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만난 '저승 대왕' 전 대통령 생각나네

전북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 숲의 만산홍엽에 감탄사가 절로...

조종안 | 기사입력 2013/11/14 [06:17]

산에서 만난 '저승 대왕' 전 대통령 생각나네

전북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 숲의 만산홍엽에 감탄사가 절로...

조종안 | 입력 : 2013/11/14 [06:17]

▲ 청량산 문수사 주차장에서 내려다본 고창군 고수면 일대     © 조종안


입동(立冬) 체면치레를 하느라 그랬는지 아침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졌던 지난 주말. 아침밥도 거르고 스캔할 사진을 고르고 있는데 아내가 말을 걸어왔다. 

"이맘때면 단풍이 절정에 달했을 것 같은데, 가까운 곳으로 바람이나 쐬러 나갔으면 좋겠네요. 지난번 다녀온 대둔산도 좋고, 전남 영광도 좋고. 점심은 도로변 기사식당에서 백반을 사 먹고요. 오늘 나이트 근무여서 오후 5시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거든요."

"(한참 있다가) 그러지 뭐. 그럼 5년 전인가.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다녀온 고창 청량산(문수산) 문수사는 어때? 선운사 명성에 가려서 그렇지 그곳 단풍 숲길이 끝내주거든···."

아내는 "그곳도 좋을 것 같다"며 더는 묻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지인과 만나기로 약속한 오후 3시 30분까지 다녀오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군산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고창군 문수사(文殊寺) 입구까지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중간에 점심도 사 먹어야 하니 시간이 빠듯했지만, 분위기를 깰 것 같아 아무 약속도 없는 듯 다녀오기로 했다.

맛깔스러운 밑반찬이 푸짐하게 차려 나오는 기사식당 백반을 유달리 좋아하는 아내는 운전 중에도 거리의 간판을 주시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전북 고창군 고수면에 도착해서도 산장, 펜션 등만 보일 뿐 기사식당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점심은 단풍나무 숲길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사 먹기로 하고 문수사로 방향을 잡았다.

온 산이 만산홍엽, 무지개가 따로 없어 


▲   늦가을 햇볕을 머금은 문수사 일주문  ©조종안

▲ 색감이 매혹적인 문수사 단풍나무 숲     © 조종안

 
청량산(621m) '문수사 단풍나무 숲'(천연기념물 제463호)은 해발 300m 높이에 보호림으로 조성된 우리나라 대표적인 단풍나무 숲이다. 운치 넘치는 숲길 좌우에는 수령이 100~400년으로 추정되는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전 11시 30분 주차장에 도착, 차에서 내리니 오색으로 물든 산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일주문을 지나 가을이 짙게 깔린 숲길에 들어서니 주위가 고즈넉하다. 호흡을 숲과 함께하니까 마음이 한가롭고 평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곳 단풍나무들은 지름 30~80cm, 높이 10~20m, 가슴높이 둘레 2~3m 크기의 노거수들로 떡갈나무,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과 어우러지면서 온 산을 '만산홍엽'으로 물들여 그야말로 장관이다.  

▲ 조화를 이루는 단풍과 아름드리 느티나무     © 조종안
 
 

▲ 서로 모델이 되라고 권하며 사진을 찍고 찍어주는 부부     ©조종안

 
무지개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햇빛에 반사되는 다양한 나뭇잎 색감이 진짜 물감을 풀어놓은 듯 찬연해서다. 감나무에 꽃봉오리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이 한 몫 더한다. 자연이 제공하는 아름다운 선물에 매혹된 카메라맨들이 앵글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서로 모델이 되라고 권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찍어주는 중년의 부부가 무척 여유롭고 행복스럽다.

어른 두 사람이 팔을 뻗어야 겨우 안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호남 제일의 문수도량과 단풍나무 숲을 지키는 천하대장군처럼 늠름하고 호기롭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편 아쉬움도 느낀다. 물소리가 사라진 계곡과 물기가 바싹 말라버린 다양한 형상의 바위들이 갈증을 일으키게 했기 때문이었다.

풍경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리는 '문수사' 

▲ 문수사 입구로 오르는 돌계단     © 조종안
▲ 단아함을 보여주는 돌계단과 불이문.     © 조종안


수목이 빽빽한 숲길을 지나니 문수사로 오르는 돌층계가 나온다. 문수사 불이문(不二門) 현판이 눈길을 끈다. 일주문, 불이문, 사천왕문 등은 대웅전 방향으로 늘어서 있는 게 일반적인데 문수사 불이문은 대웅전 측면 방향으로 나 있는 게 특이하다. 만세루 정면이 아닌 측면에 내걸린 문수사 현판도 다른 사찰과 달라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문수사는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백제 의자왕 4년(644) 당나라에서 문수보살 가르침을 깨닫고 귀국한 자장율사가 산세와 수세(水勢)가 중국과 비슷하여 도량으로 삼고자 창건한 천 년 고찰로 알려진다. 전남 장성과 전북 고창의 경계를 이루는 청량산(淸凉山) 아래 자리한 호남 제일의 문수도량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 말사이다.

창건 설화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는 길에 문수산 석굴에서 7일 동안 기도를 드리다가 땅속에서 문수보살이 나오는 꿈을 꾸고 그곳을 파보니 커다란 문수보살입상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세우고 '문수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 그 후 산 이름도 청량산, 문수산, 축령산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 청량산 문수사 대웅전 모습. 겉으로도 세월의 나이가 느껴진다.     © 조종안

 
곱게 다듬은 자연석 위에 세운 대웅전은 단정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건립 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퇴색된 단청과 문살 등에서 세월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다포계 건물로 순조 23년(1823)과 고종 13년(1876)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며, 법당 중앙에 목조 석가여래 좌상, 좌측에 대세지보살 좌상, 우측에 관세음보살 좌상을 모셨다.

대웅전 뒤에 자리한 문수전 역시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로 영조 40년(1764) 신화·쾌영 두 승려가 선운사에서 이주하여 1차 중수를 하였고, 대웅전 뒤 양진, 암도 두 승려가 창건했다 한다. 지금의 문수전은 근대에 새로 지은 것으로 현판은 추사 김정희 글씨라고. 법당에는 조선 말기 석제로 만든 문수보살입상이 안치되어 있다.

산세가 고요해서 그런가. 풍경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린다. 문수사 경내에는 석가여래 좌상을 모신 대웅전(전북유형문화재 제51호)과 문수전(전북유형문화재 제52호)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해 만세루, 명부전, 금륜전(삼성각), 한산전, 나한전 산문 등의 당우를 거느린 아담한 사찰로, 성오와 상유 두 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대통령이 떠올랐던 명부전 



▲ 온화한 미소를 머급은 명부전의 지장보살과 시왕 좌상     © 조종안


목조 지장보살(전북 유형문화재 제208호)과 10 시왕좌상 등이 봉안된 명부전(冥府殿)에서는 기억의 노트에서 지우고 싶은 인물들이 떠올라 마음이 괴로웠다. 사람이 죽으면 생전의 죄과에 따라 심판을 내린다는 저승 대왕들을 만났기 때문. 불전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왼쪽에 홀수(1·3·5·7·9) 대왕을, 오른쪽에 짝수(2·4·6·8·10) 대왕을 모시고 있었다. 

사람은 죽어서 명부(저승)에 갈 때 처음 7일에 진광대왕, 두 번째 7일에 초강대왕, 세 번째 7일에 송제대왕, 네 번째 7일에 오관대왕, 다섯 번째 7일에 염라대왕, 여섯 번째 7일에 변성대왕, 일곱 번째 7일에 태산대왕, 100일째 평등대왕, 1년째 도시대왕, 3년째 전륜대왕 등 10명의 왕 앞을 차례로 지나며 재판을 받는다고 한다.

그중 함정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거나 막힌 길을 보고도 지나친 자들이 시퍼런 칼날로 살점이 베어져 나가는 고통을 받는 검수지옥(오관대왕)과 불효하고, 화목을 깨뜨린 자, 거짓말을 잘하거나 이간질을 일삼는 자가 혀를 뽑히고 소가 밭을 갈듯 종일 쟁기를 끌어야 하는 발설지옥(염라대왕) 내용은 무지하고 독선적인 중생들에게 전하는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생전에 역적이나 살인 등의 강력 범죄자가 독사들에게 물어 뜯기고 휘감기어 고통당하는 독사지옥(변성대왕)과 인간 시절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아 잘 먹고 잘살던 죄인이 발가벗긴 채 침상에 묶이어 사지육신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당한다는 철상지옥(평등대왕) 설명은 거짓과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전직 대통령이 떠올라 뒷맛이 씁쓸했다. 

그럼에도 지장보살은 온화하고 자애로운 미소만 던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잡념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밖에서 부르는 아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시계는 오후 1시 10분을 가리키고, 늦은 '아점'을 먹기 위해 선운사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