범인류적 문화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문 시장은 이어 "군산은 세계 최장의 새만금 방조제(33.9km)와 고군산군도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갖춘 기회와 희망의 도시"라며 "모두가 시민의 노력한 결과로 '만인의 물결운동' 역시 성원이 꼭 필요하다."며 시민의 협조와 참여를 당부했다. 

강봉균 의원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스지 보도를 예로 들었다. 타임스지가 군산이 낳은 고은 시인을 현존하는 한반도의 가당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했다는 것. 그는 '만인보'는 우리 민족의 다양한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세계 최대 인물 대서사시'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강 의원은 만인의 물결운동 본부 출범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추진되는 민간주도 문화 사업이라는데 의미를 부여했다. 강 의원은 "이러한 운동은 고은 시인의 작품 세계와 인물에 대한 재조명, 생가 복원, 문학관 건립 등으로 가는 출발점"이라며 노벨평화상 수상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가을에 개최하는 '만인보 전국 백일장대회' 실행위원장을 맡은 군산 문인협회 김정수(55세) 사무국장은 군부독재 시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대변해온 고은 선생님을 위해 일하게 되어 보람과 책임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국장은 "고은 선생님은 고향의 후배 문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동시에 받고 있다"면서 좋아하는 책은 만인보이지만, 화엄경은 소설을 쓰는 문인들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며 서양에 성경이 있으면 동양에는 화엄경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고향은 조상을 기억하고 상상하면서 절하는 곳입니다···."

축하공연 시간에는 조상훈 외 7명의 사물놀이(동남풍), 김정수, 박순옥의 시낭송, 국악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피아노 연주가 이어졌고, 고은 시인이 노랫말을 쓴 <세노야>를 합창하는 것으로 행사를 모두 마쳤다. 

 
▲ 고은 시인은 존경하는 스승이고 부모 같기도 하다며 인연을 설명하는 임동창 피아니스트.     © 조종안

자신이 작사 작곡한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전북 오페라 단원들과 함께 공연을 마친 임동창 피아니스트는 "사실은 조시민 위원장이 만인보 오페라 작곡을 의뢰했을 때 좋은 작품인 줄 알면서도 거절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라고 해서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 흐뭇한 표정으로 사물놀이와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는 고은 시인(우)과 조시민 위원장(좌)     © 조종안



고은 시인은 사물놀이와 피아노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박자를 맞추면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도. 행사를 마치고 꽃다발을 받은 고은 시인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향은 절하는 곳입니다. 조상을 기억하고 먼 조상을 상상하면서 그분들에게 절하는 곳이지요. 조상이 묻힌 땅이요. 그 조상들의 피를 이은 나 자신이 때로는 뜨기도 하고···. 고향은 인간에게 가장 경건한 진리와 배려를 바치는 곳입니다. 고향에서는 아무리 많은 세월을 산 고령자일지라도 한낱 어린애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요." (생략) 

고은 시인은 고향 분들의 과분한 정성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인사를 마치면서 조시민 위원장과 임동창 피아니스트를 번갈아 바라보며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지긋이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서 한없는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펜 사인회를 준비하며 고향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시간 속에 고향이 들어 있는 사람도 있던데 저는 1년에 몇 번씩은 고향(군산)에 내려오고, 음식은 어렸을 때 먹던 생선국을 제일 좋아합니다."라고 답했다. 고은 시인은 시원한 '물메기탕'을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 고향 군산은

-고은

내 고향 군산은
한밤중에도 뱃고동소리가 들립니다.


내 고향 군산은
뱃고동 소리 들으며 아이들이 돛대처럼 자랍니다.


내 고향 군산은
언제나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개 걷히우며 돌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슴 설레어 


 

내 고향 군산은
바람 부는 항구입니다.
먼 나라의 깃발들
여기 와 하루 내내 휘날리고 있습니다.

 
아,
내 고향 군산은
오래오래 바다의 시작입니다.

 
2001년 <군산문학> 17집에서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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