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마무리 않된 전쟁 '베트남전'

[특집-베트남 평화기행 ⑤] 참전 50주년 민간인 학살 50주년

황윤희 기자 | 기사입력 2014/03/22 [04:35]

아직 마무리 않된 전쟁 '베트남전'

[특집-베트남 평화기행 ⑤] 참전 50주년 민간인 학살 50주년

황윤희 기자 | 입력 : 2014/03/22 [04:35]

[신문고뉴스] 올해는 한국군 베트남 참전 5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정부가 파병 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행사를 위해 6억여원의 예산까지 챙겨놓았다 한다. 그런데 베트남정부가 외교경로를 통해 공식행사 개최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해오면서 기념행사의 주체와 성격을 정하느라 정부가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참으로 못난 짓, 50주년 참전 기념행사

 

우리는 전 세계가 미국의 침략전쟁이라 인정하는 전쟁에 용병으로 참전했다. 민간인 학살, 여성윤간 등의 전쟁범죄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는 마당에, 참전을 기념하자는 것은 전쟁범죄를 정당화, 미화하겠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베트남이 오히려 ‘과거를 덮고 미래를 지향하자’고 얘기하는데 가해자의 입장에 선 우리가 그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실리를 따져보아도 마찬가지다. 베트남과 한국의 교역규모는 2012년 전년 대비 17%나 증가해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또 현재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싱가포르 다음으로 큰 수출시장이 되었다. 이러한 마당에 참전기념이라니, 전쟁이 기념할 일인가? 참으로 못난 짓이다.

 

▲ 강원도 화천군에 건립된 '베트남 참전용사 만남의 장'. 전 세계가 미국의 침략전쟁이라 인정하는 전쟁, 그 전쟁에 용병으로 참전한 것을 기념하는 일은 과연 옳은가?     © 황윤희

 

 

전국 곳곳에 솟구쳐 있는 참전기념비를 바라볼 때도 착잡하긴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와 지자체는 최근 몇 년 사이 국민의 혈세를 사용, 전국 곳곳에 100개가 넘는 참전기념비를 세웠다. 이는 희생된 병사를 기리는 추모비가 아니라, 참전을 찬양하는 기념비다.

 

특히 2008년에는 강원도 화천에 국비 68억, 도비 44억, 군비 66억까지 총 180억을 투입한 ‘베트남 참전용사 만남의 장’이라는 참전기념관도 지어 올렸다. 이곳은 베트남전 당시 파월장병 교육대가 위치했던 곳이다. 건립 당시 베트남 사람을 무릎 꿇려놓고 총을 겨누고 있는 실물크기의 인형을 세워 비난을 받았다. 지금은 철거되었지만 말이다.

 

정녕 참전군인들과 단체는 그러한 기념비나 조형물로 명예가 지켜지고 회복되리라 믿고 있는 것일까? 명예는 그런 식으로 높일 수 있는 것인가? 바람과 달리 그것은 후세대들에게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이면을 증거하는 조형물로 기억될 듯하다. 그저 폭력을 용인하던 야만의 시대를 상징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쯤으로 말이다. 또 기념물을 볼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치부를 떠올리며 우울해할 것이다.

 

아맙의 구수정 본부장은 이렇게 전했다. “내후년이면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지 50년이 됩니다. 민간에서 끊임없이 사과를 전하고 있지만, 그때까지도 한국정부가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이 영영 돌아설지도 모르겠습니다.”

 

내후년, 베트남에서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추모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베트남 국민들은 다시금 그때를 기억하고 분노할 것이다. 이전에 고자이 마을 위령제에서는 참여한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죽창을 세워들고 땅을 두들기며 한국군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고도 한다.

 

베트남정부와 달리 국민들의 상처는 조금도 아물지 않은 셈이다. 그러니 시간이 많지 않다. 학살 반세기가 지나가는 지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전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범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대한 사죄를 전하는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두 나라의 새로운 관계는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만행을 저지른 일본과 같은가?

 

기사를 연재하면서 일제에 의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마당에, 이러한 일을 들추는 저의가 뭔가 하는 질문을 받았다. 또 일본 언론이 ‘한국도 똑같은 짓을 했네’ 하며 얼씨구나 기사를 퍼가고 있을 것이라는 경고도 받았다. 일본과 한국을 등치시키는 듯한 이러한 사고는 일반적인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 민간인 학살 생존자 런 아저씨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본과 한국이 어떻게 같습니까? 같지 않습니다. 일본은 침략전쟁의 당사국이었으며, 위안부 문제 같은 것은 국가가 체계적으로 주도한 일입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군은 그저 미국의 지휘를 받는 용병일 뿐이었습니다. 돈 때문에 전쟁에서 희생당해야 했던 용병이라는 면에서 또 다른 피해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배상을 요구해도 미국이 먼저입니다.”

 

런 아저씨의 말투에는 승전국 국민의 엄중한 비판이 숨어 있었다. 마치 ‘정신 차려라, 우리는 한국과 싸운 게 아니라, 미국과 싸운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 했다.

 

▲ 런 아저씨와 '아맙'의 구수정 본부장. 구수정 씨는 베트남 전역을 누비고 다니며 한국의 베트남 파병과 민간인 학살을 조사하고 알리는 일에 일생을 바치고 있다. 누군가는 이 여성에게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를 시켜야 마땅하다고도 했다.     © 황윤희

 

 

한국정부는 이전에 베트남에 40여 개의 학교와 5개의 병원을 건립해준 바 있다. 학교와 병원은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지역에 건립되었다. 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사과의 제스처는 전했던 셈이다. 하지만 베트남 현지인들은 학교와 병원이 학살이 일어난 지역에 세워졌기에 이를 그에 대한 배상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은근슬쩍 사과를 전하는 태도는 비굴하고 당당하지 못하다.

 

우리 정부에겐 기회가 있다. 잘못을 정당하게 시인하고 베트남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전할 기회, 또 전 세계에 ‘도덕’이란 것의 모범을 보일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서독의 최고지도자였던 빌리 브란트는 1970년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나치정권에 희생된 이들의 추모비를 참배하면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 세계적으로 큰 울림을 주었었다.

 

폴란드인들도 그 장면에 눈물을 흘리며 독일에 대한 미움을 씻어갔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직도 망언을 일삼으며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일본에 대해 오히려 가장 강력한 비판이 될 것이다.  

 

버려진 듯 쓸쓸한 한·베평화공원

 

평화기행 일정 중, 한·베평화공원 방문이 있었다. 푸옌성 동오아현에 위치한 한베평화공원은 우리 국민들의 성금으로 지어진 것이다. 1999년, 구수정 씨는 《한겨레21》에 1년이 넘게 기사를 연재하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를 제기한다.

 

이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면서 성금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겨레에서 먼저 모금운동을 벌인 것이 아니다.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이는 이후 ‘미안해요, 베트남’이란 모토를 걸고 베트남전 평화캠페인으로 추진되었다. 그렇게 모아진 돈이 10만 달러, 1억 3천만원이었다.

 

1억 3천만원. 적은 액수 같은가? 그렇지 않다. 이 모금운동은 당시 가장 오랜 기간 이어진 캠페인이었고, 또한 가장 많은 수의 시민이 참여한 운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금모금운동으로는 가장 적은 액수가 모인 캠페인이었다고 한다.

 

그 까닭은 기업의 기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성금모금에는 기업기부가 있어야 액수가 커지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구 본부장은 베트남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이 언급되면 어떤 기업도 참여하지 않는다 했다. 그것이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는 살펴볼 일이며, 이는 아울러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이 왜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된다.

 

▲ 2003년 한국인들의 성금으로 건립된 한베평화공원. 처음 공원이 건립되었을 때는 현지 지역주민들이 다 부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악감정과 상처가 그런 사태를 만들었다.     © 황윤희


 

한·베평화공원은 2003년 완공되었다. 공원에는 베트남에 용서와 화해를 청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하지만 공원을 둘러볼 때 쓸쓸했다.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것처럼 주위에 인가는 멀고 공원만 덩그러니 있었다. 초목들도 무성하지 않아 얼핏 버려진 듯 보이기도 했다.

 

공원이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처음 공원이 건립되었을 때는 현지 지역주민들이 다 부셨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악감정과 상처가 그런 사태를 만들었다. 이후 푸옌성인민위원회가 복구를 했지만, 후에도 공원은 그다지 잘 지내지 못했다. 유지비 마련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씁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한·베평화공원의 이 모습이 지금의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이 착잡했다.

 

▲ 한베평화공원 내에 있는 도자벽화. 조형물에는 '작은 평화'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2006년 한베 공동창작이란 설명이 달려 있다. 떨어져나간 벽화가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 황윤희

 

 

화해와 용서는 베트남 국민의 권리

 

기사를 연재하면서 아팠다. 학살의 세부를 볼 때는 속이 메스꺼웠고 여성의 집단윤간에 대해 들을 때는 도망가고 싶었다. 너무나 잔인한 이야기들은 차마 쓰지도 못했다. 또 일부 참전군인들이 그런 참혹한 일들을 무용담인 양 떠들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구역질이 일었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대충 뭉뚱그려 ‘화해’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이런 대목을 읽을 때면 더욱 그러했다.

 

‘미국의 경우, 참전군인 중 상당수가 정신착란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는 주로 병사들이 어린이, 여자, 노인을 죽인 데 대한 죄책감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는 참전군인 약 6만 명이 자살했다. 이는 전쟁 중 전사한 군인의 수보다도 많은 수치다.’(송필경)

▲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에 전시된 사진. 한 미군이 갈기갈기 찢어진 시신을 고깃덩어리인 양 들고 있다.     © 황윤희


우리의 참전군인도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하며 섣부른 화해와 용서를 희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학살을 아직 시인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용서와 화해가 가능할 것인가? 게다가 용서와 화해는 우리의 몫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베트남 국민들의 몫이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

 

참전군인 모두가 전쟁범죄자로 오인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은 필요하다.

 

아울러 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그 어떤 참전군인들에게 제대로 사죄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라도 그러해야 한다.

 

민간인 학살 50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사죄의 기회를 놓치면 그것이 언제 다시 가능할지 짐작할 수 없다.

 

현재 참전군인들은 대부분 70세를 바라보고 있거나 그 나이를 넘어섰다. 그들도 시간이 많지 않기는 마찮가지다. 참전군인들은 이후의 역사가 자신들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를 숙고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참전군인을 아버지로 둔 딸의 고백을 들은 적 있다. 그 딸은 아버지가 평생 가정폭력을 일삼아왔다고 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이어진 폭력에 결국 부모는 이혼하고 남동생은 은둔자처럼 세상을 외면하고 살아간다고 했다. 딸은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싶다고 했다. 증오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딸은 자신이 증오하며 살아가기보다는 오히려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용서를 빈 적이 없었다.

 

딸은 용서를 빌지도 않는 아버지를 홀로 용서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용서를 빌어준다면 다 덮고 사랑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와 마찬가지다. 사죄도 하지 않은 대한민국을 베트남 국민이 용서할 수는 없다.

 

베트남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생의 상처는 아문 적이 없다. 절박하게 치유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진상규명과 사죄, 그리고 배상이 있어야 한다. 이는 거꾸로 처박힌 대한민국의 명예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오직,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황윤희 기자 948675@hanmail.net 

 

이 기사는 [안성신문]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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