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8년전 고인된 배우 '이은주'를 그리는건!

배우 고 이은주씨의 초등학교 담임인 김준기 시인을 만났다

조종안 | 기사입력 2013/05/16 [07:10]

'김준기' 8년전 고인된 배우 '이은주'를 그리는건!

배우 고 이은주씨의 초등학교 담임인 김준기 시인을 만났다

조종안 | 입력 : 2013/05/16 [07:10]

▲ 영화 <연애소설> 속 고 이은주씨.(출처: 팝콘필름)     ©조종안

 
지난 2006년 8월 30일 군산 경포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43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시(詩) 창작에 몰두하다 4년 전 위암과 대장암 수술을 연거푸 받고 투병 중인 김준기(70) 시인. 그를 만나기 전 그의 블로그를 방문했다.

클릭과 동시에 청아한 목소리가 매력인 양희은의 <새노야>가 은구슬이 쟁반 위로 굴러가듯 흐른다. 마우스를 살짝 움직이니 지난 2005년 고인이 된 영화배우 겸 탤런트 이은주양 얼굴과 마주친다. 맑고 청조한 눈빛의 이양 사진 밑에는 <은주를 노래함>이란 제목의 시(詩)가 마음을 아리게 한다.

한결같아라/ 은주는 구슬/ 나는 너희를 구슬이라 불렀다/ 너희들을 구슬로 꿰어/ 보물로 삼으려 했거늘/ 은구슬은 저만치 굴러서 홀로/ 깜깜한 밤 반짝이는 별이 되어/ 미리내 여울 되어 흐르는구나// 한결같아라/ 어느 날 밤하늘에 산산이 흩뿌려진/ 은빛 별무리 속에서/ 피아노 건반 위에서 하얗게 웃는 별 하나를 찾아/ 그 옛날처럼 다시 구슬로 꿴다. (여울 김준기)

깊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자살, 가족과 팬들을 슬픔에 빠지게 했던 이은주양. 그녀는 1980년 군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다녔다. 김 시인은 군산 부설초등학교 4학년 때 이양의 담임이었다. 제자들을 구슬로 표현한 글 마디마디에 안타까움이 배어나고, 사랑이 넘쳐난다. 그는 시 한 편으로 부족했는지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추모의 글을 덧붙인다.

"초여름 깊은 밤, 무심히 흐르는 별 강 미리내를 봅니다. 문득 벌써 삼 년이나 지나버린 은주의 모습이 미리내 여울과 함께 흐르고 있어 깜짝 놀랍니다. 초등학교 4학년 제자인데 피아노 앞에 앉은 모습이 유난히 귀여운 아이였죠. 나는 그 아이가 피아니스트로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모습을 밤하늘 별 강 여울 속에서 보았습니다."

지난 2월 22일은 이양 사망 8주기였다. 세월이 지났음에도 팬들의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고 한다. 충무로의 별이었다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미리내 여울 되어 흐르는 이은주양. 그녀도 스승의 날(15일)을 맞아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김 시인)이 하루 빨리 쾌차하길 비는 기도와 함께 애틋한 사연이 담긴 답장을 소쩍새 울음소리에 담아 띄웠을 것으로 여겨진다.

'사제지정'이 오롯이 묻어나는 편지, 볼수록 아름다워


▲ 환한 웃음을 지으며 옛 제자들을 자랑하는 김준기 시인     ©조종안

지난 일요일(12일) 오후 김준기 시인을 그의 서재에서 만났다. 암과 투병 중이라고 해서 내심 걱정했는데 괜한 우려였다. 고위 공직자들의 만성적인 부조리와 윗사람 눈치 보기 행정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농담도 하면서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에게 누가 환자라 하겠는가. 은은한 녹차 향은 분위기를 더욱 온화하게 해주었다.

김 시인의 제자 사랑은 이은주에서 그치지 않았다. 1963년 군산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상도 벽촌으로 첫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가르쳤던 제자들이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 카페를 개설하고 자신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준 스승이 방문해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메일을 보낸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선생님 저 암주입니다. 동물원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저희에게 목이 긴 기린을 만들어주신 선생님. 텅 빈 운동장 한가운데 길게 목을 뻗고 있는 잔등 위로 선생님 몰래 올라타고 놀았음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아침 조회시간 왔다갔다 돌아보시는 선생님께 예쁘게 보이고 싶었음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시골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시겠다고 실험실을 갖춘 것도 정말 멋져 보이는 우리 선생님 사랑이었습니다.

김득진 선생님 심부름으로 종이(?) 할머니 집에 선생님을 모시러 갔을 때 문을 연 순간 흐트러진 이불을 보고 개켜드리고 싶었음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명숙이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실 때 말없이 가슴 아파했음은 분명 나의 첫사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추억 속에 자알 살고 있습니다. 조만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정암주 올림)


훈훈한 사제지정(師弟之情)이 묻어나는 감동적인 글로 3년 동안 담임을 맡았던 스승에게 초청 메일을 보낸 제자는 경북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에 자리한 대본초등학교 23회 졸업생 주진필, 정암주, 김형주 등. 선생은 많지만, 스승은 드물다는 요즘, 볼수록 흐뭇해지는 광경이다. 글에서 스승에 대한 제자의 존경과 사랑이 오롯이 묻어나고 있다.

▲ 문병 온 제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조종안
▲ 1944년 개교 후 1972년에 처음 만들었다는 대본초 졸업앨범, 가운데는 김준기 선생님     ©조종안

김 시인이 재직하면서 처음으로 교가와 교기를 만들었고, 처음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처음으로 졸업앨범을 만들었고, 처음으로 외국인들에게 연구수업을 공개했고, 처음으로 경주 월성 학생체육대회 육상 종합우승을 해서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선생님'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단다.

김 시인은 "제가 1969년~1973년까지 재직했던 대본초등학교 운동장에 서면 바닷물이 하얗게 부서지는 대왕암과 동해의 장엄한 일출도 볼 수 있었는데, 2010년 졸업식(61회)을 끝으로 폐교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얘기를 듣는 순간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흰 체육복 차림의 선생님 호각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뢰하는 교육 풍토 조성하려면 학교도 학부모도 변해야 합니다!"

김 시인의 첫 부임지는 경북 선산군의 오지 학교. 경주, 포항, 울산 등에서 17년 근무하다가 1979년 전북 무주군으로 발령받았다. 그가 경상도에 재직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점은 지역 차별. 학생·학부모와는 소통이 원만하게 이뤄졌는데, 교장과 동료 교사들의 외면, 특히 '전라도 출신은…' 소리가 가장 가슴 아팠다고 한다.

전남 출신 선배 교사가 아들 문제로 곤궁에 빠지자 본적을 경상도로 옮겨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고, 교장으로 승진하는 과정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고 한다. 결정적인 사건은 친목회 회장(교장을 보좌하는 주임교사)을 뽑는 선거가 끝나고 상대 측 교사 4~5명에게 테러를 당하고부터였다.

"선거란 한 사람은 결국 탈락해야 하므로 경쟁이 심하다 보면 패싸움으로 변질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전라도 XX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설쳐!' 소리가 주먹보다 더 아프게 느껴지는 거예요. 이듬해 연구학교로 지정됐을 때도 교장이 비웃는 투로 '김준기! 연구주임 시켜줄까? 니는 안 돼, 능력만 갖추고 하는 게 아닌 기라'라고 하는데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그는 재미난 얘기도 들려주었다. 울산 80리, 경주 80리, 포항 80리 위치의 바닷가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하루는 선교사들이 참관하는 공개수업이 끝나고 강당에서 조촐한 막걸리 파티가 있었다. 멍게(우렁쉥이)를 안주로 내놨는데 선교사들이 맛을 보고 '원더풀!'을 외쳐댔고,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멍게를 '원더풀'이라 불렀다 한다. 멍게 미국말이 '원더풀'인 줄 알았다는 것.

김 시인은 "만약 경상도에 계속 있었으면 '문제교사'로 찍혔을 것"이라며 "학부모가 신뢰하는 교육 풍토를 조성하려면 모두가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삶의 지혜와 미래의 지평을 보여주는 인도자가 돼야 하고, 학부모는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의 현혹에서 벗어나 올바른 자녀교육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그는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공교육 발전에 부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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