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공동체운동본부 '강진 해남' 생태기행

카리나 선교사 | 기사입력 2013/12/08 [07:28]

생태공동체운동본부 '강진 해남' 생태기행

카리나 선교사 | 입력 : 2013/12/08 [07:28]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기장 생태공동체운동본부’에서 주관하는 남도 생태기행에 다녀왔다. 매번 생태본부에서 가는 기행의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만나며 영성을 고양시키고 생태기행을 통해 회원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기행의 특별한 점은 장흥 유기농공동체 강진과 해남, 무안의 농촌교회를 방문하여 도농간직거래와 먹거리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슬로 시티 (slow city)남도를 기행하며 하나님의 창조세계 보전의 중요성을 깨닫고 삶 속에서 실천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번에 가장 좋았던 점은 또래의 젊은 사람과의 교제였다. WCC에서 함께 부스에서 일했던 생태본부의 김민하씨와 생평 기독연대의 실무자 이광민씨가 기행에 함께 참여했다.
 
첫 일정으로 우리는 유기농사를 짓고 있는 곳에 방문했다. 기장소속의 생협을 준비하시는 분으로부터 십 년간의 유기농사에 대한 이야기, 먹거리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쉬운 말로 친절히 설명해주시면서 도시 주민들을 이해하려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특히 나는 농업 생태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인상 깊게 남는 시간이었다.
 
다음 일정으로 가우도에 방문했다. 가우도는 지인이 사는 완도와 가까운 곳이라는 말에 놀랐다. 왜냐하면 완도는 내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고향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날은 날씨가 좋지 못했다. 구름이 짙게 깔리고 이슬비가 내렸다. 하늘과 바다는 내내 무채색 회색빛이었다.
 
주변의 경관, 작은 소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조용하게  섬을 산책했다. 그날의 하늘과 바다를 한국말로 잿빛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바다’의 어원이 강물과 여러 내천의 물을 모두 받아들인다는 데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
 
저녁에는 인근의 칠량교회에서 생태기행의 여는 예배를 드렸고 공동식사를 했다. 어떤 분이 나에게 김치를 권해 주셨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전라남도의 식품은 양념이 진하기로 유명해서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도 작년 한국 친구의 집에서 식사했을 때 고생을 하셨었다.
 
둘째날 아침, 단풍이 한창인 유치자연휴양림을 산책했다. 아침식사 후 백년사에 가기 위해 ‘땅끝’이라는 곳에 갔다. 이 곳은 정말 한반도의 끝인 것 같은데, 한반도 밖에 땅이 없는 뜻하는 걸까? 이곳의 경치는 매우 아름다웠고 근처의 숲길을 걸으며 나무의 기운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바로 옆에 다산초당이 있었다. 이곳은 다산(1762~1836)이 유배생활 열여덟해(1801~1818)중 십여 년을 생활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손꼽는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다고 한다. 그의 실학사상은 철학, 과학과 정치의 분야에서 잘 나타났다. 또 정조황(1776~1800)과 서로 동반자로 의지하며 지냈다고 한다.
 
이후, 신학자이자 시인이였던 고정희선생님의 생가에 방문했다. 그녀는 시를 쓰는 한편 광주 YWCA 간사와 크리스찬 아카데미 출판부 책임간사, 가정 법률 상담소 출판부장 등을 지내며 사회 활동을 했고, 특히 1980년대 초부터 여자와 남자가 서로 평등하고 자유롭게 어울려 사는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여성주의 공동체 모임’에 동인으로 참여해서 역할했다. 1983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탔다. 1991년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 사고로 작고했다.
 
마지막 저녁이 찾아오고, 우리는 새로 리모델링한 아름다운 한옥집에 묵었다. 첫 프로그램으로 안중식 목사님이 ‘이웃의 정’에 대한 강연을 해주셨다. 우리 동네, 나라, 지구에서 이웃들이랑 어떻게 잘 지낼 것인가? 라는 주제였다. 우리는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을 가진 뒤, 간단한 레크레이션과 함께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밤에는 캠프파이어를 하며 기행에서의 느낀점을 나누었다.
 
마지막날 아침, 우리는 해돋이를 보러 해변가에 산책을 갔다. 아침 식사 이후 증도에 가서 염전을 구경했다. (람사르)습지생태를 견학하며 염생식물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후  해변을 산책하였는데 나는 맨발로 백사장을 걸으며 바닷물과 부드러운 모래를 느꼈다.
 
마지막 일정으로 ‘문준경 순교 기념관’에 방문했다. 1891년에 출생한 준경전도사님은 시가에서 학대당해서 목포 북교동교회에서 17살때 세례를 받았다. 1931년에 서울에서 신학원을 다녀서 간사가 되였다. 1935년부터 한국 남해의 섬에서 선교활동을 하며10개 교회들 설립했고 여300명을 개종시켰다고 한다.
 
이번  2박 3일간의 생태기행 은 도시를 벗어나 맨발로 숲길과 바닷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운행하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출처: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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