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득이' 촬영 다음날 사기꾼이 나타나서는....

촬영장소 성남 수정구 '지명교회' 목사님은 동네 119 파수꾼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11/10/12 [05:48]

영화 '완득이' 촬영 다음날 사기꾼이 나타나서는....

촬영장소 성남 수정구 '지명교회' 목사님은 동네 119 파수꾼

추광규 기자 | 입력 : 2011/10/12 [05:48]
[편집부 주] 이 기사는 지난 4월 취재된 내용입니다.
 
성남시 달동네 높은 언덕을 몇 개를 지나 힘겹게 올라가노라니 주택가 골목에는 저 멀리 성남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배기에 아담한 교회가 있다. 자그마한 주택 한 동과 조립식 건물이 나란히 붙여서 지어진 작은 교회다.
 
▲지명교회 입구     © 추광규
교회 앞에는 잘가꾼 정원이 펼쳐져 있다(?). 정확히는 교회 앞에 크고 작은 화분들이 줄지어 서있었기 때문. 화분에다 심어 놓은 각종 꽃들이 4월 중순 아직은 차가운 바깥 온도 속에서도 그 싱싱함을 자랑하고 있다.
 
교회 안으로 한발 들어섰다. 교회안 곳곳에도 각종 화분들이 그 싱싱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조화인가 하고 만져보니 싱싱함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살아있는 생화 였다. 꽃들을 그토록 싱싱하게 살핀 분은 다름 아닌 백미선 사모님.
 
사모님은 벤자민 화분의 경우 창립예배때 들어온 화분이었는데 16년 동안이나 가꾸어 오셨단다. 지역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소문난 그 이유에는 바로 사모님의 이 같은 세심한 보살핌도 한몫 하지 않았는가 생각 했다.
 
본당을 둘러보았다. 본당안의 모습은 마치 50년대로 되돌아 간듯 하다. 100여명이 예배를 간신히 드릴 수 있음직한 작은 본당.
 
또 본당 뒤에서는 작은 사랑방으로 곧장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쪽문이 있다. 작은 다탁하나. 공간은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이곳을 가꾼 분들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지는 듯하다.
 
예배를 드린 교인들이 함께 모여 다과를 즐기거나 손님이 왔을 때 맞아 들이는 작은 공간에 앉은 후 인터뷰 준비를 마쳤는데도 당초 11시에 인터뷰를 하시기로 한 목사님은 안 보이신다. 사모님이 미안하신 듯 30분쯤 늦을 것 같다고 말하신다.
 
"같은 동네에 사시는 분이 계시는데 병이 깊어 보여서 목사님이 큰 병원에 가보시라고 몇 번이나 말씀 드려도 안가시다가 오늘 아침에 갑자기 전화로 병원에 가겠다고 말해 목사님이 병원에 모셔다 드리느랴고 늦는다고....."
 
목사님은 약속시간을 30분이나 넘어서 교회에 들어서신다. 첫 인상은 시골 농부 같은 인상. 양복을 입지 않으셨다면 어디 논에서나 일하시다가 왔음직하다. 교회를 창립한지 16년째란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하며 낮은 곳에서의 목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오영섭 목사.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하게만 들린다. 사모님이 내온 인삼차에 푹 빠져들면서 오 목사님이 개척해온 지난 16년간의 지명교회 역사를 들어보았다.
 
-'지명교회' 교회 이름으로는 상당히 독특한데요 어떤 의미가 있는가요?
"교회를 개척하면서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를 고민했었습니다. 기도로 간구했었지요. 새벽 예배때 기도를 드리는데. 이사야 46장 말씀이 음성으로 들리더군요. 그래서 성경책을 펼쳐 보았는데도 교회 이름은 없는 겁니다. 다만 이사야 43장 1절 말씀에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 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그렇게 며칠 동안을 교회 이름을 간구하는데 또 다시 하나님이 또 이사야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때서야 아 맞아 하나님이 일일이 손가락으로 지목해 명령 하시는 것이니 손가락 지자에 명령 명자를 하나님의 뜻으로 삼으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는 '지명교회'로 지었답니다."  
 
 
▲ 지명교회보다 더 크게 써붙여져 있는 '한마음 사랑방'은 영화 완득이 촬영팀이 소품으로 붙여 놓은 것이다.     © 추광규


 
-목사님으로 부르심을 받는 과정에서 많은 고난이 있으셨다고 하는데요.
"저희 부부는 원래 요 밑에 있는 세광교회를 13년을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요나'처럼 주의 길을 안 가려고 도망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를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 양복점을 하면서 집사 직분으로 교회에 출석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저에게 목회자의 길을 권했습니다. '오집사! 신학을 해야 한다'며 기도 하시는 분들은 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때 마다 '그게 쉬운 일이냐', '감당을 못한다'면서 '제가 어떻게 그 길을 가느냐'고 완강히 거부 했었지요.
 
양복점은 손님은 많은 것 같은데 장사는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 광주에 형님이 계시는데 생활을 책임 질 테니 내려오라고 해서 내려갔지만 처음 말과는 달라 어렵게 9개월 동안을 생활을 했답니다. 거기에 더해 내려간 지 5일 만에 당시 세살이던 둘째 딸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었지요.
 
하지만 당시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입술로 서운하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원망도 할법 하지만 떼도 쓰고 불평도 할 만한데 제 입술에서는 한 번도 '하나님 왜 그랬어요'라는 말은 안 나왔습니다. 저는 지금도 성도들한테 '입술에서 감사라는 말이 안 나오면 주먹으로 찧어서라도 감사라는 말이 나오도록 하라'고 전합니다.
 
저희 부부는 기도원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지요. 저희의 불순종을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서야 광주 생활을 접고 다시 성남으로 올라 와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이곳이지요. 방 1칸으로 이사 왔었답니다." 
 
-교회를 개척하시면서 고생이 많으셨다는데.

"올라왔을 무렵 저희 사모는 막내 낳고 9개월 동안을 산후풍으로 크게 앓아누웠답니다. 숟가락 하나도 못들 정도였습니다. 9개월 동안 다들 죽었다고 할 정도로 심하게 앓았는데 사모는 하나님에게 마지막으로 기도했었다고 합니다. 
 
▲지명교회는 가파른 언덕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었다.     © 추광규
'새벽 2시에 아이들이 줄줄이 누워 있는데 나는 지금 천국에 가면 좋은데 집사님(당시에는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기 전이었음)도 새로 좋은 사람 만나서 산다고 해도 자녀들은 어떻게 하느냐.
 
굼벵이처럼 꿈틀 거리면서 얘들 얼굴 있는데로 다가가 얼굴을 부비면서 제게 사명이 있다면 생명을 살려 달라. 사명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데려 가달라'고 기도했다는 겁니다.
 
사모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이날 밤 내내 '한숨도 못자면서 마지막 기도를 드렸는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셨는지 사모는 그날을 기점으로 조금씩 몸이 괜찮아 졌답니다. 또 이날을 시작으로 저는 목회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사모가 몸을 어느 정도 추스른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서울신학대로 가서 입학원서를  사왔더군요.
 
사모가 서울신학대학을 원서를 사러 갔는데 학장님하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사연이 있더군요. 아기를 업은 초라한 아줌마가 원서를 사니까 궁금했던지 학장님이 사모에게 누구 원서를 사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모는 말을 건네는 그분이 학장님인줄을 몰랐었지요. 그래서 사모가 '남편을 목회자의 길로 걷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자 그 분께서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더니 학장님실로 들어가더랍니다.
 
자리에 앉으니 자신을 학장이라고 소개하면서 약속을 한 가지 하자고 말하더랍니다. 그래 얼떨결에 약속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학업을 마칠 때 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손가락을 걸고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자 제 개인과의 약속이도 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성경공부부터 시작으로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처음 성남 성경신학원부터 시작해 9년을 공부했습니다. 한 푼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목회자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모가 남편이 목회자의 길을 걷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겠다고 약속한 바와 같이 첫째는 하나님과의 약속이고 학장님과의 약속이어서 단 한 번도 학교를 결석한 적이 없었습니다.
 
신학공부를 하면서 이 집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 집은 당초 신앙생활을 같이 하던 여 전도사님의 집이었습니다. 기도가 쌓인 곳이라서 욕심이 생겼지요. 하나님께 이 집을 저희에게 허락해 주시라고 기도 했었습니다. 이 집에서 사시던 전도사님은 돌아가시고 그 방으로 이사 왔던 것입니다.
 
항상 기도했습니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이기에 믿지 않는 분은 욕심을 절대 안내겠지만, 전도사님이 하나님에게 기도했던 집이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께 이 집을 저희에게 주시면 안 되실까요'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이 집을 주인이 판다고 하기에 돈 한 푼 없을 때였는데도 그 주인에게 팔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말한 후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역사 하시더군요. 광주에 계시는 형님이 혹시 돈이 필요하냐고 먼저 전화가 오기도 했었고 융자도 조금 받구요.
 
사람들은 '움막인데 목회가 되겠느냐', '도로 쪽으로 나가라'고 말씀을 하더군요. 하지만 저희는 이 집을 주신 것은 편안하게 살라고 한게 아니라. 이 집에서부터 시작하라고 하신 것으로 믿고 아들 둘은 가까운 교회의 주일학교로 보내고 저희 부부와 딸 하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기도의 집을 일구어 왔답니다.
 
교회는 벽만 양쪽으로 남겨놓고 완전히 만들었답니다. 지붕갓을 씌운다고 용접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요령만 듣고 저 혼자서 다했답니다. 전기용접을 할때는 보안경을 쓰고 해야 하는 것을 모르고 용접 작업을 하고서는 화상으로 한동안 고생하기도 했답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이 건축하신 것 못지않게 눈물로 공사를 했습니다. 공사 할 때도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공사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한 후, 100만원 주시고 300만원도 주시곤 해서 지을 수 있었답니다.
 
당시 청계산 기도회를 매일같이 쫒아 다녔었는데 너무 너무 절실하니까. 눈이 수북수북 쌓여 있는 곳에서도 무릎 꿇고 몇 시간씩 기도해도 추운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솔직하게 그렇게 기도를 못하잖아요. 그때로 돌아가야 하는데 점점 나태해져 가는 제 자신을 자주 경계 한답니다." 
 
-영화 '완득이' 촬영장소로 지명교회에서 촬영이 이루어 졌다는 데요.

"영화 촬영은 지난 2월 3월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답니다. 잘 알다시피 영화 촬영이라는 게 밤과 낮이 따로 없는데요 이 좁은 골목에 영화 스텝들이 꽉 들어차 심야에 조명을 켜 놓은 채 영화 촬영을 진행 했어도 이웃 주민들분중 그 어느 분도 불만을 말씀하지 않으셨답니다. 제가 만약 사역이 부실했었다면 그런 기회에 많은 불만이 터져 나왔겠지요. (웃음)
 
영화 '완득이'는 지난 2007년 창비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고 연극으로도 공연된 바 있는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한 작품이랍니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주먹질이 일상인 된 고등학생 완득이가 사사건건 간섭하는 막무가내 담임교사 동주를 만나면서 변해가는 성장기를 담은 따뜻한 영화로 이한 감독이 연출을 맡아 배우 김윤석 유아인 박효주 등이 출연 한답니다. 이 영화에 저희 교회가 영화 촬영 장소로 사용 되었는데요, 4월말에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예정이고 영화 '완득이'는 올해 하반기 개봉예정이라고 하더군요." 
 
 
▲ 교회 바로 앞에 있는 집에 영화 '완득이' 촬영팀이 그려 놓은 완득이 이미지 벽화     © 편집부

  
-영화 촬영하신 다음에 사기꾼도 나타났다면서요.
"예, (한동안 웃음) 제가 처음으로 유명세를 탔던 것 같은데요. 지난 3월 마지막 주 오후 주일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을 나서는데 문 양쪽에 쌀 40kg 포대 3개가 놓여 있었답니다. 무슨 쌀이지 하면서 좌우를 살펴보는데 70대 이지만 건장하게 생기신 분이 K일보 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는 빨간색 모자를 쓰신 채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계시더군요.
 
그 분이 전화를 끝내시면서 저에게 목사님이시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네. 제가 오영섭 목사입니다.'라고 말하니 그분이 자기는 성남시 K일보 지국장이면서 쌀가게를 같이 하고 있는데 주문이 와서 배달을 왔는데 배달 시키신 분이 전화를 안 받는다고요.
 
그러면서 6만원에 싸게 줄 테니 사라고 말하더군요. 처음에는 안사겠다고 그랬는데, 다시 싣고 가는 것도 안 되어 보이기에 나이 드신 분이 여기까지 가지고 오셨는데 사드리자고 사모에게 말하고는 처음에 10만원을 먼저 건네 드렸습니다.
 
모자라는 8만원은 권사님이 가방에서 돈을 꺼내 세고 있는데 마침 전화가 오더군요. 사모가 전화를 받았는데, 저 위에 가게 분이었답니다. 그분께서 '지명교회에서 봉사 한다고 쌀을 가지고 갔는데 돈을 안가지고 온다'고 말하더랍니다. 
 
눈치를 챈 저희 사모가 곧 바로 집사님에게 먼저 돈을 뺏으라고 말씀 하시고 시간을 끄는 동안 조금 있으니까 가게 주인이 쫒아 왔습니다. '아저씨! 여기 봉사 한다면서 쌀을 가져갔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따져 묻자 그 남자는 '여기서 돈을 받아 가면 될 것 아니냐'며 가게 주인에게 오히려 큰소리로 호통 치듯 말하고는 타고 왔던 오토바이로 곧장 줄행랑을 치시더군요."   
 
-마지막으로 작은 교회의 보람은 무엇인가요.
"이웃이 아프다면 동네 앰뷸런스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 교회 나오라면 안 나오는데 급한 일만 있으면 전화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마다 저는 비상 깜박이를 켜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큰 교회와 달리 작은 교회는 이웃과 소통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이 저 같이 작은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의 보람이자 사명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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