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진정한 능력자 '홍영익' 가족들!

[인터뷰] “살면서 ‘나’라는 게 없었어. 고생스러워도 내뱉지 않았지

황윤희 기자 | 기사입력 2014/08/12 [04:44]

이 시대 진정한 능력자 '홍영익' 가족들!

[인터뷰] “살면서 ‘나’라는 게 없었어. 고생스러워도 내뱉지 않았지

황윤희 기자 | 입력 : 2014/08/12 [04:44]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신장리에 배 과수원을 하는 홍영익 씨가 산다. 이제 겨우 마흔한 살인 그는 보개면 자율방범대의 대장이기도 하지만 할머니, 어머니, 아내, 그리고 1남 2녀 세 아이가 사는 집안의 대장이기도 하다.

 

 

 

 

 

그의 어깨에는 다섯 명의 여자와 한 명의 아들이 얹혀 있다. 여섯 명을 어깨에 메고 살아가는 사내, 그런 홍영익 씨의 삶에는 아마도 여느 개인과는 비교 불가한 묵직함이 있을 것이다.  

 

원래 할머니(유해금, 93세)와 어머니까지 셋이었던 홍영익 씨의 가족은 그의 결혼과 함께 일곱 명으로 늘어났다. 아내가 생겼고 나무에 열매 맺히듯 세 아이(홍지원 9세, 홍지예 6세, 홍주영 4세)가 줄줄이 태어났다.

 

셋이 일곱이 된 셈이다. 가족이 늘어나는 것, 그게 우리 삶의 가장 큰 이정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한 사람의 삶에 없었던 기쁨이 생기고 책임이 생기고 비빌 살들이 생겨난다. 가족이 늘어나면 행복도 깊어지지만 마찬가지로 슬픔과 연민도 깊어진다.

 

그리하여 사람까지도 깊어지는 것, 무릇 삶이란 그렇다고 배웠다. 현재 홍영익 씨의 집은 4대가 함께 산다.  24년 동안 시어머니 홀로 모셔온 어머니  홍 씨의 아버지는 24년 전 세상을 등 지셨다. 할머니와 어머니, 홍 씨, 그리고 홍 씨의 두 여동생이 남았다. 생의 고비였다.

 

모든 가족구성원이 힘들었지만 홍 씨의 어머니(이병기 68세)는 특히 더욱 그랬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가장이어야 했다. 시어머니와 아이들을 건사하기 위해 식당에 나가 늦게까지 일했고, 그 외로움과 힘겨움을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그리고 신앙으로 이겨냈다.

 

몇 마디 어머니의 스토리를 여쭙자, 그녀는 눈시울부터 붉힌다. 그만큼 그동안의 삶이 신산스러웠던 것이다. “살면서 ‘나’라는 게 없었어. 고생스러워도 내뱉지 않았지.”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홍 씨의 세 자녀. 왼쪽부터 홍지예(6세), 홍지원(9세), 홍주영(4세).      © 황윤희 기자

 

 

어머니의 삶은 현재도 가족과 신앙이 전부다.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고 기도 후 돌아오면 직장 나가는 며느리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한다. 하루 세 끼 죽만 드시는 시어머니의 밥상을 챙기고, 손자들을 돌보고, 틈틈이 농사일까지 거든다.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바지런한 성격이어서 가능한 경지다. 그런 그녀를 보고 세상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45년 시어머니 모신 공로를 인정받아 효부상도 받았다. 어머니의 이런 삶은 초인적이다. 사랑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사태다.  

 

낮은 곳으로 임한 나무꾼의 선녀, 아내 김혜령 씨. 홍 씨의 아내 김혜령 씨(36세)는 평택이 고향이다. 이 두 사람 신기하게도 스노보드를 타다가 만났다. 홍 씨의 외모로 봐선 스노보드 같은 것 탈 줄 모를 것 같은데, 거기서 연애까지 해서 이렇게 미인을 아내로 맞았다니 속으로 좀 놀랐다.

 

아내는 보는 이가 기분 좋아질 만큼 아무 때나 잘 웃고 싹싹한 성격이어서 백점 만점의 여인이었다. 게다가 아이를 셋씩이나 낳아주었으니 이 홍 씨 나무꾼은 선녀를 제대로 붙잡았구나 싶다. 남편의 뭐가 맘에 들었느냐 물으니 “사람이 참 좋았다”는 참으로 근본적인 대답이 돌아와 웃었다.  

 

이즈음 세상에 농촌으로 시집오는 것도, 아이를 셋씩이나 낳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어떻게 그랬냐고 묻는데 대답이 신통치 않다. 뭐, 대단할 게 있느냐는 반응이다. 이렇게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집이 흔치 않다고 하면, 반대로 “흔하다” 대답하고, 어르신 모시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핵가족과 비교해 불편할 것도, 딱히 더 좋을 것도 없다”고 함박웃음을 덧붙여 대답한다.

 

아무래도 아내 김 씨에게는 뭘 과장하는 대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무한히 긍정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 듯했다. 김 씨는 1년 전부터 일을 나간다. 현재 농촌기술센터의 무기계약직 직원이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참 역설적이다.

 

농촌으로, 또 모실 어르신이 많은 집으로 시집온 것이 오히려 복이 된 형국이니 말이다. 시댁이 농촌이어서, 또 살림을 도와줄 수 있는 시어머니가 계셔서 세 아이를 키우면서 무기계약직 직원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김 씨를 보며 복이란 건 어디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란 걸 깨닫는다. 이런 아내는 또 아이를 낳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즈음에는 자식 많이 낳아 키울 수 있는 게 능력이다. 그러니 이 부부는 진정한 능력자라 하겠다.  

 

성실하고 착한 남자 홍영익 씨. 홍 씨는 성실하다. 이 남자는 술도 거의 안 하고 담배도 피지 않는다. 1년에 서너 번 술을 마신다 하니 참 기특하다. 이런 성실함은 아마도 어머니를 보면서 생겨난 듯하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한창 식당일 다니시며 늦게 오시는 게 싫어서 그는 제대하자마자 아버지가 조성해놓은 과수원을 직접 운영하기로 했다. 타지에 나가 직장생활하며 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장이라는 책임 앞에서 물러서거나 도망치지도 않았다.  

 

 

▲ 홍영익 씨와 그의 아내 김혜령 씨.    © 황윤희


 

그렇게 홍 씨는 홀로 8,500평 과수원 농사를 다 짓는다. 원래 면적보다 규모를 키웠다.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그래야 했다. 그랬어도 배 가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수익이 좋다고 할 수 없다. 지난 4월 초에는 냉해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새벽에 기온이 영하 3도까지 떨어지면서 일부 꽃눈들이 얼어버린 것. 또 여름이면 태풍에 낙과를 걱정해야 하고, 기계 값에, 인건비까지 따지면 아무리 큰 규모의 농사라 해도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것쯤 이 사내에겐 별 것 아닌 듯하다. 농사는 하늘이 반은 짓는다지만 그는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다 이겨낼 것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지는 시기다. 하지만 홍 씨는 자신의 가족만을 앞세우는 가족이기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벌써 13년째 자율방범대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자율방범대 활동은 회원들이 주말을 뺀 매일 저녁 9시부터 12시까지 야간순찰을 도는 것으로 이뤄진다.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고 불의의 사고에 대처하자는 취지다. 급여도 없는 이 활동은 순수한 봉사다. 남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 또 누군가는 음주가무를 즐길 시간, 자율방범대 회원들은 어둠 속에서 이웃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쪼갠다.  

 

홍씨의 말이다. “지난 겨울에는 야간에 뺑소니를 당한 채 방치돼 있던 어르신을 저희가 발견하고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했습니다.” 홍씨는 이어 “마음을 모아 이웃돕기를 할 때 가장 보람 있다”고도 말했다. 32명의 회원은 야간순찰을 도는 것뿐만 아니라, 매해 2,500평 땅에 벼농사를 지어 보개면의 소외계층을 돕는단다.

 

배추농사도 지어 10년째 김장나누기를 하고 있다. 말을 전하는 홍 씨에게서 은근한 자긍심이 읽힌다. 그에게는 남을 위해 일할 시간이 있고, 남을 위해 일할 여력이 있다. 능력의 유무를 말할 때 우리는 이러한 능력을 이제 진정한 능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홍 씨는 벌써 대장 3년차이다. 이 성실한 청년이 대장이 아니면 누가 대장일 것인가? 그를 보면서 진정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의 저들임을 깨닫는다.  

 

지금 홍 씨가 경영하는 배 과수원은 살아 생전 그의 아버지가 조성한 것이다. 홍 씨가 태어날 때쯤 아버지는 땅에 배나무를 심었다. 아버지 홍석모 씨는 아마도 배 수확이 가능할 10년 후를 기약했을 테지만 지금 그 과수원은 그의 아들이 꾸려가고 있다.

 

또 그가 생전에 심어놓은 나무에 기대 온 가족이 살아간다. 아버지는 사라졌지만 수천 그루 배나무가 남았다. 취재를 갔을 때 홍 씨의 세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 넓은 과수원이 다 저희들 소유의 마당이었다. 배꽃 진 자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자지러졌다.  

 

홍 씨의 가족은 곁에서 보기에 서로를 무척 존경한다. 아내 김혜령 씨는 어머니에 대해 “묵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견디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또 어머니는 “사고 한 번 안 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이라며 아들을 칭찬했다.

 

홍 씨는 “뭐 하나 배우면 꾸준히 열심히 해서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아내”라고 자랑했다. 서로 모인 자리에서의 칭찬이 아니다. 따로 있는 자리에서 은근슬쩍 떠보니 나오는 이야기들이었다. 서로를 향한 그런 존경의 마음, 그것이 참으로 부러웠다.  

 

 

▲  둘째 지예 양이 예쁜 공주옷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 황윤희 기자

 

 

가족은 우리 삶의 근원이다. 그 근원이 바르면 세상이 바를 것이다. 서로를 아끼고 칭찬하며 도와, ‘성공’이 아니라 ‘성장’하는 가족, 그런 가족이 필요한 때이다. 홍 씨는 그런 면에서 훌륭한 가장이다. 그의 가족이 서로 더불어 아름답고 진정 행복해 보이니 말이다. 마땅히 부러워할 일이다.  

 

황윤희 기자 948675@hanmail.net

 

이 기사는 [안성신문]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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