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金' 나라 세운 아골타는 신라의 후예!

금나라 왕자 김을출의 후손들이 감숙성에 살고있는 이유는?

역사복원신문 | 기사입력 2011/10/16 [05:22]

중국 '金' 나라 세운 아골타는 신라의 후예!

금나라 왕자 김을출의 후손들이 감숙성에 살고있는 이유는?

역사복원신문 | 입력 : 2011/10/16 [05:22]
아골타는 여진족으로 1115년 금(金)나라를 세운 금태조 이고, 누루하치는 또한 여진족으로 후금(後金) 즉 청나라를 세운 청태조이다. 과연 이들은 우리 민족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1100년대 중국 송나라는 북방민족인 거란이 세운 요나라와 대립하고 있었고, 당시 여진족은 거란족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1114년 1만의 여진족이 요나라 10만 대군을 출하점(出河店)에서 대파하고, 1115년 아골타는 곧바로 금나라를 건국하고 황제가 된다. 

1125년 요나라를 멸망시킨 금나라 아골타는 황하를 건너 한족인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開封)으로 쳐들어갔다. 놀란 송 황제 휘종은 화친을 제의하지만 끝내 수도 카이펑은 1127년 금나라 군대에 점령당한다.
 
이것이 중국 한족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인 정강의 변(靖康之變)으로, 송나라의 휘종과 흠종 부자는 포로가 되어 금태조 아골타 앞에 무릎을 꿇리는 치욕을 당하게 된다. 

한족의 심장부를 점령한 아골타는 금을 건국한 후 황실의 성을 완안씨로 정한다. 금태조 아골타(1068-1123)의 정식 이름은 완안 아골타(完顔 阿骨打)다. 송을 정벌할 때 금나라 군부의 핵심인물은 아골타의 네째 아들 완안 올출이었는데 후손들은 김올출이라 부르고 있다. 

중국 서부 깊숙한 곳 감숙성의 경안현엔 뜻밖에도 완안 성씨의 여진족들이 동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직계 조상이 금태조 아골타의 네째 아들인 완안올출 즉 김올출이라 했다. 왜 금나라 황족의 후손들이 만주와 정반대의 땅인 이곳에서 살고 있을까? 이들은 1140년대에 김올출 즉 완안 올출의 아들이 금황실 내부 정쟁에 휘말려 살해되자 이곳으로 탈출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강화도 마니산 개천각에는 스물 네 분의 우리나라 위인들이 모셔져 있다. 환웅천제, 치우천황, 단군왕검, 고주몽, 대조영...등을 모시고 봄.가을 두 번 제사를 지낸다. 그런데 이곳엔 금태조 아골타(대성무원황제)가 모셔져 있다. 구한말 역사학자이자 민족주의자였던 박은식(1859~1925) 선생은 금태조 아골타를 꿈에서 만났다는 몽배금태조’란 글에서 대금국 태조 황제는 우리 평주 사람(大金國太祖皇帝는 我平州人)…이라 적었다. 


[편집자 주]

요나라를 세운 거란족은 본시 요택(遼澤)에 살던 민족이었다. 요택은 지금의 하남성 정주(鄭州)를 지나는 황하북부와 심수 사이에 형성된 습지대로, 수양제가 고구려를 칠 때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영제거라는 운하를 건설했던 곳이며 당태종 이세민은 흙다리를 만들어 건넜던 곳이다. 아래 싸이트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www.historynews.kr/sub_read.html?uid=97&section=sc7&section2

고구려의 뒤를 이어 대조영이 건국한 대진국(발해)은 요나라에 의해 망하게 된다. 대진국의 수도는 황하북부 하남성의 동부와 산동성의 경계에 있던 큰 내륙호수인 발해(=대야택) 부근이며 동만주 일대까지 광활한 구천리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대진국의 멸망은 요나라의 기습에 의한 것으로, 요나라와 대진국의 수도가 가깝게 있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백두산 폭발이 발해의 멸망 원인이라는 말은 아무 근거 없는 왜곡인 것이다.
http://www.historynews.kr/sub_read.html?uid=150&section=sc7&section2

요나라는 대진국의 광활했던 통치강역을 접수하였고, 여진족은 그러한 대진국의 옛 땅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웅 아골타가 나타나면서 힘을 키워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차지하였으며, 하남성에 있던 송나라를 공격해 휘종과 흠종 두 황제를 사로잡는 쾌거를 이룬다. 이를 역사에서는 북송(北宋) 시대의 마지막이라 하고, 송나라의 황족들은 남쪽으로 내려가 남송(南宋)을 세우게 된다. 

금태조 아골타의 넷째 아들인 김을출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감숙성은 옛 고구려 땅이었으며 요나라 또는 대진국의 땅이었다가 금나라 땅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김을출의 후손들이 아직도 살고 있는 것이다. 즉 금나라의 영토가 만주 일대뿐이라는 것은 중국의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의 산물인 것이다.  

강화도 마니산 개천각에 단군의 후손인 금태조 아골타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사실을 대한민국 국민들이 잘 모르는 이유는 소중화를 표방하며 명나라의 속국이었던 조선왕조의 학자들이 대진국(발해)과 요, 금, 원의 역사를 북방 오랑캐의 역사라는 이유로 우리 역사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박은식선생은 금태조 아골타는 평주인(平州人)이라 하였는데, 고대 평주는 바로 산서성 남부였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평주(平州)를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나타난다.

晋分幽州置,治昌黎,(진때 유주에서 갈라짐, 창려에 치소)
前燕置,治襄平 (전연때 양평에 치소)
后燕置,初治龙城,后治平郭,(후연때 초기에 용성, 후기에 평곽에 치소)
前秦置 治和龙,后魏置 治肥如,(전진때 화룡에 후위때 비여에 치소)
隋置,唐因之,亦曰北平郡,元改为兴平府,治卢龙 (수.당때 구북평군으로 원때 영평부로 바꾸고, 노룡에 치소) 

유주, 양평, 비여, 북평군, 노룡 등의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평주는 유주(幽州)의 요서군(遼西郡) 일대 즉 산서성 최남부 운성시 서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참고로 북평군(산서성 최남단 황하변)은 요서군의 바로 옆으로 행정구역의 일부가 서로 왔다리 갔다리 한다. 다음은 <한서지리지>에서 유주의 요서군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辽西郡 요서군) 秦置。有小水四十八,并行三千四十六里。属幽州(유주)。户七万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万二千三百二十五。县十四:且虑,有高庙。莽曰鉏虑。海阳,龙鲜水东入封大水。封大水,缓虚水皆南入海。有盐官。新安平。夷水东入塞外。柳城,马首山在西南。参柳水北入海。西部都尉治。令支,有孤竹城(고죽성=노룡)。莽曰令氏亭。肥如(비여),玄水东入濡水。濡水南入海阳。又有卢水,南入玄。莽曰肥而。宾从,莽曰勉武。交黎,渝水首受塞外,南入海。东部都尉治。莽曰禽虏。阳乐,狐苏,唐就水至徒河入海。徒河,莽曰河福。文成,莽曰言虏。临渝,渝水首受白狼,东入塞外,又有侯水,北入渝。莽曰冯德。cb63。下官水南入海。又有揭石水、宾水,皆南入官。莽曰选武。
 

▲ 평주는 요서군으로 산서성 남부지역                                                      © 역사복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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