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만 먹여놓으면 애들은 학교에서 키워요!

황윤희 기자 | 기사입력 2012/12/20 [07:22]

아침밥만 먹여놓으면 애들은 학교에서 키워요!

황윤희 기자 | 입력 : 2012/12/20 [07:22]
2011년 2월, 안성시 보개면에 위치한 가율초등학교는 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남은 학생은 9명이었다. 2005년부터 도교육청은 학생 수 감소를 염두에 두고 가율초등학교의 분교장으로의 개편을 추진했다. 이윽고 2011년 가율초등학교는 장장 45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보개초등학교 가율분교가 되었다.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었다.

▲ 송두섭 분교장(왼쪽)과 나홍근 총동문회장이 좋은 파트너가 되어 가율분교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 안성신문

송두섭 분교장은 2010년 부임했다. 학부모, 동문, 지역민들은 학교가 아예 폐교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이전의 5년 동안 입학생이 전혀 없었으니 그럴 만했다. 송 분교장은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데 집중했고, 그해 5월부터 도교육청 지정을 받아 종일돌봄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학기 중에는 오후 1시부터 동절기 7시 반까지, 하절기 8시 반까지 학생들을 학교에서 도맡아 돌봤다. 방학 중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아이들이 학교에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 통학버스가 없어서 송 분교장은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아이들을 하교시켰다. 이후에 동문회가 재정을 보태 통학버스 운행이 시작되었고, 2012년부터는 안성시의 지원에 힘입어 통학버스 운행이 이뤄지고 있다.

종일돌봄교실은 애들을 돌보기만 하지 않는다.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다양하고도 알찬 방과후교실을 진행한다. 아이들이 학원을 갈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매주 토요일에도 태권도와 가야금 방과후교실이 진행되어 사실상 가율분교에는 주5일제 수업이 없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났다. 가율분교의 종일돌봄교실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2011학년도에 5명이 입학을 했다. 또 중간에 전학 온 학생까지 해서 전교생 15명의 학교가 되었다. 2012년도에는 학기 중간에 무려 11명이나 전학을 오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가율분교의 총 학생 수는 24명이며, 이번 주에 용인에서 전학 오기로 한 자매 한 쌍까지 보태면 전교생이 26명으로 늘어난다. 송 분교장은 전 학년 3개 반 복식수업을 했는데, 내년부터는 4개 반으로 늘려 수업을 할 거라고 했다.


▲ 가율분교의 종일돌봄교실. 입소문을 타고 전학 오는 학생이 늘고 있다. © 안성신문

가율분교가 학생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이유는 종일돌봄교실 말고도 두 가지가 더 있다. 풍성한 방과후교실과 현장체험학습이 그 하나이며, 또 하나는 놀랍게도 그 모든 것이 무상으로 제공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무상교육, 질 높은 소인수 교육이 가율분교에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가율분교는 현장체험학습이 활발하다. 당장 이번 겨울방학에는 정선 하이원에서 2박 3일 스키캠프가 예정되어 있다. 올해 진행된 현장체험학습만도 무척 많다. 해병대캠프, 경주 수학여행, 공주·부여 체험학습, 과천 과학관 방문 등이 진행됐다. 교과과정과 별개의 현장체험학습을 통해 아이들은 살아 있는 교육을 받을 것이었다.
 
또 가율분교에서는 다양한 방과후교실이 진행된다. 올 겨울방학에는 집중영어교육, 피아노, 난타, 사물놀이, 방송댄스, 미술, 가야금, 태권도 등이 준비되어 있다. 피아노 반은 지난해 안성시로부터 700만 원을 지원받아 9대의 디지털 피아노를 구입, 피아노실을 만들게 되면서 가능해졌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프로그램이 무상으로 학생들에게 제공된다는 것이다. 종일돌봄교실도 무료, 현장체험학습도 무료, 방과후교실도 무료다. 믿기지 않아 재차 질문했더니 정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니 학부모들 사이에서 “아침밥만 먹여놓으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키운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맞벌이 부부에게 최적의 학교였고, 또 당연히 사교육비 경감 효과를 가져오는 학교였다. 더불어 저소득층 교육복지가 실현되는 셈이었다.

“학생들이 모두 형제, 자매처럼 지내지요. 현장체험학습도 전교생이 함께 할 수 있고요. 다른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전학 와서 학교의 가족적인 분위기에 치유를 받습니다. 학교 안 가려고 하던 아이가 눈만 뜨면 학교 가겠다고 한다더군요. 우리 학교를 몇 달 다니면 아이들 눈빛부터 달라집니다. 행복해하고 더 활기찬 아이들이 되어가는 거죠.” 송 분교장의 말이다.

그는 학생들의 학력도 평균적으로 우수하다고 전했다. 이는 소인수 학급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가정교사나 과외교사에게 수업을 받듯이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학교가 이렇게 되자 학생과 학부모, 지역민과 동문들의 반응 또한 뜨겁다. 특히 동문회는 학교를 살리자는 뜻을 모아 장학금 등을 지원하며 학교의 둘도 없는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나홍근 총동문회장은 분교가 되어버린 학교를 다시 살리는 데는 열 곱의 노력이 필요하고,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이 무척 고생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가율분교의 학생들을 최고로 잘 가르치고 싶습니다. 나중에 우리 학교에서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면 그것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겠지요.” 현재 가율분교 학생 중 반은 지역 학생, 반은 외지에서 일부러 가율분교를 찾아온 학생들이다. 일부러 찾아오는 학생이 있다는 것은 교육의 질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 해병대캠프에 간 가율분교의 학생들. © 안성신문

가율분교 인근의 주민들과 동문들은 ‘가율분교’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주민들에게 가율분교는 영원한 가율초등학교일 뿐, 가율분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문회가 ‘학교를 살리자’고 발 벗고 나서는 것도, 주민들이 학교발전의 기대감을 갖고 열심히 입소문을 내는 것도 학교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폐교도, 통폐합도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누가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말하는가? 작은 학교는 단지 숫자로 평가되어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가율분교는 인근 마을의 중심이고 한 지역의 미래를 상징한다. 시내권의 큰 학교 못지않은 가치가 가율분교에서 자라고 있다.


<안성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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