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허하다고 아무 보약이나 마구 먹었다가는...

수천년 매달린 한의학 그래도 몇 %가 부족한건 인체의 복잡함 때문

박호 한의사 /안양뉴스 | 기사입력 2012/01/14 [05:12]

'몸' 허하다고 아무 보약이나 마구 먹었다가는...

수천년 매달린 한의학 그래도 몇 %가 부족한건 인체의 복잡함 때문

박호 한의사 /안양뉴스 | 입력 : 2012/01/14 [05:12]
건강칼럼을 쓰기 시작한지도 3년이 넘었다. 매번 제일 늦게 들어오는 원고라는 말을 들었지만, 집필위원 중 가장 많은 글을 썼다고 하니, 잘 쓰진 못해도 어찌해서든 써내는 재주는 타고난 것 같다. 
 
▲이시진 채약도    
매번 원고 보내라는 문자를 받을 때마다, 가난한 집 제사는 왜 이리 자주 오냐는 심정이었다.
 
이번 원고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시간 다 보내고 나서, 마감 몇 시간을 남기고 좀 편한 글을 써보겠다고 앉아있지만 엉터리 글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뿐이다.

‘몸이 허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한문으로 ‘허(虛)’는 공허하다. 비어있다. 는 뜻이고 몸이 ‘허약하다.’, ‘쇠약하다.’는 뜻이다. 약하다는 말이다. ‘허(虛)’의 반대는 ‘실(實)’이다. ‘실’은 ‘가득차다.’, ‘충실하다.’는 말이다.
 
‘몸이 건강하다.’로 생각하기 쉽지만, 한의학에서는 ‘병이 세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그러니 ‘허’도 병이고 ‘실’도 병이다.
 
서양의학에서는 약하다는 것만으로 병으로 보지 않는데, 한의학은 약한 것 그 자체가 치료해야할 병이다. 예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주 중요하다.

어떤 때 허하다고 하는가? 지쳤을 때 경험해 봤을 것이다. 나는 무리했을 때 몸이 물에 젖은 종이장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기운이 하나도 없고 말도 하기 싫어진다. ‘매가리가 하나도 없어 보인다.’는 그런 순간이다.
 
허실을 구분하는데 맥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허한 사람의 맥은 약하다. 맥으로 모든 병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허하다는 정도는 알려준다. 배를 만져 봐도 힘이 없다. 누가 봐도 허한 사람은 대충 알 수 있다. 얼굴색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목소리를 들어도 알 수 있다. 눈빛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허한데, 무엇이 허한지? 기가 허하면 기허, 혈이 허하면 혈허, 오장육부 어딘가가 허하면 각 장기에 따라, 또 기혈에 따라 위기허, 심혈허 등, 수도 없이 많은 ‘허’로 구분된다.

허하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일상생활이 엉망이 된다. 일에 능률이 떨어진다. 하루 종일 멍하게 있게 되고, 누워 있으려고만 한다. 밥 잘 먹고 푹 자고 나서 좋아지면 다행이지만, 제대로 허하면 밥도 먹기 싫고 잠도 오지 않는다. 일상생활을 하기 힘드니 확실히 병이지 않은가?
 
서양의학에도 이런 병이 있기는 하다. ‘갑상선기능저하증’ 같은 병이 허한 상황을 만든다. 음식과 휴식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허한 몸은 저항력이 떨어져서 새로운 병에 걸리기 쉽다. ‘몸이 허’한데 거기에 ‘병이 실’한 상태까지 오면 더 어려워진다.

‘허’하면 보호하고 기운을 북돋는 치료를 한다. 흔히 말하는 ‘보약’이 그것이다. ‘허’한 것을 병이라 했으니 보약도 치료하는 약이다. 그냥 때가 되어서 한번 씩 먹어주는 것이 아니라 ‘허’한 몸을 치료하는 치료약이다.
 
‘허’를 치료하는 보약으로 알려진 약들이 제법 있다. 가장 잘 아는 것이 녹용과 인삼, 홍삼이다. 십전대보탕도 유명한 약이다. 아예 십전대보탕을 달여 달라는 환자도 있다. 그런데 그냥 인삼이나, 홍삼, 녹용, 십전대보탕을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어디가 허한지 진단을 하고 약을 정해야 한다.

내 할아버지는 젊어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들은 얘기에 따르면 할아버지께서 심한 병이 들었는데 할머니께서 인삼을 구해 와서 달여 드렸더니, 그것을 마시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병이 실’한데, ‘몸이 허’할 때 치료하는 방식으로 치료한 것이다.
 
사실 여부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알 수 없지만 다른 데서도 그런 얘기는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래서 환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 중의 하나가 ‘제가 인삼이 맞아요?’다. 모두에게 맞는 약은 없다. 맞지 않는 약은 독약이다. 시중에서 좋다고 해서 사다 끓여먹는 많은 약재들, 오가피, 구기자, 민들레 등... 모두 조심해야 한다. 
 
▲ 박호 원장 자료사진   
십전대보탕도 마찬가지다. 십전대보탕도 부작용이 있다. 소화기가 나쁜 사람이 먹으면 안 된다. 열이 있어도 안 된다. 그 외에도 안 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학자들이 수 천년 동안 한의학에 매달려 왔지만, 모든 사람에게 좋은 약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우리 몸이 한가지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몸이 허하면 보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맞다. 나머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몸이 허한 것도 병이다. 이것도 사실이다. 기력이 떨어져서 약을 먹고 나면 좀 살겠다는 환자들을 많이 본다. 생활이 정상이 된 것이다. 큰 병이 나서, 회복 불가능하게 되거나, 큰 고생을 하기 전에 몸을 정상으로 만들어 놨으니 이보다 더 좋은 치료가 어디 있겠는가?

글쓴이 : 박호(동의한의원 원장 , 안양 중앙시장 동의한의원 사거리. 031-465-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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