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53cm 그들 만나는 겨울 다시왔다

“쇠기러기가 날다가 너 스킨로션 향 때문에 내려앉겠다!”

이승은 생태지평 DMZ보전연구팀 연구원 | 기사입력 2011/11/30 [05:09]

키 153cm 그들 만나는 겨울 다시왔다

“쇠기러기가 날다가 너 스킨로션 향 때문에 내려앉겠다!”

이승은 생태지평 DMZ보전연구팀 연구원 | 입력 : 2011/11/30 [05:09]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그들을 만나러 갔다. 키 153cm. 최고 수명 80세. 한 번 부부의 인연을 맺으면 결코 헤어지지 않는 금술을 자랑함. 고고함의 상징.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닌 새입니다. 바로 인간이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새들 가운데 가장 크고, 두루루~하는 울음소리를 이름으로 가지고 있는 새. 우리가 대개 학이라고도 부르는 두루미입니다.
 
두루미는 이맘때가 되면 멀리 시베리아와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내려옵니다. 바로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두루미는 전 세계에 3000마리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멸종위기동물로 그 중 1000마리의 두루미가 우리나라를 찾아옵니다. 대부분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민간인통제구역 안쪽에 사람들의 간섭이 적은 곳으로 옵니다.
 
▲ 두루미의 동그란 눈에는 세상이 이렇게 보이지 않을까요?     © 기독청년아카데미


두루미가 철원평야를 많이 찾아오는 이유는 사람들의 간섭이 적다는 것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바라보면 철원평야에는 전봇대-전깃줄-가 많지 않습니다. 즉, 하늘을 날던 두루미가 편안하게 내려와 먹이활동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두루미는 넓은 철원평야에서 떨어진 낙곡과 작은 벌레등을 먹습니다. 먹잇감이 풍부한 것은 물론 곳곳에 저수지와 두루미가 잘 수 있는 무논-물이 늘 고여 있는 논-이 많습니다. 매년 같은 곳으로 다시 찾아온다는 두루미, 올해도 어김없이 철원에 찾아온 두루미를 직접 만나고 왔습니다.

이번 주 1박 2일 동안 철원으로 다녀온 민통선평화기행에 참가한 청년들은 세상에 오직 두루미 울음소리만 들리는 곳이 있다며 신기해하더군요.
 
둘째 날 철원을 떠나며 우리는 철원평야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 노동당사 앞에 위치한 나지막한 산을 올라갔습니다. 철원평야에 찾아온 두루미들의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산 정상에 앉아 추수가 끝난 넓은 평야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우리 눈에 들어오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저기 아까 철원구시가지에서 보았던 공사현장이네요! 빨간색 알록달록한 담장이 눈에 확 들어오는데요?”
 
열심히 철원구시가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던 터라 눈에 잘 보이는 한 지점이 있다는 것이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루미들이 저 곳을 보면 내려가 앉아 쉴 수 없을 것 같아요.”
 
철원의 지리를 설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 순간 두루미의 눈으로 철원평야를 바라보았던 참가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벌써 하루 전날 만났던 두루미들의 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 그와 비슷한 일은 전날 저녁에도 있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세면을 하고 열심히 스킨로션을 바르는 한 참가자에게 친구가 말을 겁니다.
 
“너 무슨 스킨로션을 그렇게 열심히 바르냐?”
 
아마도 친구의 질문은 멀리 나와서도 피부 관리를 잘한다는 뜻이 담겨있었을 것입니다.
 
“내일 만날 쇠기러기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지!”
 
우리들은 내일 새벽 저수지에서 자고 있는 쇠기러기들의 비상시간에 맞춰 나가 쇠기러기의 거대한 군무를 볼 계획이었습니다.
 
“쇠기러기가 날다가 너 스킨로션 향 때문에 내려앉겠다!”
 
▲ 기독청년아카데미


친구의 답변으로 우리는 큰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이 또한 같은 마음입니다. 새들을 보러 가는 탐조의 기본 원칙은 밝고 화려한 색의 옷을 입지 않고, 향이 진하게 나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새들의 먹이활동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합니다. 하지만 누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우리들은 이미 쇠기러기의 기상과 두루미의 착륙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을 지키고 환경운동을 한다는 것이 거창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시작은 이틀 동안 느꼈던 사람들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다른 동물들보다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며 지배하고 자연환경을 자유자재로 이용해온 것은 현실입니다.
 
이젠 자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쪽으로 좀 더 능력을 발달시켜야 할 때입니다. 철원에 한번 찾아가 두루미를 만나고 나면 될까요? 두루미의 눈으로 보기. 약자의 눈으로 보는 것을 뛰어넘어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안경이 필요한 때입니다.
 
 
글은 진보여성정책연구회 웹진 17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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