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꽃향'과 '누리장꽃향' 가득했던 '청량산'

[살며 사랑하며]'퇴계 이황' 반했다는 '청량산' 그 자태는 어떨까?

박종남 기자 | 기사입력 2011/09/09 [05:01]

'칡꽃향'과 '누리장꽃향' 가득했던 '청량산'

[살며 사랑하며]'퇴계 이황' 반했다는 '청량산' 그 자태는 어떨까?

박종남 기자 | 입력 : 2011/09/09 [05:01]
퇴계 이황이 사랑한 산. 봉우리마다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녀 감탄을 자아내는 산. 경북 봉화군에 있는 도립공원 청량산이다. 초행은 아니었다. 소싯적부터 자주 가던 곳이었다. 하지만 늘 입구 언저리에서 놀다 오거나  지나치면서 그 외형을 구경했을 뿐이었다.
 
벌초를 나선 길에 근처에 있고 하니 산행을 하겠다는 남편을 따르기로 했다. 두 번이나 청량사까지만 오르고 하산을 했었고 근자에 하늘다리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도 구경을 못해 그 결단이 빨랐다.

그러나 준비는 미흡했다. 고작 등산화 챙기는 것만 간신히 하고 새벽3시 반에 집을 나섰다. 한산한 고속도로를 달려 봉화에 도착. 친정에 들러 엄마가 해주는 아침밥을 맛나게 먹고 물 한통 담아 산을 향했다.


▲ 진입로 옆으로 나란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 종나미

휴가철이 끝나기도 했지만 늘 보는 것처럼 한산하고 여유로운 청량산 입구. 계곡물이 너무 맑아서 절로 눈길이 갔지만 계곡에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안내도를 보니 제일 긴 코스가 다섯 시간이었다. 청량산 등산 경험이 두 차례 있는 남편의 말을 듣고 가볍게 그 첫걸음을 열었다.

 
▲ 뒤돌아 보아도 꼬불꼬불 경사가 가파른 등산로     © 종나미

초반부터 오르막이 기운을 뺐다. 끝없는 계단이 꼬불꼬불 이어지고 있었다. 다리는 아팠지만 오르막의 절정에만 도달하면 절경이 눈앞으로 펼쳐졌다. 건너편 능선이 산성과 함께 한 눈에 들어오고 차를 따라 들어왔던 입구부터 이어진 계곡길이 산골짜기 사이로 드러난다. 산을 오르는 이유가 바로 이런 맛인가 보다 싶다. 큰 바위 위에 서서 앞으로 가는 길에 나타나는 응진전을 건너다보는 풍경도 너무 멋스럽다.

▲ 청량산 품에 안긴 청량사     © 종나미


▲ 큰암석 아래 자리한  응진전 과 무위당   © 종나미
▲ 급경사를 오른 뒤 굽어보는 청량산 어귀 골짜기     © 종나미

산 중턱 응진전 주변의 야생화와 목화밭이 발길을 오래 붙잡기도 했다. 응진전 풍경 너머로 보이는 절벽.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모두가 그림이다. 퇴계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다 싶다. 많은 시인들이 소금강이라 부를만하다.
 
명필인 김생이 공부를 했다는 김생 굴을 들렀다가 경일봉을 거쳐 자소봉에 오르니 어느새 점심시간인가 보다. 산악회에서 온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배는 분명 고프지 않았는데 음식 냄새가 나니 괜히 시장기가 돌았다. 자소봉에서 내려와 탁필봉으로 이동했다.


▲ 경일봉에서 건너다 본 자소봉과 탁필봉     © 종나미
▲ 오르내림이 빈번한 계단들이 반복되는 능선     © 종나미

다른 산과 다른 점이 능선을 타는 것이 아니라 봉우리마다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해야 했다. 그것도 엄청 가파른 계단을 통하여. 가방을 뒤져서 과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봉우리를 사이로 구름다리가 눈에 들어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참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눈에 보이니 반갑기도 했고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떠나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다. 하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푸 나오고 깎아지른 듯한 가파름에 다리마저 후들거리니 생각이 달라졌다.


▲ 해발 800m에 설치된 하늘다리     © 종나미
▲ 다리에서 바라 보는 주변 봉우리     © 종나미

해발 800m 상공에 설치된 구름다리. 현수교였다. 멀리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봉우리를 연결했으니 다리 밑은 한참이나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다. 잘 건너는 아이들에 비해 겁먹은 아줌마들이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도 생겨났다. 다리 중간에서 바라보는 주변 산세도 두려움을 잊게 했다.

다리를 건너 최고봉인 장인봉 가는길. 안내판에 의하면 거리도 짧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시작된 등산로는 영 아니었다. 이어지는 계단과 계단. 오분이라는 안내판의 숫자는 산악인마라톤 선수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절대 불가능했다. 그래도 마지막이라니 최고봉이라니 모든 것이 잘 참아졌다. 잠시 운동을 게을리 했지만 나름 산악인이고 도보라면 자신이 있다고 자부했으니  묵묵히 인내해야 했다.

▲ 청량산의 최고봉 장인봉의 정상     © 종나미

 
드디어 장인봉 정상. 임시 등산로를 타고 내려올까 고민하다가 정확한 코스를 몰라 그냥 되돌아서 원 1코스대로 타기로 했다. 또 다시 내리막이 가파르다. 어찌된 것이 완만함이란 모르는 산이다. 처박힐 듯 아슬아슬 내리막을 타니 다리가 오히려 오르는 것보다 힘들어한다. 숲의 터널을 지나고 끊임없는 계단을 지나고 나니 칡꽃 향과 누리장 꽃 향 가득한 길이 이어진다.


▲ 하산 길에 만난 질긴 생명력     © 종나미
▲ 노파심을 불러 일으키는 산 중턱의 마을     © 종나미
▲ 무거운 짐을 옮기는 수단이 되어주는 도드레     © 종나미

계단을 타고 내려오다 고개를 드니 마을이 나타났다. 아직도 중턱이었다. 집은 네 채가 보였는데 두 집이 살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특이하게도 입구에 짐을 나르는 도드레가 줄과 함께 보였다. 눈이 오면 세상과 단절 되지 않을까하는 노파심을 잠시 가졌다.
 
날마다 세상과 소통하고 사는 것만 삶의 방식이 아닐 터지만 괜한 나의 걱정은 도를 넘어선다. 일찍부터 바닥난 물통. 갈증으로 더 힘들고 지친 몸. 인심 좋은 주민에게 물을 얻으니 시든 잎에 생기 돋듯 몸도 마음도 되살아났다. 조금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나머지 길을 내려왔다.


▲ 마을을 지키던 노거수와 빈집     © 종나미
▲ 청량폭포의 물줄기     © 종나미

폐가가 생겨난 주변으로 노거수 느티나무가 포진해 있다. 마을이 예전에는 어느 정도 컸을 것 같다. 청량폭포를 건너다보며 나머지 길을 마저 내려오니 배고픔도 사라졌다. 갈증 해소가 덤으로 배고픔도 재웠나보다. 여유가 생기니 임시코스를 타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입구에서 다음에는 어떤 긴 코스를 타야하나 만용을 부려보면서 청량산 등산을 마쳤다. 가볍게 도전한 탓인지 아니면 정말 가파른 계단의 오르내림 때문인지 난생 처음으로 종아리에 알이 생겼다. 하루는 그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불편했다. 그래도 또 가리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정말 아름다운 산이다.
 
 
이 기사는 <컬쳐인시흥>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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