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천황 파시즘, 이탈리아·독일보다 심했다

한국 온 이치노헤 스님...일제가 군산에 세운 절터 10곳 확인

조종안 | 기사입력 2012/06/20 [05:37]

일본천황 파시즘, 이탈리아·독일보다 심했다

한국 온 이치노헤 스님...일제가 군산에 세운 절터 10곳 확인

조종안 | 입력 : 2012/06/20 [05:37]
전북 군산시 동국사(東國寺)에서 열리는 '치욕의 36년, 일제강점기 역사 유물 전시회'(5월 23일~6월 22일)에 자료 150여 점을 기증했던 일본 아오모리현 운상사 주지 이치노헤 쇼고(一戶彰晃) 스님이 지난 14일~15일 군산을 다녀갔다. 

▲ 출발에 앞서 일행들과 답사지 위치를 확인하는 이치노헤 스님(왼쪽)     © 조종안

14일 오후 군산에 도착한 이치노헤 스님(64)은 동국사(주지 종명 스님) 신도들과 성불사 주지 종걸 스님(동국사 지원 모임 한국회장)의 환영 법회에 참석했다. 15일 오전에는 역사 유물전시장을 관람하고, 일제강점기 군산의 주요 기관과 건물, 절터 등을 돌아보았다.

일본에 '동국사 지원 모임'을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하는 이치노헤 스님(일본 교단 조동종 소속)의 군산 방문은 2011년 10월 31일에 이어 두 번째. 작년 봄 일본이 '3·11 대지진'으로 재앙을 입었을 때 한국의 불교단체 '정토회'에서 두유를 보내준 게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작년 8월부터 일제의 첨병 노릇을 했던 '조동종'에 대해 연구하던 이치노헤 스님이 두유로 맺어진 인연으로 '정토회' 유정호 공동대표를 만나 한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전 조동종 사찰 동국사를 보존하기 위해 종걸 스님이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방문할 결심을 했다는 것. 

일제강점기 군산 관공서 건물들, 흔적만 있을 뿐 거의 사라져

이치노헤 스님이 군산에서 찾고자 했던 일제강점기 건물은 군산부청 두 곳과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 공회당, 군산 심상고등소학교(군산초등학교), 군산 공립보통학교(중앙초등학교), 모리기쿠 고로(삼국오랑) 가옥, 절터 11곳 등이었다. 

▲ 이치노헤 스님(오른쪽)이 주차장으로 변한 모리기쿠 고로(삼국오랑) 가옥 터에서 원영금 통역사 설명을 듣고 있다.     © 조종안

첫 번째 찾아간 모리기쿠 고로(森菊五郞) 가옥은 들어가는 입구와 담장 흔적만 조금 남아 있을 뿐 집터는 교회의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이치노헤 스님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원영금 일어 통역사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흔적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모리기쿠는 1920년대 군산정미업 조합장을 지낸 재벌지주로 1935년 6월 월명산 중턱에 고급 저택을 지으며 정원에 천황의 은혜에 보답하자는 뜻이 담긴 보국탑과 공자묘를 세웠던 인물. 해방 후에는 학생들 놀이터가 되었다가 1995년 일제 잔재 철거작업으로 모두 사라지고 파편조각만 군산 근대역사 박물관 앞마당에 전시되고 있다.  

▲ 해방 후 지금까지 군산우체국으로 사용되고 있는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     © 조종안

지금의 중앙로 1가에 있던 미나카이 백화점(三中井 백화점)은 해방 후 군산우체국으로 사용되다가 10여 년 전 건물을 개축, 자리만 확인할 수 있었다. 1933년 12월 완공된 공회당(한 때 군산 상공회의소와 학교로도 사용)도 2000년대 초 헐리고 공영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제1 군산부청'은 수덕산 남쪽 기슭에 신축(1908)된 건물로 1928년 11월 지금의 중앙로 1가에 새 부청(제2 부청)이 완공되자 도서관으로 이용되다가 1975년 철거됐는데, 산을 깎아내고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흔적이 없기는 제2부청(구 시청) 건물도 마찬가지. 

▲ 중앙초등학교 한쪽에 흩어져 있는 석단과 석탑 조각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 조종안

중앙초등학교(군산 공립보통학교)와 군산초등학교(군산 심상고등소학교)도 찾아갔다. 그러나 옛 건물들은 모두 헐려나갔고, 중앙초등학교 정문 우측에 있던 양어장 자리 부근에서 일제의 아픈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붉은 벽돌담과 석단, 석탑 등의 조각을 발견한 이치노헤 스님은 반짝이는 눈빛이 한곳으로 모이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군산에 현존하는 일제 때 사찰은 '금강사'와 '안국사' 

▲ 편광사가 있던 개복동 산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생각에 잠긴 이치노헤 스님     © 조종안

개복·창성동 산 중턱에 있던 편광사는 산이 모두 깎여나가고 새로운 도로와 창성 주공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색바랜 흑백사진을 통해 봤던 사찰이 허공에 그려질 뿐이었다. 사찰로 향하는 시멘트 계단 몇 조각이 흔적으로 남아 당시를 말해주는 듯했는데, 계단에 올라선 이치노헤 스님은 한동안 '우두거니'가 되어 내려올 줄을 몰랐다.

기록에 의하면 일제가 조선을 36년 동안 강점하면서 군산에 세운 절은 8개(금강사, 안국사, 동본원사, 진종사, 대음사, 편광사, 임제사, 금광교), 이중 대음사는 시민들 사이에 '군산사'로 불리었고, 진종사도 '서본원사'로 바뀐다. 일제는 포교소도 3개(해망 포교소, 둔율 포교소, 개복 포교소)나 개설한다. 

사찰과 포교소 11개 중 군산에 현존하는 사찰은 군산 월명공원 아래 안국사(흥천사)와 금강사(동국사) 두 곳. 임제사는 주소조차 확인되지 않았고, 나머지 여덟 곳은 옛 지도와 기록을 통해 주소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찰이 있던 자리에 대부분 교회가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독일, 일본 파시즘 중 일본천황 파시즘이 가장 심해" 

▲ 시내 답사 도중 소감을 밝히는 이치노헤 스님.     © 조종안

이치노헤 스님이 이토록 옛 흔적(일제가 세운 관공서 건물과 절터 등)을 찾아 답사에 나선 이유는 승려로서 과거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죄악과 한국인들이 아파했던 현장을 사실 그대로 본국 사람들에게 전하고 민간 교류를 활발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아래는 원영금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 이치노헤 스님과의 인터뷰 내용. 

 - 오늘 군산을 답사하면서 느낀 게 많을 것으로 안다. 군산 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승려 입장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동국사는 역사의 증거다. 대단히 중요한 곳으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군산 시민이 소중히 지켜나갔으면 한다."

- 조선에 포교하러 나온 '일본 조동종이 정부의 하수인이자 첨병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
"조동종 소속 승려로서 조동종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특히 일본 불교가, 불교인들이 정부의 침략 정책에 영합하고, 앞장서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 기록과 사진 자료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어느 부분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나?
"조동종의 총본산인 '영령사'에 남은 사진 자료 가운데 독일에서 '히토라 청년단'을 초대해서 찍은 기념사진이 있었는데, 이는 조동종이 걸었던 파시즘적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당시 이탈리아, 독일, 일본의 파시즘 중에서도 가장 심했던 것이 일본의 천황 파시즘일 것이다."

-일본의 조동종은 한국에서 무슨 일을 했다고 생각하나?
"<한겨레>와 인터뷰 때도 얘기했는데, 포교하려고 조선에 진출했던 일본 불교(조동종)는 정부의 전쟁 정책을 적극 선전하고, 물자 공출을 강권했다. 지금도 과거사를 모르거나 모르는 척하는 불교인이 많아 부끄럽다. 나 혼자라도 아픈 흔적을 찾아내 알려야겠기에 다짐하고 이렇게 나서게 되었다." 

-앞으로 계획은?
"한국을 병합(1910)하기까지 조동종이 무슨 일을 했는지, 종단의 과거사 추적을 위해 불심을 멈추지 않겠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도 알아보려고 한다. 일본 종단들이 과거사에 대한 진솔한 참회로 한국 불자들에게 믿음을 주도록 계속 노력할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 이치노헤 스님은 중국 남경대학살(1937년 12월∼1938년 1월) 관련 참회 서적 <조동종의 전쟁> 저자이며, 오는 9월에는 일본 조동종(曹洞宗)이 한국에서 저지른 패악을 골자로 하는 <조동종은 한국에서 무엇을 했나?>를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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