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팔일(四月八日) 성탄일(聖誕日)을 봉축하면서"

달력에도 적혀있는 성탄일', 꼭 예수만을 위한 건 아닙니다

조종안 | 기사입력 2013/12/24 [04:16]

"사월 팔일(四月八日) 성탄일(聖誕日)을 봉축하면서"

달력에도 적혀있는 성탄일', 꼭 예수만을 위한 건 아닙니다

조종안 | 입력 : 2013/12/24 [04:16]
오는 25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일이다. 기독교인들은 크리스마스(Christmas), 성탄절(聖誕節) 등으로 불리는 이 날을 부활절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명절로 꼽는다.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눈처럼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징글 스틱 소리가 귀에 감기는 캐럴, 선물 보따리를 짊어진 하얀 수염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모습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요즘 성탄절은 종교와 상관없이 한국인 대부분에게 한 해를 마감하는 세시로 인식된다.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은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오색불빛으로 반짝이는 거리의 트리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캐럴은 구세군의 종소리와 함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세밑 풍경의 상징이 됐다.

한국의 성탄절 역사는 격변기였던 19세기 후반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구한말 서양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확대됐으나 초기에는 신도가 많지 않았고, 기독교를 백안시했던 일제의 탄압으로 사회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교회와 미션스쿨이 하나둘 세워지고, 기독교청년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점차 대중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 군산시내 어느 통닭집에 설치한 크리스마스트리     ©조종안

 

예수 그리스도 탄생일만 '성탄절' '성탄일'일까

"기독교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의 탄생 기념일. 성탄일(聖誕日),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도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사전에서 찾은 성탄절(聖誕節)에 대한 정의다. 두산백과사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로 요약하고 있다. 민중엣센스 국어사전(1974년 발행)도 ① 크리스마스 ② 12월 24일부터 1월 1일 또는 6일까지 성탄(聖誕)을 축하하는 명절이라 풀이한다.

우리나라 현행법인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2조에 의하면, 국가에서 공식 인정하는 'OO절'은 삼일절(3월 1일), 제헌절(7월 17일), 광복절(8월 15일), 개천절(10월 3일) 네 개밖에 없다. 그럼에도 TV 방송을 비롯한 각종 언론과 관공서, 심지어 달력에도 12월 25일을 '성탄절'로 표기하고 있다. 40년 전에 발행된 국어사전도 크리스마스로 풀이하고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만.

"크리스마스하고 '짬뽕'된 것 같네!"


▲ 1932년 사월초파일을 앞두고 제작한 당시 조선불교 선교 전단     © 조종안

 
최근 재미있는 자료를 하나 발견했다. 불기 2959년(1932년) 사월초파일을 앞두고 '조선 불교 선교양종 중앙교무원'에서 배포한 선교 전단지다. 당시 2만여 장을 인쇄해서 배포했다는데, 제목은 '성탄일(聖誕日)을 봉축하면서'다. 여기서 '성탄일'이 눈길을 끌었다. 앞의 '사월 팔일'을 빼면 기독교 단체에서 제작한 인쇄물로 착각하기 쉬울 것 같았다. 함께 구경하던 지인도 "크리스마스하고 '짬뽕' 된 것 같네!"라며 웃었다.

군산 동국사(東國寺) 주지 종걸 스님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성탄절'은 우리나라 현행법령에 규정된 공식 명칭이 아니므로 대중언론과 달력 제작업체는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며 "성탄절은 말 그대로 성인(聖人)이 태어난 날로, 모든 인류가 추앙하는 예수·석가모니·공자·맹자 탄생일이 성탄일이라는 뜻이지 오직 예수 탄생일만 성탄절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종걸 스님은 "기독교 신자들과 불교 신자를 포함한 대부분 국민이 법이 정한 명칭인 '기독탄신일'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성탄절'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는 어떤 저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런 개념 없이 사용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방송 등 언론매체에서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고 덧붙이며 옛날 신문들을 예로 들었다.

"개신교의 경우 1921년 12월 24일 자 <동아일보>의 '성탄을 기념코자 아름다운 기부금'을 비롯해 이후 해방까지 모든 매체에서 탄일, 크리스마스, 야소 성탄일(탄생기념일), 성탄축하, 성탄봉축, 성탄 축, 성탄제일, 기독성탄, 구주 성탄, 그리스도 성탄 등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일관되게 '성탄'을 유지했습니다. 그중 크리스마스가 가장 많이 보도됐으나 50년대부터 서서히 '성탄절'로 굳어져 왔지요.

반면, 불교 교주 탄생일은 <동아일보>의 경우 1920년 5월 26일 자 보도에서는 동일 지면인데도 불구하고 '불탄', '석탄'을 혼용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사월초파(팔)일, 불탄 축하, 불탄 봉축, 석존 강탄, 관불회, 관불일, 성탄일, 성탄절, 팔일제, 화제, 화제봉찬회, 석존탄생기념식, 부처님 탄생한 날(동아일보 1921년 5월 15일), 사월 팔일, 석가세존강탄일, 불타 강탄 등 용어가 통일되지 못해 혼동을 주고 있습니다."

전단지가 말해주듯, 과거에는 개신교와 불교에서 '성탄일'을 공용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개신교는 크리스마스를 더 많이 사용하다가 '성탄절'로, 불교는 '사월초파일'에서 '부처님 오신 날'로 굳어진 상황이다. 이것은 용어 자체를 누가 먼저 사용했는가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국상 때 불교·천주교·기독교 등 종교의식이 차례로 진행되는 나라에서 성탄의 의미 즉, 성인이 꼭 예수님 한 분만 유일한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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