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환자 교감 그 이상 치료법 있을까?

[사는 이야기] 침 놓을 때 의사와 환자 교감 중요 전화 통화는 좀...

박호 한의사 | 기사입력 2013/03/27 [05:15]

의사와 환자 교감 그 이상 치료법 있을까?

[사는 이야기] 침 놓을 때 의사와 환자 교감 중요 전화 통화는 좀...

박호 한의사 | 입력 : 2013/03/27 [05:15]
할머니 한분이 누워 계시고 나는 침을 놓고 있었다. 몇 군데 침을 놓고 있는데 갑자기 “귀 뒤에도 두 개만 꽂아주세요.”라고 말했다. 한 개도 아니고 세 개도 아니고 딱 두 개만 꽂아 달라 하신다. 왜 그 자리에 두 개를 꽂아달라고 했을까? 자못 궁금해서 물어봤다.
 
 “어디가 아프신데요?”
 
그러자 할머니는 그냥 거기 놔달라는 눈치만 하신다. 내가 재차 물어봤다.
 
“어디가 아프신지 말씀하셔야지요.”
 
그러자 할머니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이런 경우 의사들은 불쾌해한다. 환자의 증상을 가지고 진단을 해서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침 놓을 자리까지 정해서 얘기하니...
 
이 일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들이고 시간 들여서 공부해왔는데, 여기 놓으라면 여기 놓고, 저기 놓으라면 저기 놓는 신세가 되었나? 하는 생각들로 착잡해지기도 한다. 임상을 얼마 안한 젊은 한의사들의 경우 자괴감이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경우라고 한다. 
 
물론 환자의 마음은 이해를 한다. 여기에 침 한 대 맞으면 나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다리가 아파서 왔는데, 한의사가 허리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허리만 치료하고 다리는 거들떠보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저 한의사는 내가 어디 아픈지 모르나보다 하는 생각에  다시 말하곤 한다. “원장님 다리가 아픈데요.”라고.
 
이럴 때 다리에 침을 안 놓으면 정말 잘 안 낫는다. 환자의 마음을 불안하게 해서 보내고 무슨 병이 낫겠는가? 그래서 다리에도 침을 놓는다. 그럼 정말 잘 낫는다.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묘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디가 아픈지 말씀하셔야 해요. 귀 뒤에 침 두 개 놓으시려면 집에서 놔도 되지 않겠어요. 아픈 곳을 말씀하시면 제가 왜 아픈지를 따져봐서 침을 놓아야 해요. 그냥 제가 귀찮아서 귀 뒤에 침 두 방 따당 놓고 가버리면 환자만 손해지요.” 그러면서 두통을 치료하는 침을 몇 군데 놓는데 할머니가 좀 미안했는지, “네 미안해요.”라고 하셨다. 물론 귀 뒤에도 침을 두 방 놓아드렸다.
 
“여기 피 좀 빼주세요.”
 
한의원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일전에 어떤 한의사가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 성질이 난다고 했다. 피나 빼주려고 그 힘든 공부를 했나하고 좌절감을 느낀다고 했다. 요즘은 목욕탕에서도 수십 군데 부항을 떠서 피를 뺀다는데! 자부심 강한 한의사들이 슬퍼지는 대목이다. 예전과 다르게 한의원 경기가 어렵고 환자도 줄어서 결국 다 해주기는 하는데 화가 나곤 한다고 하소연 한다.
 
침을 다 놓고 일어서려는데, “원장님, 여기도 아픈데요.” 다시 침 놓고 일어서려는데, “원장님, 여기도 치료해주면 안되요?” 이런 경우도 많다. 한번에나 말하지. 한의원 한번 와서 오만 병 다 치료하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다.
 
이런 경우 많은 한의원에서는 여러 군데 침을 놓으면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한 가지만 치료해준다. 어떤 한의원에서는 여기저기 다해주기도 한다. 나는 한 자세로 치료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한다. 답은 없다. 여러 군데를 치료해서 치료가 안된다는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우리 한의원은 제법 환자가 많아서 여러 번 오가면서 치료를 할 수 없어 고육지책으로 그리 정했을 뿐이다.
 
침을 맞으면서 전화를 받는 환자도 있다. 스마트폰 시대답다. 아주 급한 전화가 아니면 전화 통화하는 것은 좀 그렇다. 물론 교과서에 침 맞을 때 전화통화를 하지 말라고 나오지는 않는다.
 
침을 맞는 시간은 의사와 환자가 교감하는 시간이다. 환자가 느끼는 침의 여운을 의사도 느낀다. 그래서 침을 놓으면서 집중하고 손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얻으려고 애쓴다. 환자도 그 순간 교감을 하면 치료가 잘된다.
 
그런데 별것도 아닌 시시콜콜한 통화를 하고 있으면 어찌 되겠는가? 나는 앞의 경우들, “여기 놔주세요.”, “피 좀 뽑아주세요.”, “여기도 놔주면 안되요?” 이런 경우 화가 나지 않는다. 아파서 그런건데 얼마나 아프면 그럴까? 하면서 다독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전화통화는 좀 그렇다. 아무리 별거 아닌 병을 가지고 찾아왔어도 치료받으면서 통화하는 것은 좀 아니다.
 
오늘 칼럼은 의학적인 내용이 아니다. 어떤 병에 어떤 치료가 필요하고 뭘 조심하고 그런 얘기가 아니었다. 그냥 이런 일도 있다는 얘기였다. 많은 동료들이 술 마시면서 하소연하는 걸 썼다. 그런데 참 중요한 얘기들이다. 치료실에서 의사와 환자가 좀 더 가깝게 다가가서 집중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걸 가로막는 몇 가지 사례다.
 
물론 의사 입장에서 썼다. 환자입장에서 쓰면 무슨 얘기가 나올지 두렵다. 막 되먹은 의사 놈들, 돈만 밝히고, 실력도 없는 놈들, 사기꾼 같은 놈들, 의사인지 장사꾼인지... 무슨 말이 나올지 솔직히 두렵다. 그래도 기회가 있으면 들어보고 싶다. 아니 인터넷 몇 번만 검색하면 쏟아질 것 같다. 한번 검색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봐야겠다. 갑자기 긴장감이 밀려온다. 
 
글쓴이 : 박호 (동의한의원 원장 , 안양 중앙시장내 동의한의원 사거리, 031-465-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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