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과 '노찾사' and 문화카페 '모두나'

노찾사 출신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노래 통한 '나눔과 소통' 꿈꾼다

육성철 | 기사입력 2011/09/23 [05:58]

전두환과 '노찾사' and 문화카페 '모두나'

노찾사 출신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노래 통한 '나눔과 소통' 꿈꾼다

육성철 | 입력 : 2011/09/23 [05:58]
1984년. 한국대중음악사에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이른바 운동권 민중가요로 불렸던 노래들이 음반으로 제작된 것이다. 김민기 씨와 대학가 노래패가 의기투합해 만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 1집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앨범은 음반사가 전두환 군사정권을 두려워한 나머지 1989년 이후에나 대중들에게 배포된다.

▲ '노래를 찾는 사람들'정기 공연모습. '노찾사'는 1987년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첫번째 정기공연을 가졌다     © 노찾사 공식홈페이지


노찾사 1집은 삼엄한 검열을 통과한 곡들로 채워졌다. <산하> <갈 수 없는 고향>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 <그루터기> <기도> 등이 그것이다. 군사정권을 직접 겨냥한 노래들은 아예 심의를 넘어설 수 없었기에 서정성이 풍부한 곡들이 우선 제도권으로 들어온 셈이다.

나는 노찾사 1집에서 <산하>와 <갈 수 없는 고향>을 특히 좋아했다. 공교롭게도 그 노래를 부른 김제섭 씨와 박미선 씨는 부부가 되었고 지금 안양에서 문화카페 ‘모두나’를 운영한다. 두 사람은 대학 노래패에서 만나 노동현장을 찾아다니며 노래를 불렀고 직접 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김제섭 씨는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출신으로 노래운동 1세대다. 그가 1980년대 초에 만든 노래는 독특한 색깔을 보여주는데 뒷날 가수 안치환이 만든 ‘노스탤지어’ 음반에 실린 <겨울 거리에서>와 <하얀 비행기>가 대표적이다.

‘엄마가 하늘 보고 한숨 쉬면 아빠는 멀리 가시곤 했네. 나는야 뚝 길 따라 풀잎 씹으며 날리는 하얀 비행기. 아빠가 떠나신지 며칠 후로 엄마는 일만하시네. 나는야 담장 넘어 꿈을 꾸는 새빨간 고추잠자리’(‘하얀 비행기’에서)

노찾사 출신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답게 ‘모두나’에서는 노래가 흐른다. 통키타 반주에 생음악으로 부르는 노래는 감성을 자극하고 정신을 일깨운다. 사람들은 노래를 통해 고민을 털어내고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이런 모습을 두고 김제섭 씨와 박미선 씨는 ‘노래를 통한 나눔과 소통’이라고 말한다. 상처받은 누군가에게 노래는 ‘약’이 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 박미선. 김제섭 부부    © 육성철   


김씨와 박씨는 한때 운동권 가수였지만 지금은 대중음악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민중가요의 진지함을 여전히 높이 평가하지만 사람의 느낌을 보다 잘 드러내는 건 아무래도 대중음악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모두나’에서 취객들과 얘기하고 노래하면서 대중가요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김제섭 씨가 최근 새로 만든 노래들은 옛 노래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김씨는 이따금씩 손님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손님들은 노래에 취해 새벽까지 자리를 뜨지 못한다.

‘조용한 밤이 오면 떨어지는 빗소리에 내 마음도 조용히 가라앉을 것 같아. 하지만 오늘밤은 내 마음이 이토록 새로움에 목마른 느낌일까. 오늘밤에 외로움에 길든 나를 또 다른 내가 와서 가득찬 느낌을 주었지.’(‘새로운 밤’에서)

김씨와 박씨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주기 위해 ‘모두나’를 운영한다. 7년 6개월 동안 변변히 수익을 내지 못했으면서도 꿋꿋하게 ‘모두나’를 끌고 가는 이유다. 단 한사람이라도 ‘모두나’를 통해 충분히 쉬고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그들이다.

어쩌면 경쟁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그들의 방식처럼 ‘치열하지 않은’ 술집은 살아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본주의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열정과 신념이 있다. 자본주의가 아무리 효율적이라 해도 사랑을 너무나 쉽게 잃어버리는 시스템이라고 믿는 그들 이기에 ‘모두나’의 노래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듯하다. 그 노래를 오랫동안 듣고 싶다.


이 글은 <안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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