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농부 & 도심 어부(?)...‘호박잎쌈에 전어 젓갈’

내가 키운 호박잎 쪄서 내가 잡아온 전어 젓갈에 싸먹는 '만찬'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12/07/19 [05:51]

도심 농부 & 도심 어부(?)...‘호박잎쌈에 전어 젓갈’

내가 키운 호박잎 쪄서 내가 잡아온 전어 젓갈에 싸먹는 '만찬'

추광규 기자 | 입력 : 2012/07/19 [05:51]
지난 5,6월 큰 가뭄은 제게도 큰 걱정거리를 안겨준바 있습니다. 바로 제가 가꾸고 있는 다섯 평 남짓의 텃밭이 가뭄에 타들어 갔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타면 10분 거리에 있다고는 하지만 주말이나 되어야 한번 정도 밖에 가지 못하기에 타들어가는 텃밭의 채소들에게 물을 뿌려 줘야만 한다는 그 심적 압박감은 상당했답니다.
 
 
▲지난 5,6월 가뭄에 타들어가던 도심 텃밭의 농작물들은 이제 장맛비로 한껏 싱싱함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 추광규

 
또 그렇게 타들어가는 텃밭의 채소들 덕에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을 원망하는 농부의 마음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주었습니다.
 
더욱이 어렵사리 물을 떠다 뿌려주노라면 시름시름 앓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곧 바로 생생함으로 되살아나는 모습은 갈증에 목말라하는 그네들에게 물을 꼭 떠다가 뿌려 줘야만 한다는 부담을 안겨줬답니다.
 
 
▲ 대형마트에서는 수개월 전부터 잘 익은 참외가 도시 소비자들에게 팔려나가고 있지만 노지에 심은 참외는 이제 갸겨우 그 열매를 맺고 시간을 기다리고 있더군요.     © 추광규

 
▲ 여름 과일인 수박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먹만한 수박이 무척이나 앙징맞았습니다.     © 추광규

하지만 물을 뿌려 주는 것은 결코 녹녹치 않았답니다. 도심 주말농장 곳곳에 시에서 설치해 놓은 물통이 놓여 있고 여기에서 물을 받아다가 뿌려 줘야 하지만, 큰 가뭄 탓에 지하수가 충분하지 못한 관계로 위쪽에 놓인 물통에는 물이 채워지지 않아 백여 미터 이상 떨어진 아래쪽에 놓인 물통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또 물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관계로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어렵사리 물을 받아다가 뿌려 줘야만 하기에 마음은 흡족하게 뿌려주고 싶지만 그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답니다.
 
다섯 평 남짓의 작은 텃밭이지만 4리터 남짓 들어가는 물통으로 여섯 개 이상을 담아 날라야 그나마 가꾸고 있는 채소들이 어느 정도 타들어가는 것을 막아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6월말과 7월 들어 계속해서 내린 장맛비로 이 같은 걱정은 없어졌다 생각했는데 지난 토요일(14일) 텃밭을 찾아 살펴보노라니 이제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 계절은 이제 7월 중순인데 철 이른 코스모스는 철을 잊은채 피어나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추광규

 
▲ 다른 도시 농부가 가꾸고 있는 텃밭에는 이름 모를 채소의 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났더군요.     ©추광규

과한 욕심 탓에 도심 텃밭은 호박밭으로.......
 
2000여 가구가 제 각각의 텃밭을 가꾸고 있다는 이곳 안산 초지동 도심 주말농장은 큰 가뭄을 겪은 뒤 황폐해진 텃밭도 눈에 띄지만 자연의 시련을 이겨낸 텃밭들의 각종 채소들은 그 싱싱함이 한껏 물이 오른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무성해진 잡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에 저희 가족도 지난 4월 상추를 비롯해 방울토마토 고추 토란 등 대여섯 종류의 채소류를 심었고 또 텃밭 가장자리에는 호박을 몇 주 심었답니다. 호박잎 쌈을 좋아하기에 잎을 뜯어 먹을 요량으로 그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욕심이 조금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조그만 텃밭에 너무 많은 호박 모종을 심은 탓인지 이제 다섯 평 텃밭의 다른 식물들은 시름시름 죽어가는 것 같고 온통 호박잎과 그 줄기만 무성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 호박잎과 그 줄기의 등쌀에 토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어 몇개의 줄기를 걷어냈답니다.     © 추광규
 
어릴 때 잎을 따내면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는 조언에 따라 몇 차례 솎아낼 기회를 놓치고 또 그렇게 2주일여를 놔뒀더니 이제는 잎을 따다가 먹기에는 적절치 않을 만큼 크게 자라나 버렸습니다. 또 그렇게해서 뻗어 나간 호박 줄기들은 조그만 텃밭을 온통 뒤 덮은 채 다른 작물들을 휘감은 채 무성해 지고 있어 이놈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새로운 고민이 생겨난 것입니다.
 
멀쩡하게 잘 자라고 있던 고추 몇 주가 말라 죽어 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방울토마토 깻잎 토란 등등 거의 대부분의 작물이 호박의 등쌀에 제대로 자라고 있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말농장 입구의 묘종상에 물어보니 이달 말경 배추를 심으면 된다고 하니 다른 작물을 새로 심는 것은 적당치 않은 것 같아 고민을 하다 지켜보기로 했답니다. 해서 임시로 토란잎을 가린 호박 줄기를 걷어내고 햇볕을 쬐게 만들어 주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날은 줄기를 걷어내면서 상당한 양의 호박잎을 뜯어 올 수 있었습니다.
 
호박잎은 여름 한철 입맛 잃기 쉬운 계절에 입맛을 살리는데 더 없이 좋은 친숙한 먹거리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저 또한 호박잎쌈을 즐겨 먹는데 주로 양념간장에 찍어서 먹었는데 지난 6월부터 두어 차례 뜯어온 호박잎에 전어젓갈을 쌈장으로 먹어보니 그 맛이 일품입니다.
 
또 이렇게 제 입맛을 돋우고 있는 전어 젓갈에도 사연이 있답니다. 바로 이 전어젓갈은 지난 늦가을 제가 직접 잡아와 천일염에 버무려 담가놓고 숙성이 어느 정도 된 것 같아 이렇게 조금씩 덜어내 먹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호박잎에 전어젓갈 ...내가 기른 호박잎에 내가 잡아온 전어
 
지난해 11월 인천 영흥도에서 선망조업을 하는 배를 따라가 본적이 있습니다. 제가 탄 수경 1,2호는 전어를 전문적으로 잡는 배였는데 인천 경기권에서 선망허가권을 가진 유일한 배였습니다. 이날 수경 1,2호가 두어 시간의 조업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전어의 어획량이 5톤을 훌쩍 넘을 만큼 만선을 이룬 적이 있습니다.  
 
 
▲ 지난해 11월 선망 조업배가 전어떼를 발견한 후 발빠르게 그물을 내리고 있는 중입니다.     ©추광규

 
▲선망조업은 길이 250m 높이 20m 그물을 어군을 따라 빙 둘러 펼친 후 밑 부분을 먼저 조이고 그 다음 위 부분을 조금씩 당겨 범위를 좁힌 후 고기를  퍼담는 조업 방식입니다. 고기가 살아 있기에 고가의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추광규

더구나 단 한 번의 그물질이었지만 퍼 올리고 또 퍼 올리다가 나중에는 더 이상 배에 실을 수 없어 그물에 갇혀 있던 500kg 이상의 살아있는 전어는 그물을 풀어주고 다시 놓아주는 상황에 까지 이른바 있습니다.
 
 
▲ 본격적으로 그물을 조이자 그물안에는 전어가 한가득 입니다.     © 추광규

 
▲ 그물을 조인후 어부들이 뜰채를 이용해 전어를 뱃전으로 퍼 올리고 있습니다.     © 추광규

이때 '삶의 체험현장(?)'을 함께한 공로로 20여kg 남짓의 전어를 얻어 왔고 저는 그 전어의 대부분을 국산천일염으로 1:1 비율로 버무려 젓갈로 담가 놓은바 있습니다. 또 이렇게 담가놓은 전어를 100일이 지나고 부터는 그 일부분을 헐어내 지인들 몇 분에게 나눠주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 어칸 마다 전어를 가득 채우고 더 이상 담을 곳이 없어 뱃전에 늘어놓은 모습입니다.     © 추광규

전어를 통째로 먹으려고 하니 어느 정도 삭은 것 같기는 한데 뼈가 억세어 믹서로 간 후 여기에 고춧가루에 참기름 청양고추 등을 송송 썰어 버무려 밑반찬으로 즐겨 먹는 중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날 저희 집 식탁에는 호박잎을 쪄서 올리고 저는 이 호박잎에 전어젓갈을 조금 찍어 양념간장 대신에 얹어서 먹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 지난 토요일 도심텃밭에서 수확해온 각종 야채 입니다. 가장 많은 것은 호박잎이었습니다.      ©  추광규

 
▲ 쪄낸 호박잎에 풋고추, 가지나물 무침, 고추 조림등등.. 한상 가득 이날 수확해온 푸성귀로 차려낸 상입니다.     © 추광규

땅과 함께 살아가는 농부의 정성과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어부가 흘린 땀의 댓가(?)를 지난 토요일 저녁 식탁위에 올려 놓았으니 왕의 수랏상이 부럽지 않은 우리집 만의 '만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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