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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따르는 유대인 vs 예수 따르는 유대인
<바이블 투어> 그리스도의 새싹 ‘메시아닉주’
 
소정현기자   기사입력  2012/05/13 [05:06]
▲ 이스라엘은 원론적으로 기독교 선교 활동을 불법으로 간주하지는 않지만, 이곳 선교에서는 유형 무형의 많은 제약이 따른다. 특히 정통 유대교 지도자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의 유대인 선교 활동에 노골적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유대인들은 모세모경 위시 구약성경만 신봉
기독교인, 예수님 공생애 신약성경까지 수용

기독교 세속권력 ‘유대인 대탄압’ 상호 대반목
이스라엘 기독교인 대양성 복음확산 촉발해야

 
 

● 이스라엘 인구의 불과 2%선

이스라엘에는 약 1만 5천명 정도의 기독교를 믿는 유대인들이 있다. 이들은 ‘메시아를 믿는 유대인들(Messianic Jews)’ 또는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들(Jews for Jesus)’이라 호칭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숫자 여부를 떠나 기독교를 믿는 유대인들이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 일반인들은 쉽게 의미부여를 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이 새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기가 매우 척박한 토양대에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모세 오경을 위시하여 선지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구약 성경만을 오로지 신봉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구약성경은 물론 예수님 공생애를 주축으로 하는 신약 성경까지의 모두를 생활의 신조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이질적 간격이 필수 상존하게 된다. 이는 후미에서 상술하도록 한다.

 
▲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경전은 율법서(TORA)인데 이것은 구약의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메시아닉주는 한국의 김종철 감독이 지난 15년 동안 이스라엘을 32회나 방문하면서 어렵게 결실을 본 다큐 영화 ‘회복’을 통해서이다. 영화 회복은 이스라엘 유대교와 기독교 관계를 본격 해부하면서 우리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회복’은 과격파 유대교 청년단체가 자행한 폭탄 소포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아미 오르티즈’ 사건이 주 예제로 부각된 가운데 종교적 핍박 가운데서도 치열하게 꿋꿋이 신앙을 사수하며 선교활동을 해온 메시아닉주의 순교적 삶을 인터뷰 등 구성으로 리얼하게 조망한다.

이스라엘 통계청은 2007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기독교 인구를 발표한바 있다. 700만명을 상회하는 이스라엘 총인구 대비 152,000명으로 약 2.1%가 기독교인들이다. 그중 80% 이상이 아랍계 기독교인들이며, 20%는 현지 거주 유대인들과 외국에서, 특히 구소련 연방에서 이민을 온 유대인들이다.

이 중 약 74%의 기독교인들은 북쪽 지역에, 11%는 예루살렘 주변에 거주한다. 2006년 통계를 보면 기독교인들 중 약 98% 이상이 도시에 거주한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도시로는 나사렛(20,000), 하이파(17,200), 예루살렘(15,000) 그리고 스파람 (8,800) 순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전체 인구에서 메시아닉주의 비율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 미미하지만 꾸준한 증가세에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스라엘은 원론적으로 기독교 선교 활동을 불법으로 간주하지는 않지만, 이곳 선교에서는 유형 무형의 많은 제약이 따른다. 특히 정통 유대교 지도자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의 유대인 선교 활동에 노골적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2008년 초 서안 지구에서 기독교 선교사의 집에 폭탄이 배달되어 터지는 사건이 일어나 선교사의 아들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2007년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한 기독교 교회가 방화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 교회는 25년 전에도 극단주의 유대교주의자들에 의해 전소된 바 있다. 

● 유대교와 기독교의 대반목

▲ 크리스천들은 유대인들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아 살해한 ‘주범’으로 간주하고 있고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십자군 전쟁 등 기독교계로부터 무수한 박해를 당했다며 증오의 불씨를 끄질 않고 있다.      
장구한 세월동안 기독교와 유대교는 물과 기름의 관계였다. 이스라엘 내에는 수많은 랍비들이 있지만 기독교계와 교류를 갖는 사람은 전무하다시피하다. 일심일체 존재이어야 할 유대교와 기독교의 반목과 증오와 대립이 유구한 시간을 넘어서도 종식되지 있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뭘까?

크리스천들은 유대인들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아 살해한 ‘주범’으로 간주하고 있고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십자군 전쟁 등 기독교계로부터 무수한 박해를 당했다며 증오의 불씨를 끄질 않고 있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마태복음 27:22-26)

왜 유대인들은 이들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을까? 이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슬프게 고찰하여 보아야 한다.

예수의 출생과 공생애는 로마제국의 압제하에서이다. 당대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외세의 침략과 정복에 의하여 신음 속에 고통받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선조들로부터 이어온 메시야사상에 의한 시온니즘적 대망(이스라엘의 해방)이 있었고 이 날을 학수고대하여 왔다. 어쩌면 이들은 예수가 이런 여망을 극적으로 유도하는 나침반으로 간주할 법 했다. 그러나 공생애 기간의 예수는 이들의 이런 여망과는 전적으로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민족적 시온니즘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허무하게 죽어간 허약하고 나약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위인일뿐이었다. 반면 복음주의자들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온갖 기적과 이적을 수반하는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죽는 순간까지 모든 죄인을 용서하는 사랑의 메시야였으며 사망권세를 물리치고 부활 승천한 왕중의 왕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오시어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였다.

더욱이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야훼(하나님)가 세계의 하나님으로 전파되는 것에 분노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선민)은 오직 히브리민족 이스라엘 뿐 이었다. 자신들만의 하나님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로 살아온 그들에게 세계적 하나님을 주장하는 기독교 유대인들은 이제 더 이상 동족이 아니라 매국노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토록 오랫동안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던 기독교와 유대교는 AD 70년에 일어난 예루살렘 붕괴와 성전의 파괴를 계기로 하여 뜨거운 용광로가 되었다. 이는 예수 대예언의 극적 실현이기도 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태복음 24:1-2)

 
▲ AD 7O년 예루살렘성을 파괴한 로마병사들의 축하 행렬.   

기독인들은 그러한 민족적, 국가적 비극의 종말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불순종 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유대교에게로 돌렸다. 이에 유대교인들의 분노는 극에 이르렀고 드디어 AD 85년에 이르러 대파국에 이르게 된다. 유대교도들은 기독교인들의 파문을 다음과 같이 공식 선포하였다. “나자렛인들(Nazarenes-기독교인들을 지칭)과 다른 모든 이단들은 순식간에 멸망을 받고 생명의 책(Book of Life)으로부터 지워질지어다.”

기독교 유대인들과 유대교 유대인들은 동일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구분되었다.

직전 살펴본바, AD 70년 이후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하고 하나의 새로운 종교로 떠오르게 된다. 이때까지도 대부분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었고, 이방인들은 소수였으나, AD 130년의 2차 유대전쟁이후 교회에서 이방인이 많아지고 유대인이 줄기 시작하면서 점차로 기독교와 유대교는 분리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로마서 11:11-13)

 
▲ 美 유대인 학자 다니엘 골드하겐(Daniel J. Goldhagen)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 히틀러의 유대인 대살육 이전에도 유대인에 증오와 배척, 즉 안티세미티즘(Antisemitism)은 중세시대에 유럽 전역에 희귀한 현상이 아니었다고 진술한다.     

앞서 상술한바, 유대인들에 기독교인들의 혐오와 증오의 중핵은 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인 메시아에 대한 거부와 더 나아가 예수의 죽음을 유대인의 책임으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치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은 유대인 증오가 수백 년간 뿌리내려져 있는 유럽이 그 학살의 토양일 수밖에 없었다.

美 유대인 학자 다니엘 골드하겐(Daniel J. Goldhagen)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 히틀러의 유대인 대살육 이전에도 유대인에 증오와 배척, 즉 안티세미티즘(Antisemitism)은 중세시대에 유럽 전역에 희귀한 현상이 아니었다고 진술한다.

골드하겐은 각 시대의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요건에 따라 유대인 탄압은 때로는 극단적 형태로 때로는 억제된 상태로 교차적 국면을 띄면서 연속선상에 있었다는 것이다. 살펴보자면, 유대인 대탄압은 1096년 첫 십자군 전쟁, 1290년 영국의 유대인 추방, 스페인의 1492년 유대인 추방, 1894년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 그리고 20세기 나치독일의 유대인 대학살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 이스라엘에 예수의 서광이 비추다

▲ 과거의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간에 가졌던 반목의 역사를 바꾸고 신뢰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공세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랍비 예치엘 엑스타인(60)은 지난 30여 년 동안 유대인과 크리스천간의 화해와 치유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불살라왔다. 미국 시카고에 소재를 둔 크리스천과 유대인들의 국제협력을 위한 단체 IFCJ(International Fellowship of Christians and Jews)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엑스타인은 스스로를 ‘복음주의 기독교권과 교류하는 유일한 랍비’라고 말한다.

엑스타인 대표가 1983년 설립한 IFCJ는 지난 시절동안 반목하며 원수처럼 지냈던 크리스천과 유대인들의 화해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과거의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간에 가졌던 반목의 역사를 바꾸고 신뢰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공세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랍비 엑스타인은 기독교계와 협력을 모색한다는 이유로 유대인 사회로부터 모진 비난을 받았다. 엑스타인은 화해의 강을 건너는데 있어 고난은 불가피한 것이라며 담담히 말한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화해를 원하십니다. 양측 모두 그 섭리를 수행해 나가는데 따르는 비난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 역사가 창조됩니다.”

2011년 3월 방한한 이스라엘 유일의 공인 기독교 대학인 이스라엘성서대학의 학장 에레즈 소레프 박사! 전통적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에레즈 소레프 박사는 군 복무 후 유럽에 있을 때 처음 복음을 접한 이후 그리스도의 열정적 종이 되었다. 그의 부인 시시(Sisi)의 가정은, 이스라엘에서는 독특하게도 15세대 동안 대대로 기독교 신앙을 이어온 가문이다.

▲ 옛날에나 지금이나 예수님에 대한 유대교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들은 예수를 역사상 훌륭했던 위인 중의 한 분 정도로 간주할 뿐이다.    
소레프 박사는 이스라엘 기독교의 현실과 침투적 선교 방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난 몇 년간 이스라엘 정부는 점점 외국 선교사들을 제재하기 시작했다”며 “이제 이방의 사역자들이 아닌 이스라엘의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전할 때”라고 거듭 강조한다.

말미에 다시 한번 기독교와 유대교의 접점 모색에 통찰을 배가하지 않을 수 없다.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경전은 율법서(TORA)인데 이것은 구약의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말한다. 그리고 현재 기독교에서 외경(外經)으로 다루는 마카비서를 비롯한 많은 문서들과 유대교 대스승들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탈무드 역시 유대교의 경전에 속한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결정적 차이는 예수를 보는 시각이다. 구약에 나오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관(神觀)에서는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기독론(基督論)에서 결정적 차이가 상존한다.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전적으로 수용하느냐 맹목적으로 거부하느냐의 양자 갈림길에서 양보할 수 없는 선택의 귀로에 놓인 것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대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신도들을 오히려 박해했다. 후에 바울 사도가 된 사울이라는 유대교 지도자가 그 좋은 예이다.


 
▲ 사도바울은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의 말씀처럼 유대교로부터 기독교 분리와 확산의 중추 인물이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사도행전 9:1-5) 

옛날에나 지금이나 예수님에 대한 유대교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들은 예수를 역사상 훌륭했던 위인 중의 한 분 정도로 간주할 뿐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종말 예언의 중핵 가운데 이스라엘 유대인이 집단 회계에 이르는 생생한 여정인 미완의 절기인 속죄절의 임박을 소개하고 있다.
 
두 증인이미증유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 3년반 즉 42개월동안 예수가 유대인들에게도 진정한 메시아 임을 강력 선포하는 대반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요한계시록 11:3)
 
▲ 유대교 대스승들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탈무드 역시 유대교의 경전에 속한다.    

  

 
<브레이크뉴스 전북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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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5/13 [05:06]  최종편집: ⓒ 신문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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