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사의 전설 '에바헤세' 서울 온다!

국제갤러리 ‘Eva Hesse: Spectres and Studiowork’전 2월28일부터

아트데일리 | 기사입력 2012/02/29 [05:36]

현대미술사의 전설 '에바헤세' 서울 온다!

국제갤러리 ‘Eva Hesse: Spectres and Studiowork’전 2월28일부터

아트데일리 | 입력 : 2012/02/29 [05:36]
‘현대미술사의 전설’ 에바 헤세(1936-1970)를 서울에서 만난다. 국제갤러리(서울 삼청동)는 20세기 작가 중 가장 영향력 있고, 비평적 호평을 받는 에바 헤세의 ‘Eva Hesse: Spectres and Studiowork’전을 2월28일부터 개최한다.

▲  에바 헤세     © 아트데일리  
이번 전시에서는 최근 해외에서 열렸던 헤세의 회고전 ‘Eva Hesse Spectres 1960’, ‘Eva Hesse Studioworks’에서 선보였던 페인팅과 조각 작품들을 소개한다.

독일에서 태어나 나치의 탄압을 피해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 산업 미술 학교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한 에바 헤세는 예일 미대를 졸업한 이후 파격적이면서도 섬세한 작품을 발표하여 1960년대 미국 화단의 스타로 부상했다.

34살의 나이에 뇌종양으로 숨지기전까지 병마와 싸우면서 전시회를 열었던 에바 헤세는 사후에 더욱 명성이 치솟았다.

이번 국제갤러리 전시는 에바 헤세의 페인팅 작품과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조각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에바 헤세 재단 디렉터인 베리 로즌(Barry Rosen)과 에바 헤세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미술사학자 브리오니 퍼(Briony Fer), E. 르완 맥키논(E. Luanne McKinnon)이 기획한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페인팅 작품들은 1960년 에바 헤세가 예일 대학교 졸업 직후 뉴욕으로 건너가 제작했던 것들이다.

국제갤러리는 “1960년 당시 에바 헤세는 무려 48점의 페인팅을 제작하였고, 이 중 20점이 이번 국제갤러리 전시에 소개된다. 페인팅 작품들은 신체 이미지와 마치 유령 같은 모호한 형태 사이를 오고 가면서, 표현주의적인 인간 형상을 띠고 있다”고 소개하고 “에바 헤세는 작품의 거친 표면 처리와 스크래치, 드리핑, 낮은 채도의 색을 통해서,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과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초상화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초기 페인팅은 에바 헤세의 자화상이면서, 작가의 복잡한 심리를 보여주는 전(全)작들의 초기 지표로써 작가의 내면적 고통과 작품활동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조각 작품들은 최근에 열렸던 헤세 회고전 ‘Eva Hesse Studiowork’에서 선보였던 것으로, 한국에 최초로 소개되는 작품들이다.

이 소품들은 이전에는 ‘실험 작품(test-pieces)’ 혹은 대형 작품의 원형으로 여겨졌으나, 최근 큐레이터 브리오니 퍼에 의해 ‘스튜디오 워크 studioworks’로 명명되었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이 오브제들은 재료의 연약한 물성으로 인해 일시적인 특성을 보이며, 동시에 인간 신체의 나약함을 은유하고 있다.

국제갤러리는 “Eva Hesse: Spectres and Studiowork전은 마치 작가의 자화상을 감상하듯 그녀의 작업에 친밀하게 다가가고자 한다”며 “서로 다르면서도 연결고리를 갖는 두 경향의 작품들을 살펴봄으로써, 현대 조각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헤세의 대담한 작업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시 의의를 전했다.

국제갤러리의 에바 헤세 서울전은 지난 2004년에 이어 8년 만에 열린다.

전시는 4월7일까지.
오프닝행사 2월28일 오후 5~7시

(문의 02-735-8449)

▲No title 1969 Papier-caché 6 1/8 x 6 x 3 1/4 inches / 15.5 x 15.3 x 8.3cm © The Estate of Eva Hesse 

 
▲ Inside I 1967 Acrylic, papier-mache, wood, cord, wire 30.5 x 30.5 x 30.5 cm / 12x12x12 inches Interior object: 7 x 21.5 x 23 cm / 2 3/4 x 8 1/2 x 9 inches ⓒ The Estate of Eva Hesse

 
▲ No title 1960 Oil on canvas 41 x 40.3 cm / 16  1/8 x 15  7/8 inches © The Estate of Eva Hesse

 
▲No title 1960 Oil on Masonite 40 x 30.5 cm / 15  3/4 x 12 inches © The Estate of Eva Hesse

 
▲No title 1960 Oil on Masonite 53.7 x 42.2 cm / 21  1/8  x  16  5/8 inches © The Estate of Eva Hesse

 
▲No title 1969 Cheesecloth, adhesive 43.7 x 28.5x 11.5 cm /  17  1/4 x  11  1/4  x  4 1/2 inches © The Estate of Eva Hesse


<에바 헤세 Eva Hesse>

1936  1월 1일 법조인인 빌헬름 헤세와 루스 마르커스 헤세의 둘째딸로 함버그에서 태어났다
1938  에바 헤세와 여동생 은 나찌로부터 탈출하여 해그 지역으로 옮겨진 후 석 달 후 부모와 만남
1939  6월에 헤세의 가족들 뉴욕으로 이민. 에바의 아버지는 보험 판매원 활동.
1945  부모 이혼, 아버지는 에바 나탄슨과 재혼. 두 딸 모두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됨.
1946  루스 마르커스 헤세 자살
1949  뉴욕 산업 미술 학교 재학
1952  프랫 인스티튜트 디자인 전공으로 입학

1954 
 
아트 스튜던트 리그의 드로잉 수업 참가. 헤세는 의사인 헬렌 파파넥과 정신 치료 시작. 9월에 쿠퍼 유니온 스쿨에서 수학.

1957 
 
쿠퍼 유니온 스쿨을 마친다. 예일 미술 건축과의 여름학교를 다닐 수 있는 장학금을 받는다. 그녀의 교수는 죠셉 앨버스, 리코 리브런과 버나드 체트 등이다.

1959 
 
헤세는 예일 미대를 졸업한다. 뉴욕으로 돌아와 보석상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한다. 그녀는 클라우스와 패티 올덴버그 부부와 친분을 쌓게 되며, 사무엘 던켄이 그녀의 새로운 정신과 상담주치의가 되며 그는 그녀의 생애를 마칠때까지 그녀를 담당한다.

1960 
 
1월, 헤세는 파트타임으로 텍스타일 디자인 일을 한다. 그녀는 3번가 (9번 애비뉴 근처)의 스튜디오를 필리스 얌폴스키와 함께쓴다. 이해 여름 피터 포라키스, 데이비드 웨인립, 그리고 솔 르윗과 친분을 쌓는다.

1962
 
헤세와 도일은 다시 우드스톡에서 여름을 보내는데, 여기서 그녀는 조각 댄스를 위해 천과 철사를 이용하여 입체적인 천-오브제를 디자인한다. 앨란 카프로우, 월터 드 마리아, 데이비드 웨인립과 피터 페라키스가 제작한 이 액트는 “카니발을 도는 에고 정장”이라는 타이틀을 지닌다.

1962
 
뉴욕의 브룩클린 미술관의 제21회 국제 수채화 비엔날레에 참가한다. 코네티컷의 하드포트에 있는 워드워쓰 미술관 드로잉전에 참여하며, 도날드 베리와 헤랄드 제이콥스와 함께 “드로잉: 세명의 젊은 미국인들” 이라는 그룹전을 존 헬러 갤러리에서 선보인다. 조각가인 톰 도일을 만나며 우드스톡에서 그와 함께 여름을 보낸다. 11월 21일 그 둘은 결혼하여 5번가와 19과 사이의 아파트로 이사하여, 그레이스 백스트웹너와 에델린 호니그와 함께 산다.

1963
 
앨란 스톤 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인 “에바 헤세: 드로잉 근작들”에서 1962/63년도에 제작된 드로잉들이 선보인다. 12월에 그녀와 도일은 134/135 바우리 거리로 이사하여 아파트에서 함께 거주하며 서로 각자의 스튜디오를 갖는다. 이웃사촌으로는 로버트 라이만, 루씨 리파드, 프랭크 바이너, 로버트와 실비아 맹골드, 그리고 솔 르윗이 있다.

1964

Rheinlande und Westfalen 미술관에서 대표 파견단이 도일의 스튜디오를 4월에 찾아온다. 그 중에는 독일 사업가부부인 이사벨과 프레드릭 안하드 슈웨이트, 노베르 크맄이라는 듀셀도프 작가와 아놀드 루드링거, 해랄드 제만과 르네와 모리스 지에글러 가 있었다. 슈웨이트는 도일의 조각을 무척 좋아하여 작가와 작가의 아내가 에센 근처의 케트위그-온-더-러의 스튜디오에 초대하며 여비도 마련해준다. 헤세와 도일이 6월초 케트위그에 도착한다. 그들이 생활하는 곳은 이전의 사무실이었으며, 스튜디오는 문을닫은 슈웨이티안 텍스타일 공장의 제조 층 이었다. 첫 몇 개월동안은 계속적인 여행을 다녔다.-카셀 (도큐멘타 III을 참관), 바젤, 번, 브루셀, 파리, 로마, 피렌체, 취리히, 그리고 베를린에 간다. 따로 그녀 혼자 마요이카에있는 에델린 호니그를 방문한다. 린다와 한스 하케, 하네로어와 칼-하인즈 헤링, 워너 네케스, 메레 오픈하임, 알버트 슐츠-벨링가우센, 에리카와 맨프레드 티셔, 아놀드 루드링거, 프란츠 에하드 월터, 버르네하드 볼클, 해랄드 제만, 루돌프 즈위너, 그리고 아마도 요셉 보이스와 친분을 쌓을 기회가 온다. 헤세-도일 부부는 유럽에서 뉴욕의 예술세계를 대표하는 전시를 보이고있는 시드니 게이스트, 알 헬드. 로버트 모리스. 이본 레이너, 그리고 샘 프란시스와 알게된다. 에바 헤세가 독일에서 읽었던 많은 책 중에는 제임스 볼드윈, 시몬 드 부보아, F. 스콧 핏져랄드, 셜리 잭슨, 캐더린 앤 포터, 필립 로스, 그리고 마크 트웨인이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그녀는 추상표현주의적이거나, 스튜디오 주변에서 발견되는 기계 부분의 모양을 띄는 문양의 드로잉과 페인팅 작업을 만든다. 그녀의 첫번째 입체적인 조각 작품이 탄생되나 보존이 되지 않았다. 11월 12월에는 그녀의 드로잉 3점을 듀셀도프 미술관 “겨울 전시”에 내보낸다.
1965
2월에 오버하우젠의 국제 단편 영화제에 간다. 3월 첫번째 릴리프 작품인 Ringaround Arosie를 완성하고, 4월에는 Two Handeled Orangekeyed UtensiI and An Ear in a Pond를 완성한다. 5월에는 Legs of a Walking Ball, Oomamaboomba를, 6월에는 Tomorrow’s Apples, 2 in 1, H+H, Cool Zone를 7월에는 Pink, C-Clamp Blues, Up the Down Road, Eighter from Decatur and Top Spot를 완성한다. 5월 15일 그녀는 “기계적 드로잉”과 그녀의 첫 5점의 릴리프 작업을 슈웨이트가 소유한 오래된 온실에서 열린 소규모의 비공식전시에 선보인다. 이 후에, 도일과 함께 헤세의 어머니 고향인 하멜른과 헤세가 어린시절을 보낸 햄버그를 방문한다. 그 곳에서 그녀 부모님의 친구분들과 이웃들과 만나고 헤세의 가족이 살았던 아파트를 보려 노력했으나 그 당시에 살던 사람들이 보여주길 거절했다. 8월초, 그녀가 독일에 거주하는 동안 만든 14점의 릴리프와 50여점의 드로잉을 선보이는 “에바 헤세: Material Pictures and Drawings” 제목의 개인전이 듀셀도프 미술관에서 열린다. 네케스와 몇몇의 미국 친구들과 함께 헤세와 도일은 런던과 아일랜드로 8월에 여행을 떠나, 9월 초에 뉴욕으로 돌아온다. 스카스데일에서 헤세는 어린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친다. 그해말에 헤세 부부는 결별한다.

1966

솔 르윗은 헤세를 로버트 스미손, 낸시 홀트, 그리고 댄 그래함에게 소개한다. 그녀의 친구중에는 도널드외 줄리 져드, 댄과 소냐 플래빈도 있다. 일월에 “Hang Up”이란 작품을 만든다. 이 작품은 3월에 Abstract Inflationism and Stuffed Expressionism 이라는 전시에서 보여진다. 피쉬바크 갤러리의 Eccentric Abstraction 전시에 루씨 리파드가 초대한다. 12월, 멜 버크너가 큐레이팅한 전시인 Working Drawing and Other Visible Things on Paper No1 Necessarily meant to be Viewed as Art에 작품 몇 점을 선보인다.

1967

일월, 피쉬바크 갤러리와 계약을 맺는다. 스쿨 오브 비쥬얼 아트에서 주관한 애로틱 심볼리즘에 관한 패널 토론에 루이즈 부르주아, 폴 텍과 함께 참여한다. Accession 시리즈와 라텍스로 만든 테스트 작품이 만들어진다. 12월, 멜 보크너가 주관한 Art in Series 전시에 Addendum 작품을 가지고 나간다.

1968

1월, 루스 볼머와 함께 멕시코 시티로 열흘간의 여행을 떠난다. 돌아오는 길에 오벌린 칼리지에서 방문 아티스트로 학교에 다닌다. 3월, 도로시 베스킨드가 그녀에 관한 무성 영화를 그녀 스튜디오에서 찍는다. 6월, 밀워키 아트센타에서 열린 전시인 Directions 1:Options에 참여한다. 화이버 글라스와 폴리에스터를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실험을 한다. 9월, 스쿨 오브 비쥬얼 아트의 강사직을 맡게되고, 지오이아 팀파넬리를 거기서 만나 아주 친한 친구가 된다. 10월, 루시 리파드가 기획한 전시인 Soft and Apparently Soft Sculpture에 Area를 내보내고, 미시간의 플린트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의 전시인 Made of Plastic는 Repetition Nineteen III를 선보인다. 11월 16일 피쉬바크 갤러리에서 조각으로 Eva Hesse:Chain Polymers의 타이틀로 첫 개인전을 연다. 대형의 폴리머 작품들 (Accretion, Sans II, Repetition Nineteen III)과 라텍스 작품들이 굉장한 갈채를 받는다. 12월, 라텍스로 만든 작품 두 점 Aught 와 Augment를 카스텔리의 창고 (웨어하우스)에서 로버트 모리스가 기획한 9 at Leo Castelli라는 전시에 선보인다. 여성작가로는 헤세만이 보여진 이 전시에는 로버크 모리스, 브루스 나우만, 라차드 세라등의 많은 남성 작가의 작품이 선보인다. 헤세의 Sans II가 휘니트 미술관의 Annual Exhibition 전시에 초대된다.

1969

1월, 헤세는 번 미술관 전시를 위해 Sans III 와 Vinculum II를 완성한다. 펜실베니아 대학 인스티튜트 오브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주관한 순회전인 Plastics and New Art에 참여하고, 보스톤 미술관 학교의 강사자리를 받아들인다. 4월, 뉴욕병원에서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은 후, 언니 (동생)의 집에서 회복을 한다. 5월, 휘트니 미술관 전시 Anti-Illusion에 Vinculum I, Expanded Expansion, Ice Piece를 선보인다. 8월초, Tori와 Right After를 완성하고 우드스톡에 가서 몇주를 보낸다. 8월, 두번째 뇌종양 수술을 받는다. 11월, 뉴욕의 Jewish 미술관의 A Plastic Presence 전시에 Right After를 선보인다. 어시스턴트들의 도움으로 Contingent작품을 완성하여 핀치 컬리지 뮤지움 오브 아트의 Art Progress IV 전시에 내보낸다.

1970

마셀 듀샹, 커트 슈위텆, 파블로 피카소, 맨 레이, 크리스토, 월터 드 마리아, 로버트 라우센버그, 브루스 나우만, 재스퍼 존스, 클라우스 올덴버그와 함께 시드니 재니스의 갤러리에서 열린 String and Rope 참여한다. 신디 냄서가 여러 차례 인터뷰를하고, 병중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지막 대작 조각품인 Rope Piece와Seven Poles를 만들기 시작한다. 3월, 3번째 뇌 수술을 받는다. 4월, 피쉬바크 갤러리에서 드로잉전을 열고, 5월, 그녀의 마지막 두작품이 오웬스-코닝 화이버글라스 센터에서 보여진다. 5월22일 에바 헤세는 코마에 빠지고, 5월 29일 34세의 나이로 뉴욕 병원에서 생애를 마친다.
<자료=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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