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하다, 봄의 전령 '변산바람꽃'-'복수초'

[살며 사랑하기] 변산바람꽃과 봄마중 나서기

이정우 기자 | 기사입력 2012/03/17 [05:07]

도착하다, 봄의 전령 '변산바람꽃'-'복수초'

[살며 사랑하기] 변산바람꽃과 봄마중 나서기

이정우 기자 | 입력 : 2012/03/17 [05:07]
겨우내 잠자던 숲들이 미동을 시작했다. 깊은 잠에 취해 세상모르고 쿨쿨 대던 복수초, 노루귀, 그리고 변산바람꽃까지 기지개를 켜고 세상 밖을 기웃거린다. 아직은 털모자도 걸어 다니고, 두꺼운 외투도 거리를 활보하는 삼월 초순을 막 넘어서는 순간인데, 봄꽃들은 그들의 손가락으로 날짜를 꼽아 개화시기를 추측하나보다. 

▲ 변산바람꽃     © 이정우
 
이번 주 들어 계속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빗방울이 떨어지는가 하면, 바람도 불고, 하늘도 컴컴해서 겨울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제 딱 하루 햇살이 비췄다. 일기예보에서도 오늘부터 다시 흐리거나 비, 또는 눈이라 했으니, 내게 기회는 단 한나절뿐이다.
 
노란 햇살이 뽀얗게 분을 발라 봄볕의 위력을 떨치니 좀이 쑤셔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이것저것 후다닥 정리를 하고 늦은 오후에 출발을 했다. 너무나 다행인 것이, 변산바람꽃 그 어여쁜 아이를 삼십분만 달려가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이라 말하는 것보다 감사하다고 해야 옳을 거다.


▲ 변산바람꽃     © 이정우
 
변산바람꽃이 한국 특산종으로, 학술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3년부터이다. 같은 해 전북대학교 교수 선병윤(宣炳崙)이 변산반도에서 채집해 한국 특산종으로 발표하였기 때문에, 학명도 발견지인 변산과 그의 이름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변산반도·마이산·지리산·한라산·설악산 등지에 자생한다고 했는데 근래 들어 내륙에서도 자생한다. 안타까운 것은 봄마다 변산바람꽃이 사람들의 발길에 시달려 그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얇은 물만두피 같은 다섯 장의 꽃잎, 사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흰빛이거나 연보랏빛이 도는 꽃잎은 꽃잎이 아니고 꽃받침이다. 그 안쪽으로 오돌오돌하게 꽃술처럼 꽃받침 위에 수술들 속에 섞여 있는 노랑, 또는 녹색의 꽃잎이다. 추운 겨울을 헤치고 나와 일찍 씨방을 맺고 사라지기 때문에 개화시기를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대부분의 봄꽃이 그렇듯 추운 날씨를 이겨내고 꽃을 피워내려면 삶에 대한 애착이 무한해야 한다. 다른 식물들은 모두 얼어 죽거나 땅 속에 뿌리를 겨우 남겨 두지만, 변산바람꽃은 뿌리에서 스스로 열을 낼 줄 안다. 추운만큼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10cm 안팎의 작은 식물이어서 이른 봄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키 큰 식물들이 광합성을 하기 시작하면 그늘이 지고, 그러다 보면 일조량이 많이 부족하니까 다른 식물들이 성큼성큼 영역 표시를 하기 전에 마른 나뭇잎 새로 빼꼼이 고갤 내밀어 짧은 생을 살다 간다.

허리를 완전히 구부려야, 머릴 땅바닥에 있는 대로 조아려야 알현을 허락하는 변산아씨다. 터덜터덜 무심히 걷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꽃이 아니고, 콧속으로 흙냄새, 부식된 갈잎 냄새가 쑥 들어가야 눈을 마주치게 되는 꽃이다.
 
꽃말이 [기다림]이란 것만 봐도 변산아씨 앞에서는 숙연히 긴 겨울의 문안을 여쭐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사람만이 빛나는 변산바람꽃 앞에서 호흡을 조절하고 렌즈를 통해 교감을 나눌 수 있다. 간절한 기다림을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봄마중이다. 


▲ 변산바람꽃     © 이정우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는 여우꼬리보다 더 짧아졌고, 빛 없는 산 속에 저 홀로 빛을 발하며 하루를 마무리 하는 꽃들을 그 산에 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가끔 내 삶이 쓸쓸하거나 팍팍하다고 느낄 때, 시선을 멀리 두어 산끝자락을 바라보거나, 아예 산속으로 들어가 그 숲의 일원이 되어도 좋겠다. 이 담에 나, 변산바람꽃 되어 그 산에 홀로 피면 누군가가 나를 보러 그곳까지 와 줄까? 가쁜 숨 몰아쉬며 두리번두리번 나를 찾을 그 모습, 상상만 해도 참 행복하겠다. 
 
 
<시흥시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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