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되살아난... '땃벌단'

고엽제 전우회등의 군복 입은 모습에서.. 자유당 말기를 떠올린다.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08/06/14 [13:05]

50년만에 되살아난... '땃벌단'

고엽제 전우회등의 군복 입은 모습에서.. 자유당 말기를 떠올린다.

추광규 기자 | 입력 : 2008/06/14 [13:05]
1953년 6.25가 끝난 후 거리에는 부상을 입은 군인들이 거리를 헤맸다. 성한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각종 부상을 입은 몸으로서 먹고살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었을터.
 
목발을 짚으면서 쇠갈고리가 달린 의수에 모자를 끼워 구걸을 하는게 이들의 일반적 생계유지 수단이었다고 한다. 이들 상이군경들은 이승만 정권의 말기로 치달으면서 정치모리배들의 하수인으로 편입 되었다.
 
이정재의 동대문사단. 그리고 임화수의 반공연예인단이 바로 정치깡패들이다. 이기붕 당시 부통령은 이들을 수족처럼 부렸다. 그 앞에는 '땃벌단'을 앞세우고 말이다.
 
바로 '땃벌단'이라고 불리웠던 이들은 정치깡패들의 등장에 앞서 야당 정치집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6.25 전쟁이 끝난 몇년 간 닳고 닳은 포악한 난폭성을 야당집회에서 유감없이 발휘 했기 때문.
 
이들이 집회에 등장하면 신익희등 노련한 야당 정치인들도 두손두발들고 집회를서둘러  마무리 할 수 밖에 없었다며 노 정치인들은 회고한다. 바로 1950년대 전쟁에서 각종 부상을 입은채 퇴역 한후 정치모리배들의 몇푼 돈에 유혹되어, 난동을 부리는데 동원 되었던 '땃벌단'이다.
 

▶ 1959년 3월 자유당이 말기로 치닫던 시절. 임화수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반공예술단'의 단원들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있다.     © 편집부 ◀

서울 시청광장에서 여의도로 몰려간 2008년판 '땃벌단'
 
2008년 6월 서울 하늘아래 50년전의 땃벌단이 되살아난 듯 하다. 반세기만의 재등장인 것이다. 바로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주를 이루는 천수백여명이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집회를 가진 후 여의도로 몰려가 lpg가스통을 끌어 안고 kbs를 위협했기 때문.
 
고엽제 전우회는 잘알려져 있다시피 월남전과 관련 미군의 고엽제 살포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어 있다 후유증을 앓고 있는 참전 군인들의 단체다.
 
1953년 6.25의 종전과 함께 거리로 내몰렸던 상이군경들과 1973년 사실상의 월남전의 종식과 함께 한국으로 귀국한 후 십 수년후 드러난 후유증으로 앓고 있다는 점이 같은 상이군경이라고 분류한다면 같은 성격일것 같다.
 
이들은 13일 서울 시청앞에서의 집회를 마치고 여의도로 몰려가 <kbs>와 <mbc>를 압박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은 김정일이고 그 일등공신은 kbs mbc 다", "이명박 정부가 공권력을 사용해 친북좌파 반미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kbs로 몰려가서는 "우리는 빨갱이 정연주를 몰아내고 국민의 공영방송을 만들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곱씹어 보자. 2008년 서울 하늘에 다시 살아난 자유당 정권의 '땃벌단'으로서 말이다.
 
 '국민이 성나 있을때 그 여론을 거스는것은 더 큰 화를 불러'
 
자유당의 땃벌단이 다시 부활한것은 다름 아닌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국민들의 반발 때문이다. 촛불시위가 국민참여로 연일 벌어지자 위기에 빠진(?) 이명박 정부를 구하기 위해 자칭 최고 보수라는 이들이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남전 고엽제 참전 회원들의 그 뒷모습에서 맡아지는 냄새는 너무나도 익숙한 냄새다 바로 자유당을 그 당의 뿌리의 근원을 찾아야 하는 한나라당 냄새로서 말이다.
 
자유당의 '땃벌단'과 한나라당의 '월남전 고엽제 참전회원'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오십보 백보가 아닌가 한다. 휠체어에 의지한채 lpg가스통을 끌어안고 심지어 문신 가득한 몸을 드러내놓은채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이들을 한나라당의 '신땃벌단'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자는 이들 사이에서 단 한치의 차이도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자유당 말기의 '땃벌단'과 이제 출범 100일을 갓 지난 이명박 정부가 정권 수호의 앞잡이로 내세운 샴 쌍둥이에 다름 아니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50년만에 서울 하늘 아래 다시 등장한 이들 '신땃벌단'을 어떻게 그 의미를 되 새겨야 할까. 그 답은 '국민이 성나 있을때 그 여론을 거스르는 것은 더 큰 화를 불러 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군중의 분노는 미약한것 같지만 그 힘이 몰아칠때는 역사상 그 어떤 정권도 그 어떤 군주들도 민중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물러 나야만 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말이다.
 
 



김상덕 08/06/14 [15:10] 수정 삭제  
  국가유공자인 상이군경을 욕되게하는 이 기사는 어떤 연유로 올렸는지 .
분명 고엽제 전우회와 국가유공자인 상이군경은 법적 위상과 명예부터 다른데 기사를 쓸려면 알고나 쓰야지 ㅉㅉㅉㅈ
펌돌이 08/06/14 [19:12] 수정 삭제  
 
지금으로 부터 60여년 전...

일제 강점기 말에 소리없이 등장하여 날쌘 몸놀림과 천부적인 싸움 감각으로 한반도의 모든 야인을 무릎 꿇린 사내가 있었다.

조직없이 홀홀단신으로 무패의 행진을 이어가며 주먹계의 '황제'라 불려도 모자람이 없었던 사내.
각 지역을 대표하던 야인들도 수순을 두어 형님으로 모신 사내.



후일 이정재의 부하들에게 집단 리치를 당하여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였고, 무패신화를 자랑하던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정재를 용서한다.

광활한 중국대륙과 한반도 전역을 주름잡으면서도 단 한건의 전과 기록조차 없었던 그는 이른바 "협객"으로 불리기에 이르렀으나 시간의 흐름안에 시라소니 역시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는 아시아의 최고의 싸움꾼이었다. 3m를 도약해서 그대로 이마를 들이박는 놀라운 민첩함과 그의 당구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하체의 제공시간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의연함과 태연함, 그리고 깡은 놀라움 그 자체라고 할만 하다. 자신의 허벅지에 태연하게 타오르는 석탄을 잡아다 담배를 붙이고, 40:1이라는 놀라운 전설을 남겼다.
또한 그의 의리와 '협객'이라고 부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남을 탓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자신을 배신하였더라도 용서할 수 있는 대범함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 그는 하나님의 성경을 부여 잡으며, 영원한 어둠과 빛의 교차점으로 사라졌지만, 그는 아시아의 최고 싸움꾼이자 협객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리라.



1916년
2월 29일 평안북도 신의주 미륵동에서 출생



어린 이성순 미륵동 동네 신의주 정복기


보통학교 때부터 유난히도 일본 애들을 팼다


어린 나이에도 왜경의 감시를 받았다

1929년
불곰(친일파 긴상)과의 대결 승리

1932년
밀무역에 뛰어 듦



시라소니라는 이름


기차 - 밀수



배 - 거룻배 밀수


중국인 강도들과의 싸움



헌병대와의 싸움



명견 도비와의 싸움

1933년
정경봉(독종 꽈리 주둥이)과의 결투 승리

1934년
누님이 계신 상해를 다녀오다 - 술집 용심봉과의 싸움 승리



친구를 때린 진남포 깡패들과의 싸움 승리


백두산 훈련


호랑이와의 결투

1935년
도박장 습격

1936년
평양 최고의 주먹 박두성을 찾아가 결투, 승리


평양의 이화룡


용강의 아오끼

1937년
신의주 청송회관 용심봉 장손과의 대결


신의주 도피생활


신의주 헌병대장



기차도주 때 일본 헌병 때려뉘다



7월7일 대동아 전쟁



군부반장 하야시(검도3단)와의 대결 - 결투의 의미



4개월후 신의주 일시귀국 어련공판장 중개인 보스와 시비, 항복 받아 냄

1938년
외환 관리법 사건(돈배)
6월 천진 도박장 도미나 까페에서 일본헌병 3명을 때려뉘다

8월 신마적과의 대결 승리

마약장사 야마모토 사건과 18기의 명인 북경의 마오와 대결 승리
중국의 천하장사 무송과 대결 승리

1939년
상하이 까페에서 헌병대장과 대결 승리

새끼 손가락 사건

이상대와의 대결 승리

시라소니의 박치기에 하얼빈의 주먹짱 만가희의 얼굴전체가 함몰되다

상해 헌병대장 요시무라가 박치기를 맞고 병원에 실려가 3일만에 겨우 깨어남

중국 거지패 오야붕 마차오
일조삼
모일화
고여장

1940년
국제 도박장사건

상해 프랑스 조계지 미국인 탈영병과의 격투
러시아 조계지 소련인 두목과 결투 승리
영국 조계지

11개 조계지 정복사
("영국/러시아 - 독일/프랑스/미국/이탈리아 - 오스티라아/일본"을 포함한 8개국에 "벨기에/스페인/네덜란드"를 더한 11개국)11개국 28개 조계지 최고 주먹들 장악사

1941년
북경 일번지 까페에서 일본여인 지혜꼬에 관한 사건
마적단 소굴로 들어가 마적단 초토화

1942년
개봉 용정유원지에서 일본 특무 대원과의 결투

1943년
친구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

일본 꼬구라 형무소수감 중 일본 최고의 주먹 이즈마 누임

1945년
7월 해방 15일전 천지외교 공장에서 카네미야 패거리 40명과 대결 승리

8월 15일 해방
이북생활
권총을 든 러시아 대장 총성과 박치기의 대결

1946년
1월 남하 개성당도

2월 종로 우미관에서 최고의 주먹 김두한과 만남

명동파 행동대장 무억을 누름

3월 인천행 인천주먹들 정복사 - 지금도 "시라소니 떴다"라는 소문에 우는 아이들도 조용

11월 서북청년단이 조직 됨

1948년
봄 인천떠나 서울도착 서북 청년단 감찰부장이 되다

10월 동국대부근 일본인 아파트

1949년
이진옥과의 결혼

백범김구 당시 국군 장교이던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

1950년
6월 25일 전쟁(아내 임신4개월)

호림부대(비 정규부대)창설

9월 대원활약 15일 인천 상륙 작전
HID 대원, 북상하는 아군부대의 최 선방에서 활약

10월 묵호산간 대관령 적군 30명 기습섬멸 함흥까지 북진

11월 26일 중공군 대공세

1951년
1.4후퇴

봄 부산에서 10명패거리에 매맞는 이정재 구해줌
이정재가 이권 도움을 청하고 도와줌으로 린치사건 전까지 생활비를 댐

1952년
김일환과 만나 제주도로 장도영 만남

조봉암 선거 개입 땃벌 때 물리 침

아내와의 재회

1952년
8월 4일 오후 조봉암 김성주와 헤어짐

황병관 살해한 마사이찌 혼냄

3.1부대창설(현공수부대) 부부대장으로 활약 미군장교와의 대결

1953년
이정재와의 사건(린치)

종로5가 보령약국자리 반도병원-필동단칸 집-백병원 입원

1954년
초봄 백병원 나섬

북쪽으로 발길 옮김 팔당 산기슭에서 복수를 준비(칼쓰기, 사격연습, 무술연마)

몇번이나 저격권안에 들어온 이정재, 하나님이 살려 줌(HID 김일환, 내무부장관 한신)

1955년
인천행 질서 부두를 바로잡다

1956년
신익희 선거운동 / 장면 박사로부터 편지 옛 소공동에서 자리잡은 경향신문 사옥에서 만남 선거운동
4월 인천유세 3트럭의 인천 정야원(상이군인들)

당선 후 헤어짐

1958년
조병옥 선거운동

1960년
2월2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 서거

이승만 3월의 대통령과부통령 선거에서 야당 대통령 입후보자인 조병옥이 병으로 죽음으로써 쉽게 당선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데모

4월 19일 4.19의거

4월 21일 전 국무위원 사표 제출

4월 25일 대학 교수단 데모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발표

4월 27일 이승만대통령 국회에 사표 제출

4월 28일 과도 내각 수립, 4월 28일 이기붕 일가 자살

5월 29일 이승만 대통령 망명으로 끝나게 된다.

1960년
7월 21일 아들 이의현 태어나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한 군인들이 반공과 부패, 부정의 일소 및 국가 재건을 내세우며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혁명
이정재와의 만남 - 무릎꿇고 빎과 용서

5월 21일 이정재 등 깡패 200여명, 서울 시내 가두에서 군인들이 조리돌림

명현 교회 나가 이장수 목사님에게 권총과 칼을 바침

5월 22일 최고회의, 용공분자 2천여명, 깡패 4천2백여명 검거 발표
6월 4일 깡패 965명, 국토개발사업장에 작업 동원

8월 17일 이정재(李丁載)에게 사형이 선고되다.
사형은 9월 19일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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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월 25일 시라소니 이성순님 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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