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에서 '백수'까지 과로사 할판

[살며 사랑하며] 죽을때 후회하는 다섯가지 내 경우 꼽아보니

이정심 참학안양지회장 | 기사입력 2012/02/11 [05:59]

'유치원생'에서 '백수'까지 과로사 할판

[살며 사랑하며] 죽을때 후회하는 다섯가지 내 경우 꼽아보니

이정심 참학안양지회장 | 입력 : 2012/02/11 [05:59]
남쪽 지방에 96년 만에 한파가 몰아쳤다는 날, 신문에서 책 ‘죽을 때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소개했다. 바로 내 뜻대로 살걸,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꼽은 후회 1순위 였다고 한다. 그 다음이 일 좀 덜 할걸, 화 좀 더 낼걸, 친구들 챙길걸, 도전하며 살걸. 의 순이였단다. 

이 책의 저자가 조사해보니 생의 마지막 시점에 이른 사람은 내 뜻대로 살지 못한 것에 제일 미련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회한으로 남는다는 내용 중 ‘내 뜻대로 살 걸’과 ‘화 좀 더 낼 걸’이란 항목이 노래 구절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꼭 하고 싶은 어떤 일이 이런 상황, 저런 제약으로 멈칫해야 했던 경험이 나에게도 허다하다.

유괘한 상상 '친정 어머니의 반란'

내가 하려는 일은 어떤 희생을 요구했다. 예컨대, 향에 혹해서 커피를 마시면 밤에 모로 누웠다 가로 누웠기를 반복해야 했다. 한동안 가족 간에 갈등의 원인이었던 제사 문제를 보자. 종교적 믿음을 바탕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 며느리가 신앙인의 측면에서 용기 있고 모범이겠지만 조상께 공경하는 예를 지켜온 시댁 식구들에게는 어이없는 횡포라 할 수 있다.

집안 아저씨 중에도,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그의 형수가 조상을 홀대하고 집안 우애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며 당신 며느릿감을 찾을 때 모 종교를 가진 사람은 거부하였다.

무인도에서는 내 뜻대로 살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헝클어진 거미줄마냥 얽혀 있는 세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한눈 팔 줄 모르고 살림전문가로만 지내신 어머님을 종종 안타깝게 생각했다. 소설가 박완서님과 동갑이라는 점이 발단이 되어, 팔십 평생 가정을 벗어난 적 없는 시어머님과 주부에서 작가로 우뚝 선 그 분이 대비되곤 한다.

까다로운 입맛들이 인정하는 요리솜씨와 절기에 맞춰 보름나물과 오곡밥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준비하시는 성실함, 저장 식품에 관한 한 ‘엄마표 장아찌’로 상표등록을 해도 될 정도로 담금 비술을 보유하신 어머님이라 공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으면 전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을 것이라고 점을 친다.

그러나 어머님 본인부터 여자는 살림 잘하고 자식 뒷바라지 하는 게 최고의 미덕으로 확신하며 사셨고 남편은 말할 것 없고 자식들도 어머니의 인생은 여기까지였다. 어머님께서 어느 날 ‘내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가족 수발을 등한히 하셨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식구들의 이기적 욕구를 해소하려면 누군가 포기해야 하고 지금까지는 여성이, 그중에서도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내 뜻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은 도전의 기회를 놓치고 세속의 기준에서는 ‘평범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내 뜻대로 사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화를 더 내면서 사는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철부지가 아니라면 즉각 으르렁거려서 남에게 전이될 피해와 곧 이은 미안함과 수습 비용을 학습했기에 이번에도, 뭐라도 집어던질 기세를 누르고 만다.

참으면 병 되니까 참지 말라는 조언을 알고 있다. 그러나 참지 말라고 주문해도 참았던 사람은 다시 참는다. 차라리 상대가 화나게 할 행동을 각자 줄여나가거나 다른 화풀이 방법을 찾는 게 현실성이 있다. 진부한 소리라 꺼내기 싫은 말이지만,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술 축적보다 인간다워질 수양을 쌓아야 한다.

먼저 삶을 마친 사람들이 남긴 잠언을 들어도 대개는 살던 대로 살 것이다. 당대의 유언 가운데서 나는 일 좀 덜 하란 말에 끌린다. 농경 사회나 대가족 시대는 일터가 생활공간과 분리되지 않아 동료가 가족이고 친구라서 사시사철 곁에 있었다.

근대 이후 직장에 모여 노동을 한 이래 친밀한 사이를 챙기는 것은 별도의 일이 됐다. 하루 중 일하는 시간의 비율이 상당하고 서로 떨어져 사니 마음은 있어도 부모님이나 친구들을 따로 대면하기가 솔직히 부담스럽다.

그저 ‘집에 한 번 갈게요’, ‘언제 만나자. 연락해!’라고 내뱉고는 결과적으로 식언을 한다. 나의 게으름의 소산으로만 돌릴 현상이 아니다. 시대는 발전 드라이브로 달려가나 몸은 따라가지 못하니 세상이라는 허깨비는 앞서가는 꼴이다.

유치원생부터 백수마저 과로사할 판인 지금 혼자만 일을 줄일 수는 없고 사회 전체가 계약을 하면 어떨까. 현재의 흐름이 바닥에 닿아 깨지기 전에 한 시라도 미리 궤도를 수정할 수 있는 지성이 우리에게 있잖은가. 지난 1999년에서 2000년으로 해가 바뀔 때는 숫자의 변화일 뿐 정점이라는 느낌이 없었는데 이제는 세계사적 전환기란 용어의 실체가 나를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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